2004년 1월 31일 토요일

고장.

오랜만에(?) 밥을 해먹을 요량으로 쌀도 사오고 부식도 사오고
된장찌개를 맛있게 잘 끓인 후에 밥을 하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밥이 되지 않는다.
겉으론 멀쩡한 밥통이 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방법이 없어 찌개 국물과 반찬만 좀 집어먹다가 말았다.



그리고 밖에 일이 있어 잠시 나갔다가 밥만 좀 사가지고 와서 다시 밥을 먹었다.
 
의외의 고장은 예기치 못할 때 찾아오는 법.
그럴 때마다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진다.
 
사람들 마음이 고장나는 것도 예기치 못할 때...
그럴 때 꼭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어진다.
적어도 내 마음만큼은 내가 잘 알고 있어서 고장나기 전에 준비하고
고장나면 바로 수리해서 상대에게 아픔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2004년 1월 30일 금요일

노래.

이젠 중국노래도 몇 곡 정도는 제법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단어를 읽을 줄 알면 조심조심 따라부를 수도 있게 되었다.
 
노래는 부를수록 가사가 눈에 들어오고 멜로디가 귀에 익어져서
노래의 감성을 잘 알게 된다.



노래처럼 사람들도 그랬으면 싶지만 그건 내 욕심인가 보다.
 
사람은 만날수록 이름을 부를수록 어렵게 느껴진다.
어렵다는 건 친하지 않다는 뜻이 아닌
관계에서의 문제...
그런데 그건 상대방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
 
왜 그러는 걸까?

2004년 1월 29일 목요일

손전등.

중국에 올 때 기내에서 기념품으로 받았던 북방항공 손전등이 고장나버렸다.
잘 쓰다가 갑자기 고장나고 나니 불편한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내가 사는 곳은 계단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저녁 늦게 다니다보면
꼭 손전등이 필요하다.
 
고장난 이후로 사야지...사야지...하면서 벼르고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겨우 샀다.
건전지 포함 3원.
제일 작고 제일 싼 걸 달라니까 이걸 준다. 맘에 든다.



그런데 문득 어둠을 무서워하는 나로써는 손전등이 어둠 뿐만이 아니라
내 심리적인 문제까지 해결하는 건 아닌가...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물질과 정신의 구분은 모호한 경계에 자리하고 있는지도....
대립각이 아닌 벤다이어그램의 교집합같은 부분이 아닐까...
 
밖에 나갈 때는 늘 손전등을 챙겨 든든하게 외출한다.

2004년 1월 28일 수요일

포기하기 없기.

해보지도 않고 못한다고 말하지 않기.
오르지도 않고 못오른다 말하지 않기.



시도해보지도 않고서 미리 포기하기 없기.
 
포기하기 없기.
지금은 조금 전의 결과, 그러면 조금 후는 지금의 결과.
 
그러니까, 포기하기 없기.

2004년 1월 27일 화요일

디카.

드뎌 한국 동생에게 부탁을 해서 사두었던
디지털 카메라가 후배가 한국에 다녀오면서 배달을 되었다.
canon power shot g2...!!!
 
중고로 산 것인데 새거나 다름이 없고 기타 부속품도 과분하리만치 충분하다.



이제 중국에서 사진으로 찍어서 올리고 싶었던 것들 차근차근 올려봐야지.
음식기행(?)도 해보고 내 삶도 담아봐야지...
 
사진기가 있어도 없어도 그냥저냥 살아왔었는데
중고로 산지가 두어달 전이어서 그런지 카메라를 무척 기다리긴 했었다.
 
자~ 이제 출사요!!!

2004년 1월 26일 월요일

고개 돌리지 마.

고개 돌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면 늘 고개를 돌리면서 살거야.
바라보지 않는다고 정말 보이지 않으면 눈을 감고 살거야.
 
하지만 내가 고개를 돌려도 바라보지 않아도
문제는 여전히 내 마음 한가운데 자리잡고 자리를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는 걸.



그렇다면 처음엔 정면으로 마주하기 어렵지만 힘겹지만
그래도 정면으로 바라보도록 할래.
그러면 내 안에 있던 그 녀석 슬그머니 빠져나와 내 앞에 서게 될거야.
 
그러면 오랜동안 얘기도 나눠보고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서로 이해를 해갔으면 좋겠어.
 
힘든 거 알아.
그래도 고개 돌리지 말어.

2004년 1월 25일 일요일

정말 추워.

음력 설날(춘절)을 지내면서부터 날씨가 정말 추워졌다.
그 전에는 포근한 날도 있었고 가끔은 옷을 껴입고 다니는 게 불편할 정도로 덥기도 했는데
요즘은 절대 용납을 하지 않는다.
 
들은 얘기론 아니, 뉴스 일기예보를 본 적도 있으니
어쨌든 요즘 평균 기온은 영하 30여도가 되는 것 같다.
여기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빵모자같은 걸 쓰지 않고도 얼굴 다 내놓고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내복같은 건 필수로 입긴 하지만 말이다.
 
난 빵모자 없이는 다닐 수가 없다. 귀가 얼어버릴 것 같아서...
마스크 없이도 다닐 수가 없다. 얼굴이 추우면 온 몸이 추운 것 같다...
가끔이야 마스크 쓰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가는 중국맨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정말 추운 날은 견딜 수가 없다.(사실 견디긴 한다.)



그리고 정말 정말 황당했던 사실은
춘절 휴가기간에 한 4-5일 정도 누완치(스팀기)가 작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혹자는 그 누완치 온수 공급하는 사람들이 휴가를 갔다고도 하고
혹자는 온수 공급하는 공장에 문제가 생겨서 그랬다고 하지만
어떤 게 맞는지를 떠나서 집안도 무척 썰렁했던 것이다.
 
전기장판을 켜고 옷을 밖에서 입듯이 입고 있어야 하는...
 
이렇게 호들갑을 떨면서 말을 하고 있지만
사실 다닐 곳 다 다니고 볼 일 다 보고 밖에 나가는 게 귀찮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은 역시 적응력이 강한 동물임엔 틀림없다.

2004년 1월 24일 토요일

탕욕.

가끔 시원한 탕을 먹을 때 그 안에 들어가 있고 싶을 때가 있다.
 
바지락 칼국수, 짬뽕, 콩나물국, 북어탕... 등
 
속까지 편해지는 그 탕에, 국에 몸을 좀 담그면
몸은 그냥 덤으로 편해질 것만 같다.



몸은 담그지 못하더라도 속이라도 담글 요량으로
그렇게 시원한 무언가가 먹고 싶으면 한국식당으로 가는 수 밖에 없다.
 
으~ 쓰~원~허다....

2004년 1월 23일 금요일

감기기운.

새해 벽두부터 감기기운이 살짝 몸을 감더니
조금씩 컨디션이 떨어지는 걸 느낀다.
습관처럼 약을 먹지 않고 버티다간 생활을 며칠이고 망칠 것만 같아서
후배에게 약을 부탁했다.
 
원희가 약과 생강을 사와서 생강차를 끓여준다.
나중에 주미가 와서 청소도 좀 해주고 간단한 심부름도 해준다.
고맙기 그지 없다.



중국 약이 한국 약보다 독한 것 같다.
약을 먹고 나니 온 몸에 약기운이 손가락, 발가락 마디까지 퍼지는 것 같다.
몸이 나른하고 힘이 하나도 없다.
 
아프면 아플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몸이 아프면 마음까지도 아파지는데
동생들이 약도 사다주고 그래서 그런지
그런 증상은 덜 하는 것 같다.
 
땀을 뻘뻘 흘리고 몇 차례 잠을 잤더니 한결 개운하고 가뿐하다.
속에 있는 건 역시 어떤 식으로든 뽑아내야 가뿐해지는 걸...
 
마음으로 쌓여온 응어리든...
물리적으로 쌓여온 배설물이든...
그렇게 앓고 나면 정신이 맑아지고 다시 날 보게 된다.

2004년 1월 22일 목요일

춘절.

한해를 보내는 시간을 중국 친구 집에서 보낸 후에
음력 새해를 맞이했다.
부모님께서 한 10년 정도 담근 술이라며 귀한 술을 내신다.
함께 있던 한국 동생들도 '우와~' 탄성을 지른다.
남녀 가릴 것 없이 한 잔씩 맛을 본다.



오늘 먹은 약주는 정말로...그야말로 환상이다.
냄새만 맡아도 그냥 취해버릴 정도의...하지만 뒤끝이 없는...
중국친구 부모님의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그러다가 혹자는 기분에 취하고 혹자는 술에 취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함께 만두도 빚어서 먹었다.
이건 중국의 전통적인 명절습관인데 식구들과 함께 만두를 빚어먹으면
복이 들어오고 모두들 건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두에 가끔 1마오짜리 동전을 몇 개 숨겨놓는데
먹다가 발견한 사람은 그 해 복이 들어오고 재물을 들인다 한다.
 
아~ 이게 왠 횡재누...그 동전있는 만두는 내가 먹고야 말았다. 흐흑~ 감격!
중국에 와서 중국인들의 풍습에 맞춰 복을 얻었으니
이곳에 사는 동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들!!

2004년 1월 21일 수요일

장갑...

겨울이 되면 장갑이 필요하긴 하지만
계절을 가릴 것 없이 뜨거운 그릇을 들 때 필요한 장갑이 있다.
 
중국에 와서 샀는데 역시 필요한 건 필요한 거다.
하지만 너무 뜨거울 때 사용해서 천이 녹아버리기도 했고
안에 있는 솜털이 살랑살랑 보이기도 한다.



가끔은 내가 인연들 만날 때 마음의 장갑을 사용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너무 열정적인 사람일 때 너무 냉정한 사람일 때 분명 필요하긴 하겠지만
그게 습관이 되고 되돌아보지 않으면
늘 상투적인 관계로만 머무르고 마는... 안타까움도 있지 않나 싶다.
 
오늘도 뜨거운 냄비를 장갑을 사용해 옮기면서
나에게 뜨거운 인연을 위한 장갑은 어떤지... 생각해 본다.
 
 
....장갑을 끼는 이유는 혹여 뜨거운 당신의 사랑에
마음이 데일까 걱정해서 입니다만,
장갑을 껴도 그 마음은 결코 식지 않는다는 걸 재차 확인할 뿐입니다....

2004년 1월 20일 화요일

고맙다..친구들아~

고등학교 때부터 계.모임을 주욱 해온 녀석들이 나를 포함해서 15명...
10여 년을 한결같이 서로 격려하고 약올리고 축하하고 약올리며...
그렇게 살아온 형제같은 녀석들...
 
2002년 마지막 겨울 모임에 친구들 부모님들을 모셔서 식사대접하고
덕담도 듣고 함께 즐겁게 놀았던 그 기억이 너무도 기쁘고 즐거워서
올해도 설 계.모임 때 부모님들을 모시기로 했다는데
난 중국에 있으니 방법이 없었지.....만!!
녀석들...역시 전화드리고 모시고 해서
나를 포함해서 일 때문에 늦게 내려오는 친구 부모님들 모두 모셔서
즐거운 식사 시간을 보냈네...
어머님이 즐거워 하시더라...



고맙다...
 
그러고보면 우리들도 오랜 시간 함께 지내왔네...
하지만 늘 친구들, 제수씨들, 특히 부모님들 생각하는 마음들은 늘 한결같아서
만나도 질리지 않고(때론 질리긴 해..ㅋㅋ)
오랜 시간 함께 세월을 보내온 친구들아...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
 
곧 아빠될 녀석들...축하한다.
그리고 어려운 불경기에도 친구들 서로 걱정해주며 사는 모습 고맙다.
 
나도 열심히 살께...
 
힘들 내자~ 새해 복 많이 짓고 받고... 모두들 건강해라~~

2004년 1월 19일 월요일

전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아주 작은 가능성마저 없다면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을까.
그리움은 그리움만으로 행복할 수 없다.고 난 생각한다.



참 신기하지 않나?
전화선 너머에 누군가가 있고 그 사람과 얘기할 수 있다는 게.
 
전화가 사람을 편하게 만든 것도 있지만
전화가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드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외로울 땐 외롭고 싶기도 하다.
그 외로움 속에서 사람을 더 알게 되고 나도 더 알게 되가는 과정이 생기지 않을까.
 
....벨이 울릴 때 가끔 반갑다.

2004년 1월 18일 일요일

게으름.

때론 정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게을러질 때가 있다.
그러면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 DVD나 보고 보다 자고 자다 깨고 한다.



게으를 때는 게으름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왠지 모를 조급함에 괜한 자책감에
몸은 그대로 이불을 끌어안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이미 침대에서 일어나 뭔가를 하고 있다.
 
그러면 왠지 속은 것 같고 손해본 것 같아 억울할 때도 있다.

2004년 1월 17일 토요일

후배 생일.

후배 원희.의 생일이다.
사람들 많이 불러서 생일파티를 하는 게 싫다며 잠적하겠다고 그랬었는데
그래도 후배랑 함께 저녁이라도 먹을 겸 전화를 했더니
그러면 사람들 다 불러서 함께 식사하자고 한다.
 
우리엔즈, 마수웨이, 규이, 치우메이, 규이 고향친구 성관(조선족), 옌궈, 옌뽀
주미, 은수, 현아, 원희, 그리고 나....
 
음식점 룸을 하나 빌려서 이런저런 음식도 시키고 맥주와 백주를 시켜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모두들 기분이 즐거운지 웃음소리가 멈출 줄 모른다.
 
한국 동생들은 모두 나보다 중국어 실력이 좋다.
그래서 오늘 동생들이 중국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는데
무척 부럽고 실력이 그리 많이 늘지 않은 내가 부끄럽기도 하다.
물론 나도 전보다는 실력이 늘긴 했지만 ... 스스로 비교가 되어서 마음이 좀 그렇다.
 
어쨌든 서로들 이런저런 얘기로 분위기가 무르익고 좋아 보인다.
 
그런데 오늘 깜짝 고백!
규이와 치우메이가 드디어 5년여의 열애를 결혼으로 결실을 맺는다고 나에게 말을 한다.
올해 10월 1일 국경절날 결혼식을 한다는 데
결혼식장이 공교롭게도 저번에 매형이 왔을 때 같이 묵었던 화치아오호텔이다.
그 호텔 지배인(?)이 아는 친구라고 했던가?
나도 그들의 결혼소식을 듣고 참 반가워서 연신 축하한다고 말을 전했다.
그리고 혹 시간이 된다면 청첩장을 디자인해서 만들어보겠다니까
무척 좋아하며 그렇게 해주면 기쁘겠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결혼식에 꼭 참석해주기를 원했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자신들 결혼식 하객들 중에 유일한 외국인이 될거라고 한다.
...나보다 먼저 친구가 되었던 충훈이도 이 소식을 들으면 기뻐할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노래방으로 가서 춤추고 노래하고 정말 신나게 놀았다.
노래를 정말 하지 않던 옌궈도 나와 함께 '친구'라는 노래를 부르고
기분이 좋았는지 오늘 만난 한국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고 싶다고 그런다.
 
여기저기서 간헐적으로 들리는 폭죽소리가
후배의 생일 축하포같이 들리기도 하고 정말 한해를 보내는 듯한 느낌이 더 들게 한다.
여기에서는 춘절을 맞이할 때 꾸어니엔.이라 해서 한 해를 보내는 송년의 분위기가 색다르다.
 
중국에서 생일을 맞이한 원희야!
올 한해 원하는 공부 원하는 만큼 실력향상 되길 바라고
건강하고 활기차게 생활하길 바란다.
생일 축하해~

2004년 1월 16일 금요일

지아지아오 시작.

오늘부터 다시 지아지아오를 시작한다.
후배의 지아지아오인데 중문과 대학원생이다.
이름은 시아오펑. 그 전에 했던 애보다 시간당 비용도 조금 더 비싸다.
그런데 그만큼 확실하게 맺고 끊는게 좋다.
가르치는 방식도 시원시원하다.
 
학교까지 가는 것도 좀 그렇고 좀 불편하기도 하고 그래서
다른 후배들이 하는 것처럼 집에 와서 가르쳐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오늘은 내 집을 모르니 일단 학교에서 만나자고 한다.
 
어떤 공부를 할 것인지 서로 상의한 결과
다시 어법을 좀 하기로 했다.
어법을 전에 한 몇 차례에 걸쳐 배우긴 했지만 다시 복습할 겸 해서 배워보기로 했다.
사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중국애들과 얘기를 나누는 게 중요한 것이겠지.
 
내가 전에 서점에서 산 어법책이 있었는데
그 책이 너무 평이하고 수준이 낮은 거라
차라리 중급반 애들이 배운 교재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한다.
그래서 후배에게 책을 좀 빌려서 공부하기로 했다.
 
새롭게 공부를 하니 좋기도 하고 긴장도 되고 그런다.
중국어 실력이 다시 또 향상되길 바랄 뿐이다.
 
시간은 가고 돌아볼 겨를은 없고 마음은 급하다.
급하게 먹은 밥이 체한다고 하지만 급한 것은 급한 것.
그 마음을 잘 주시하고 있으니 괜찮다.

2004년 1월 15일 목요일

사전.

사전을 찾다 보면 사전을 펼치지 않아도
내가 그 동안 공부한 흔적들이 옆면에 손때가 묻은 흔적으로 나타난다.
어떨 때는 그 흔적들을 쫓다 보면 알고 싶은 단어들이 바로 나타나기도 한다.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같은 기분.
 
하지만 여전히 새하얀 부분들에 대한 알듯 모를 듯 설레임...
손 때가 묻은 부분에 대한 익숙함...


오랫동안 사전과 함께 하다보면 눈대중으로 펴도 원하는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일테고 내 삶의 한 부분을 펼칠 때도 마치 그렇게...
 
나의 마음 때가 묻은 사람들,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람들...
부디 자주 넘기고 찾아도 잊게 되는 단어처럼 되지 않기를....
기억은 기억대로, 삶은 삶대로 따로이지 않기를...
 
오늘 여러번 마음을 뒤적이며 펼쳐 만나 본 인연들.
반갑고 보고 싶다.

2004년 1월 14일 수요일

개털.

동물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게다가 개는 정말 무서워 하는 편이다.
어렸을 때 키우던 개가 겨울에 동사하고 가출하고 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어린 나이에 견디기 힘들었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개를 보면 무섭고 다시 키우고 싶다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후배 집에 개가 한 마리 있다. 이름은 하니.
중국 시추라는 개의 잡종인 데 영리하기도 하고 못생긴 얼굴이 가끔 귀엽기도 하다.
나를 본지도 꽤 되어서 내 말도 제법 듣는다.
발밑에 와서 내 무릎을 짚고 재롱 떨기도 한다.



그런데 요녀석이 요즘 털이 많이 빠지는 시기라고 한다. 털갈이 시기인가 보다.
그 털이 장난이 아니다.
갑자기 그 녀석이 싫어진다.
후배는 자기 집에 와서 샤워도 편하게 하고 놀러오라는 데
그 녀석 털 때문에 가기 싫다.
 
바지가 털바지다. 싫다. 정말 싫다.

2004년 1월 13일 화요일

[mov] 一个都不能少 - 책상서랍 속의 동화


책상서랍 속의 동화 (一個都不能少)

감독 : 장 이모우
출연 : 웨이 민치(웨이 민치), 장 휘거(장 휘거), 티안 젠다(촌장 티안), 가오 엔멘(가오 선생님), 쑨 지메이(쑨 지메이), 우 원루(TV 국장)

장이모의 영화. 중국에 와서 중국어 공부도 할겸 보게 된 중국영화들...그 중에 감독이름을 보지 않고 본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가 마음에 좀 들어온다 싶어서 감독을 다시 확인해보면 '장이모'라는 이름이 있었다.
예전에 홍등, 국두, 인생, 붉은 수수밭 등을 볼 때는 무거운 느낌도 있고 시대도 과거의 시대를 다룬 영화들이 대부분이었는데...그리고 '공리'가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정말이지 어색한 듯 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배우들 때문에 즐거운 영화다. 장이모가 이 영화를 찍을 때 카메라를 숨겨놓고 찍었다고 한다. 그래야 그 시골 아이들이 맘 놓고 놀고 떠들고 할테니 말이다. 이 영화에서는 '공리'의 흔적은 전혀 발견할 수 없다.

1개월 대리 선생으로 부임해온 13살의 소녀는 돈 50원 때문에 왔다. 사실 중국에서 살다보니 50원이란 돈이 한국 돈으로는 7500원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시골에서 그리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그 돈이 많은 유용가치가 있는 듯 하다. 게다가 원래 선생님은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병이 중해 곧 돌아가실지도 몰라 떠나면서 꼬마 선생에게 학생들이 더이상 줄지 않도록 당부하며 그렇게만 되면 돌아와서 10원을 더 주겠다고 약속하고 떠난다.

뭐랄까...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공산당歌, 국기 게양식, 그리고 극적으로 한 학생을 찾는 등의 과정을 보면 중국 사회주의에 충실(?)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 중국에서 중국인들을 대하면서 느끼는 것들은 사실 그 영화에 나오는 것 이상, 이하도 아닌 것 같다. 다만 감독이 그런 중국인들의 생활상을 표현하면서 좋지 않은 것은 비판하면 좋겠지만 난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의 그 마음, 현실 안에서 최대한 열심히 살아내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꼬마 선생은 정말 고집불통인 모습이고 의지의 중국인이다. 이 소녀를 보면서 내내 민망한 감정이 올라오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그 고집이 순수했을 때 도출되는 결과에 결국 안심했다. 어쩌면 그런 감정의 흐름 때문에 영화를 계속 긴장하면서 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제일 어린 여자학생이 있는데 그 아이는 웃는 모습이 너무 천진하고 도무지 연기를 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지만) 그 꼬마 소녀를 보면서 이쁘고 귀여운 행동에 한참을 웃었다.

중국어 원제목은 '하나도 적을 수 없어'라는 뜻인데 학생이 점점 줄다보니 어머니 간병하러 떠나는 '까오(高)'선생이 꼬마 선생에게 학생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수업에 나오지 않는 걸 막아야 한다며 학생이 한 명이라도 더 줄지 않게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결국 그 '단서' 조항으로 이런저런 사건이 진행되는 셈이다.

이 영화에서 꼬마 선생 속을 태우며 사건의 발단이 되게 하는 남자 아이가 있는데 나 어렸을 때 흔히 볼 수 있었던 꼬찔찔이같은 악동같은 꼬마의 모습이다. 이 아이가 돈을 벌러 도시로 나가는데 기차역에서 일행들과 헤어졌다. 그래서 거지같이 돌아다니고 마는데 중국이라면 정말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전화들이 있긴 하지만 연락이 안될 경우엔 방법이 없다. 게다가 전화가 없는 집도 비일비재하다. 물론 요즘에야 너도 나도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는 추세이긴 하지만 그것도 한달에 100원 정도씩을 핸드폰 요금을 내는 사람들이나 가능한 소리고 그보다 더 가난한 많은 사람들은 핸드폰은 커녕 집에 전화가 없는 경우도 있다. 중국에서 길이 엇갈려 헤어지게 되면 어쩌면 평생 못만나게 될지도...-_-;;

소년을 찾기 위해 꼬마 선생이 방송국을 찾아가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중국 공무원들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생각되었는데 안내실에 있는 여자직원...정말 경우없고 불친절한 말투... 중국의 은행, 기차역 등 공공기관의 공무원들 정말 불친절하다. 보면서... 내 경우도 떠올라서 움찔했다. 그리고 방송국 사장의 천사같은 호의... 이게 좀 뜬금없이 느껴지는 인과관계이긴 하지만 여기 중국 사람들 중에 권력있고 능력있는 사람들 자신의 힘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과시욕이 대단하긴 하다. 그렇게 본다면 방송국 홍보도 할겸 자신의 힘으로 사회에 뭔가를 기여했다는 마음이 꼬마 선생을 도왔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 두 가지 모습, 불친절과 과잉이다 싶을 정도의 친절...이 중국인들의 양면성이 아닐까 싶다.

....의역한 한국어 제목이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대로 비슷한 느낌인가? 나라면 어떻게 제목을 지었을까?;;;

오해.

말은 하면 할수록 말속의 뜻은 희미해져 가나보다.
간단한 말로 명확한 뜻을 전달하는 건 그래서 어렵다.
 
그렇지 않더라도 의도하지 않게 상대방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말하는 것에서 연상작용을 일으키는 경우가 그렇다.


부모님 퇴직에 관한, 그리고 생업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중국 친구가 울어버렸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는데 갑자기 부모님이 생각나면서 마음이 아팠다 한다.
본의 아니게 마음을 건드렸는데 그 친구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되고
많이 미안하다.
 
어이, 어린 친구...자네 그래도 밝게 잘 살잖는가.
내 오늘은 고의가 아니었으니 이해해주시게나.
그리고 내일이 되면 오늘 아픈 마음이 많이 사라지길 바라네.
울지 마시게...

2004년 1월 12일 월요일

폭죽.

꽝꽝!!
 
정말 전쟁이라도 난 줄 알았다.
하루종일 터트려대는 데 짜쯩이 난다.



음력으로는 신년이 22일이니 21일 전까지는 한 해를 보내는 나름대로 의식을 갖는다.
어떤 이들은 폭죽을 터트리고
어떤 이들은 가짜 돈, 부적(같은..)을 태우면서 한해를 보낸다.
폭죽은 가격이 무척 비싸다고 한다. 돈 없는 이들은 해를 보내지도 못하겠군.
게다가 폭죽 소리가 너무 커서 정해진 기간 외에 폭죽을 터트리면 구속된다고 한다.
가짜 돈을 태우는 것은 그나마 얌전하긴 하지만
곳곳이 검은 재로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다.
 
폭죽을 터트리는 이유는 잡귀들, 액운들이 놀라서 도망가라는 의미라는데
심장이 약하면 산 사람도 놀래 죽을 정도다.
가까이서 터트리는 소리를 들으면 그야말로 대포소리 저리 가라다.
가짜 돈을 태우는 이유는 정확히 듣지는 못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리는 방식이라고 한다.
 
어쨌든...폭죽 터지는 소리는 싫다, 싫어.
 
 
 
* 한자공부 - 恭喜發財...꽁씨파차이. 돈 많이 벌기를 원한다는 덕담 비슷한 소리다.

2004년 1월 11일 일요일

말 많은 건 좋지 않아...

사천요리 중에 초어(차오위; 산천어)라는 요리를 시켜놓고
백주를 마시면서 후배와 얘기를 나누는데
문득 지난 날들의 감성이 밀려오면서 나도 모르게 말이 많아지고 있다.
 
말이 많아지면서 표정도 많아지고
그러다보면 감성이 풍부해지고 감정이 들쭉날쭉 한다.



사실 그렇게 말을 많이 하고나서 혼자 있게 되면
허전해서 아니, 뭔가가 텅- 빈 듯 느껴지곤 한다.
그러면 기분이 좋지 않다.
 
지나간 감정은 왜 이리도 변색되지도 않고 그대로 살아올라오는 것일까.
세월이 흐르고 나도 변해가고 기억력도 감퇴되기 마련인데
감정은 그대로 잠복해 있다가 기회를 틈타 스물스물 기어나온다.
 
쓸데없이 안해도 될 말들을 많이 해버렸다.
이런 기분은 정말 좋지 않다.
 
후회해도 이젠 늦었는데...

2004년 1월 10일 토요일

이야기.

이야기 꽃을 피우며 시간가는 줄도 모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후배가 아는 여자분은 뜨개질을 멈추지 않는다.
후배들이 키우는 개들은 안주를 얻어먹을 요량인지
대화에 참여하고 싶은지 계속 다리를 부비며 순진하게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다.
이녀석들은 내가 종종 던져주던 어포며, 과자 부스러기를 먹더니
드디어 주인들에게 찍혔다.
앞으로 개사료 말고는 아무 것도 먹을 생각을 말아야 할게다.
아니, 며칠 다이어트를 시킬지도 모르겠다.
후배는 계속 개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즐겁게들 마주하다 돌아간다.

2004년 1월 9일 금요일

눈.

집에서 눈이 내린다...
가끔 툭! 툭! 나는 소리 때문에 놀라길 몇 번...
이젠 놀라지 않는다...



집이 따뜻할수록...그리고 가스렌지를 사용할 수록...
페인트를 발라놓았던 벽에 균열이 생기면서
얇은 페인트 막이 부슬 부슬 떨어진다...
 
이젠 한참 떨어지길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청소하려고 한다.
 
재밌는 집.

2004년 1월 8일 목요일

만년필.

늘 잉크가 채워지는 만편필을 바란다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마음이 늘 채워지길 바라는 건 어리석지 않다.
오랜동안 지치지 않을 잉크가 샘솟길...
 
그렇게 바래본다.

2004년 1월 7일 수요일

식도락.

오랜만?에 청소를 싸악 하고
방과 주방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후배 집으로 저녁 먹으러 갔다.
남자 후배 두 녀석이 뒹굴거리다가 밥을 차렸다며 함께 먹자고 부른 것이다.
 
맛있게 잘 먹고서 한 녀석은 자고 한 녀석은 나와 T.V를 보고 있다가
나가서 술이나 한 잔 하자며 자는 녀석을 깨워 밖으로 나갔다.
오늘만큼은 좀 색다른 걸 먹어보자는 후배의 제안에
산책도 할겸 근방을 다 돌아다녔는데 그렇게 마음을 끄는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식당이 주르륵 붙어있는 한 골목에서 한 군데를 정했는데
쉐이주위(물에 익힌 물고기)가 전문이라는 식당에 들어갔다.
거기에서 쓰촨 차이위(草魚)짜위(雜魚), 그리고 삼선해물 두부볶음 시켰다.
술은 위수왕이라는 백주...
 
차이위는 입을 얼얼하게 하는 마와 말린 빨간 고추로 기본적인 맛을 내는데
입이 알딸딸한 게 먹을 만 하다.
짜위는 갈치 등 여러 종류의 생선을 익혀서 소스를 뿌려놓은 것이다.
두부 볶음도 맛이 괜찮고 두부 질도 좋은 듯 하다.
 
처음에 식당에 들어갔을 때 손님들이 한 명도 없어서
맛이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꽤 괜찮네...
 
주문하기 전에 손님도 없는 상황에서 종업원들이 우르르 우리들 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속닥속닥 얘기하고 긴장하고 웃고 그러다가 또 흩어지고
또 뭔가가 부족했는지 몇몇이 또 주문을 받으러온 여자 종업원에서 뭐라뭐라 말을 한다.
 
그 상황이 참 이상해서 여자 종업원에게 물었다.
'뭔 일 생겼습니까? 왜 이렇게들....'
'아~ 죄송합니다. 중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것 같아서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다 알아듣습니다...'
'하하하'
그 뒤부터 좀 분위기가 좋아지긴 했다.
 
사람이 없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영업시간이 일찍 끝나는 것이었는지
음식을 조금씩 먹어갈 수록 종업원들 숫자도 적어지고 홀에 불도 하나씩 끈다.
 
'언제 문을 닫죠?'
'손님들이 가시는 시간에 문을 닫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말을 해도 불편한 마음은 매 한가지다...
결국 조금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맛있는 음식...즐거운 대화...약간의 술...
방학도 하고 다들 재미없어 하는 차에 잠시나마 활력을 찾는?
 
그리고 오늘부터 후배들이 'AA制'를 하자고 한다.
AA制는 더치페이라는 뜻인데 언제부턴가 내가 밥을 사도 후배들이 미안하기도 하고
자기들이 밥을 살 때도 가끔은 부담되고 그런다 한다.
그리고 서로들 자금형편이 뻔한데 이젠 각자 내서 먹자고 그런다.
 
사실 후배들도 아껴서 써야할 만한 사정과 이유가 있고 나도 마찬가지니...
.....좋은 생각.

2004년 1월 6일 화요일

하루종일...

영덕형님이 아침에 일찍 도착하셔서
일단 집에 오시라 한후 집을 보여드렸다.
집 가격이 연길에 비해 무척 비싸다고 한다.
연길은 우리 집보다 훨씬 좋은 집도 가격은 절반 밖에 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형님이 책을 살게 있다고 해서 몇 군데 서점을 돌아다녔다.
처음 가보는 서점도 있었는데 서점 규모가 꽤 크다.
쉐런수디엔(학생서점), 통런수디엔(동인서점), 리엔허수디엔(연합서점)....
그런데 여기는 서점 안으로 들어갈 때 가방이 있으면
입구 옆에 있는 가방 보관소에 다 맡겨야만 한다.
책을 도난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 듯 한데
때론 기분이 나쁘기도 하다.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듯한 규칙...
게다가 리엔허수디엔은 들어갈 때 가방을 맡기지 않는 대신
비닐봉지에 가방을 넣게 하는데 그 비닐봉지가 무의미하게 쓰여지고 버려지는 걸 보면 참 그렇다.
땅이 넓고 사람이 많고 자원이 많아 그런가?
그런 것들에게 대한 건 별 무관심해 보인다.
 
점심을 조선족 식당에서 먹고 형님이 노동국(취업비자 관련)에 여권을 찾으러 가기 전에
발 마사지나 받자며 함께 안마소에 갔는데
가격은 싼데 안마를 잘 못하는 것 같다...형님도 별로 못한다고 한 소리 하신다.
 
형님은 저녁 9시 기차로 연길에 가시는 지라
남는 시간에 집에 와서 인터넷을 하게 해드리고 DVD틀어 드렸는데
재미없다고 주무신다. 나도 옆에 누워 부족한 잠을 청했다...
 
저녁에 일어나 조선족 식당에 가서 감자탕을 시켜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조선족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 싫어하냐는 질문에
조선족 중에 한국 가는 사람들이 한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도 있고
몇몇 한국 사람들이 조선족을 무시하는 행태에도 문제가 있다고 하시면서
쉽게 풀릴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하신다.
게다가 이번에 강제출국 때문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중국 정부, 한국 정부, 조선족 자치구....이 문제가 그리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하신다.
또 만약 조선족에게 한국국적을 취득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원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한국국적 취득하게 해달라는 사람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한다.
 
그리고 이번에 평양에서 형수님 친척분이 오셨다고 하시는데
평양에서 연길에 오는 게 예전에 까다로웠는데 지금은 좀 완화되었다 한다.
하지만 완화가 되어도 까다롭긴 매 한가지.
그리고 이렇게 한 번씩 나오는 이유는 금전적인 도움을 받아서
돈을 가지고 북한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는데
북한의 경제 실정은 정말 힘들어 보인다.
중국에서는 쌀 1근(500g)이 1원(150원)인데 북한은 100원(북한돈)이라 한다.
북한 돈 100원은 중국돈 1원과 매 한가지라 하는데
쌀 1근에 100원하고 월급은 약 2,000~3,000원 정도 한다고 하니 정말 어렵게 사는 것 같다.
 
원불교 동기들 소식도 듣고 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형님이 춘절(설날)에 혼자 지내기도 그럴테고 하니 연길로 오라 한다.
한국 후배들, 중국 친구들과 춘절 때까지 함께 지내고 놀다가
그 이후에 와도 좋다고 그러신다. 여긴 춘절 휴일이 7일이니...
하긴 형수님도 뵙고 싶기도 하고 형님 딸 옥결이도 보고 싶다.
상황봐서 불편해하지 않으시면 한 번 들려보고 싶긴 하다...

2004년 1월 5일 월요일

부끄럽기 짝이 없네.

영덕형님 장인, 장모님께서 상해에서 장춘으로 그리고 연길로 가신다며
형님이 내게 장춘에서 표를 미리 좀 구매해줬으면 하고 부탁을 하셨다.
뭐...어려운 일이랴...
 
시간, 날짜 등을 적어서 매표소로 갔다.
매표소는 기차역 말고 다른 곳에서도 예매 및 구매할 수 있는데
그런 곳들은 5원 정도 추가요금을 내면 된다.
 
오늘따라 매표소에 사람들이 참 많다.
한참을 기다려 미리 적은 쪽지를 내밀며 중국어로 몇 마디 했다.
돌아오는 대답, 표가 없단다...!
이런 낭패가...하지만 그 전날은 표가 있다고 그러는데 그러면 필요가 없다...
 
급한 마음에 중국 친구에게 전화해서 물어봤는데
대충 이해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옌궈에게 다시 부탁을 해봤다.
그럴리가 없다면서 같이 가보자 한다....
표 좌석이 없을리가 없다는 것이다.
9일 기차표는 오늘부터 예매가능한 건데 그렇게 빨리 좌석이 나가겠냐는 설명이다.
난 좌석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는데...그럴리가 없다니...
 
같이 가서 옌궈가 물어보니 좌석이 있다고 한다.
허~ 그럼 내가 들은 말은 뭐지?
해석이 안되거나 정확하게 듣지 않아서 그런 건데...
참 부끄럽고 면목이 없다.
결국 옌궈에게 부탁해서 표를 2장 부탁했다.
 
아~ 그런데 또 '사스' 때문에 표를 사려면 표를 이용하는 사람의 신분증 번호를 알아야 한단다.
부랴부랴 영덕형님께 전화를 해서 장인, 장모님 신분증 번호를 알아내고
다시 표를 예매할 수 있었다.
 
말을 잘 못하는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원하는 말은 제대로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듣지 못하는 건 정말 낭패 중에 낭패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들은 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표가 없다는 얘기로 들었는데...흠..
아마 루완워(제일 좋은 침대칸)은 있지만 그보다 싼 잉워(조금 좋지 않은 침대칸)는 없다고 한 건가?
참 부끄럽기 짝이 없다.
 
게다가 저녁을 함께 먹던 후배 원희는 내가 공부 잘 않하는 것 같다며
걱정된다고 충고하고 혼낸다.
아~ 난 정말 열심인가?
열심인 척인가?
 
4개월이 짧은가? 긴가?
아마 그것은 내 중국어 실력으로 판가름이 날 것...
 
부족하면 채워라...
안되면 되게 하라...
부끄러운 줄 좀 알아라...

2004년 1월 4일 일요일

오랜만이야.

오랜만에 규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제 술을 좀 마신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 일 보고나서
오후에 영화를 보다 잠이 들었는데 마침 규이때문에 잠을 깼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한다.
규이, 치우메이, 옌궈, 옌뽀, 원희...나...여섯 명이서 함께 모였다.
옌궈, 옌뽀는 그래도 종종 만났지만 규이, 치우메이는 정말 오랜만이다.
그 오랜만이 반가움으로 그 반가움이 즐거움으로...이어져...
밥 먹는 동안에도 참 즐겁고 화기애애하다.
 
내가 속이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친구들에게 걱정을 좀 끼쳤다.
어제 먹은 맥주가 속을 편치 않게 하나보다.
 
하지만 그리 큰 내색하지 않고 오랜만에 만난 얘기며
자신들 사는 얘기...그리고 영화 얘기도 해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늘 말이 잘 나오지도 않고 잘 들리지도 않는다.
공부도 잘 안하는 내가 변명할 여지는 없지만
어떤 날은 잘 되고 어떤 날은 잘 안되는 나의 단기기억 상실증 비슷한 습관이 참 밉다.
몸에 배고 생활에 배고 입에 붙어나는 때까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건만...
 
휴우~ 하면 되잖냐?
 
간만에 처음 가보는 음식점(식당 내에서 새들이 날라다닌다.) 구경도 하고
즐거운 벗들과 대화도 나누고...
즐거운 한 때.

2004년 1월 3일 토요일

부담스럽나?

일기를 밀려서 쓰게 되었다.
아니, 사실 쓰려 했는데 글로 쓸까 혹은 그림으로 올릴까 고민하다가 관뒀다.
 
하루하루 일기를 쓰는 게 때로 힘들다고 느껴지는 것은
내 삶이 그렇게 의미없는 삶이거나 재미없거나 사는 게 버겁거나...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아도 하루를 기록한다는 사실은
내 삶을 수수방관하지 않기 위해 혹은 지금 내 마음을 기록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건만
가끔 그게 부담이 된다는 것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게 확실하다.
 
아마 한국에서였더라면 이렇게 매일 일기를 쓰는 게(설령 부담으로 작용할지라도)
지금보다 더 쉽지 않았을 것은 확실하다.
 
내가 다른 곳에 와 있기 때문에
그리고 내 삶을 내가 돌아보기 위해
그리고 내 삶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 쓰는 하루의 기록...
 
부담이 아니라 편하게 즐겁게 마구 채워나갈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고 보니 메뉴도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기 전에 바꾸고 싶은 욕심도 든다.
 
오늘 후배들과 후배 중국 남자친구와 함께 술마시고 놀았다.
그렇게 마구마구 놀고나면 마음이 시원하고 즐거운 건 사실이지만
꼭 그런 후에 뭔가 아쉽고 허전한 마음도 함께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지금 난 이곳에 어떻게 서있는가. 왜 서있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무도, 혹은 내 자신도 쉽게 답을 주진 않는다.

2004년 1월 2일 금요일

시선.

영덕형님 부탁으로 기차표를 예매하러 갔는데
원하는 날짜로부터 5일전부터 예매가 가능하다고 그런다.
9일표를 사야했으니 4-5일부터나 예매가 가능한 것이다.
 
중국은 지역마다 예매할 수 있는 기간이 차이가 있다고 그러는데
장춘은 5일이 기본인가보다.
춘절이나 국경절같은 때는 10일 전에도 예매가 가능하도록 배려한다고는 한다.
 
표 예매하러 가서
말로 예매를 하고 그래야 하는데
사람이 좀 있어서 혹 버벅댈까봐 혹 긴장할까봐
종이에 써서 들이밀었었다.
 
말을 하는 게 사실 쪽팔리기도 하고 그래야 하는 건데
자꾸 사람들 시선?을 신경쓰는 내가 보인다.
그래서는 말이 빨리 늘지 않는데...
게다가 외국인이 중국어를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말이다.
생김새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그런 생각을 더 하는 걸까?
 
좀 더 적극적으로 얘기하고 부딪혀보고 해야할 일.
 
상대방을 의식하는 그 어리숙한 습관은 도대체 내 생각 어느 언저리에서 비롯되는 걸까.
자존심일까. 교만함일까.
과거 어떤 일들이 내 습관을 만들어냈던 것일까.
 
타파할 일.

2004년 1월 1일 목요일

조용한 새해.

새해를 정말 조용히 맞이했다.
 
텔레비젼에서는 어제부터 계속 환호와 폭죽과 술렁임이 가득한 방송을 내보냈지만
내가 묵고 있는 이 집안은 조용하고
장춘도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새 해를 느껴보고
아주 조용히 차분하게 2004년을 시작했다.
 
저녁에 후배들이랑 저녁 먹으며 술 한잔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중국 친구도 나중에 합석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한 편으론 새해같지도 않다.
 
정말 오늘이 별 날이 아니고 내일이 별 날이 아니라는 말
딱 어울리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