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28일 금요일

뮤직 다큐멘터리 '하루'

웹서핑을 하다가 뮤직 다큐멘터리 '하루'에 대한 포스팅을 보게 되었고 궁금증이 일어 p2p를 통해 구해서 봤다. 좋은 음악들이 BGM으로 깔리고 절제된 나래이션을 통해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다큐멘터리였다. 사람들의 삶을 과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폄하하지도 않으면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는 여느 다큐멘터리가 갖는 감성하고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뭐랄까. 좀 더 평범한, 그렇지만 따스한 느낌이랄까? 퀵서비스를 하는 조항대씨 모자에 대한 이야기가 내겐 아주 작은 반전(?)을 줘서 그런지 그 속에 등장하는 모두가 왠지 알게 모르게 인연을 맺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하긴, 아는 사람 몇 번만 거치면 다들 같은 소쿠리 안에 콩들 아니겠나.


복잡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 즈음이라 '감동'은 그럭저럭. 계속 굳건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하루'가 '무엇'을 위해서인지(인터뷰 내용 말고) 궁금해졌다. 왜 '앞'만 보고 살아야 했는지도 궁금해졌고 '사람'이 궁금해졌다.


다큐멘터리가 큰 자극이 없이 평범하게 느껴졌던 탓일까? 오히려 그런 뒤에 자막으로 나오는 문장 몇 개는 여느 때보다도 더 가슴을 후비고 들어온다.


아주머니는 끝까지 비밀이라고 했다.
얼마나 벌었을까?


모자파는 할머니는
오늘 3만 5천원 어치를 팔았다.


잡화상 할아버지는
2만원 어치도 못 팔았다.


조항대씨 어머니는
1만 2천원을 벌었다.


세 가지 일을 하는 안옥희씨는
오늘 5만원을 벌었다.


서울의 어느 68평형 아파트는
지난 1년 사이 6억원이 올랐다.
하루에 약 164만원씩 오른 셈이다.


그리고는 배경 사운드 속에 뉴스 나래이션이 덧붙여진다. ".....우리나라의 전체 사유지의 절반 이상을 인구의 1%, 약 487,000여 명이 소유하고 있다고 조사결과..."


이 세상에 와서 남의 땅,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만 하고 간다.


'하루'에 쓰인 곡들은?(클릭)

노란 가을



한 동안 눈에 띄지도 않더니
멀리 여행이라도 갔나 싶었다
근처를 맴돌다 얼굴 마주치면
손이라도 흔들어 인사라도 할 것을
아무런 말도 없이, 흔적도 없이

단풍이 노랗게 물들어 가을이겠거니
곧 겨울 향기 가득한 나무 사이로
바람 묻어 지나가고 나면
노란 첫 눈이 올 것 같다

노란 가을

2005720~


올 여름 7월 20일부터니까 방배동으로 온지도 꽤 되었다. 아직도 내가 중국에 있는 걸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어디에서 꼼지락 대는지 궁금한 사람도 있겠지.


4호선 이수역과 2호선 방배역에선 조금 멀고 7호선 내방역에선 가까운 작업실. 바로 근처에 마트도 있고 식당들도 있으니 먹는 걱정은 별로 되지 않는다. 작업실에 취사도구가 구비되어 있기도 하고.


바로 윗 층엔 '밝은 빛 태극권' 도장이 있는데 이 작업실로 오고 싶어했던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다만, 처음엔 개인적으로 조금씩 배우곤 하다가 지금은 어쩌다 한 번씩 배우곤 한다. 배운 건 꾸준히 연습하지만 그래도 아쉽다.


작업실엔 여러 팀들이 함께 쓰는 공간이라 초대할 수는 없지만 근처라도 지나가다가 내가 생각이 나면 연락해도 된다. :)


음, 그리고 요즘 연락처는 블로그 여기저기 뒤져보면 다 찾을 수 있지만 다시 한 번,


전화 | 공일공육이오공오일오사
메일 | k
******n@쥐메일닷컴 / s******n@한메일쩜넷 / k******n@엠팔닷컴

동물원에는 동물들이 있다.

솔직히 얘기하면 난 동물을 기르는 것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난 어렸을 적 개와 고양이를 모두 길러봤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점차 자라면서 동물을 기르는 것에 생각이 달라졌다.


애완동물은 생존을 위해 가축으로, 신(神)에 대한 경외심에 제물을 바치기 위해 시작된 동물을 기르는 행위가 점차 변해간 것이라 한다. 한 편으로는 희귀한 동물을 소유하는 것으로 자신의 특별함을 나타내고자 하는 인간 본능에 의한 행위가 아닐까 생각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이제는 개인의 취향에 대한 문제가 되었고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정당성에 대해 논의를 하는 건 민감한 사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특히 동물원은 그리 썩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단지 인간의 오감을 즐겁게 해주는 유희로써의 동물원이라면 더더욱 내키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유로 동물원에 갔다가 맥이 풀리고 자연과 멀어져 버린 동물들의 눈을 보고서 마음의 불편함을 느꼈다.


하지만 동물 자체를 보는 것은 언제나 신비한 경험이고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대상이긴 하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만난...

2005년 10월 27일 목요일

[drama] 민공 | Migrant Workers | 民工

민공(民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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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부작 드라마, 민공(民工). 처음엔 약간 지루한 듯 했는데 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 중국에서 DVD를 사올 때 직원이 추천해 준 것이 유효한 셈이다. 중국에서 민공은 농촌과 같은 외지에서 도시로 흘러들어온 서민 노동자를 말한다.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의 농촌은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될만큼 어려운 처지인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번화한 읍, 시 단위로 나와 임시직,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상해나 북경 인구수는 민공을 포함한 외지에서 도시로 돈 벌러 온 가난한 서민들로 인해 정확한 집계가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한 때 중국에서 민공들의 후생복리나 안전사고, 임금 등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불러오기도 했었다. 하루벌어 하루 살지만 그 돈은 농촌에서 버는 돈과는 꽤 차이가 많다. 그래도 얼마 되지 않지만.


내가 있었던 장춘을 예로 들면 식당에서 홀 서빙을 보는 종업원의 평균 월급이 400원~600원 사이다. 1원(인민폐)을 150원으로 환산한다고 하더라도 6만원에서 9만원 사이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돈을 모으고 모아서 자수성가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농촌을 떠나는 사람들이 쉽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건설현장의 민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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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는 이런 민공들의 삶, 민초들의 삶을 거의 사실대로 묘사하고 있다. 생활이 넉넉한(?) 사람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는 드라마처럼 생각되었는데 드라마 내용을 보니 그럴 법도 하다. 어쩌면 그런 이들에겐 사실감이 없는 내용이기도 하고 재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농촌인구가 중국 전체 인구 중 70여%(약 9억)를 차지 한다고 하니 드라마가 히트를 했음직 하다. 그리고 내용자체가 구구절절 고개를 끄덕일 만큼 닮은 꼴이겠구나 싶다. 내 중국 친구 중에도 그런 이들이 있다보니 드라마가 내겐 더욱 흡인력을 갖는 것 같기도 하다.


자식이 대학에 가길 원하는 부모와 거부하는 아들, 학교를 다니지 않고 기술을 배워 일하는 남자, 도시로 나가기만을 꿈꾸는 여자,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살면서 도시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 민공이 되기를 자처한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수 많은 도시 빈민 노동자들, 있는 자들. 이 모든 군상들이 얽히고 섥혀 희노애락을 만들어가는 드라마 '민공'은 사회주의 중국답게 교훈적인 내용이 꽤 있긴 하지만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스케치다.


총 20부 중에서 이제 겨우 9부까지 봤는데 재밌다. 현실은 현실이고 드라마는 드라마라 생각하면 가슴 아프지 않고 재밌게 볼 수 있다. 틈틈이 보는 거라 언제 다 보게 될지는 모르겠다.


덧-
다 봤다.-0-
그런데 그다지 재미가 없다. 이유는? 이 드라마가 중국 서민들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가정한다면 참 비극이 많은 나라구나 싶다. 드라마에서 여자의 무게는 한국에서보다 가볍게 그려지고 말 많고 문제만 일으키는 사람으로 묘사가 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중국에서 느낀 건 여자들의 지위가 상당히 높다는 것이었고 자기 주장을 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농촌은 아직도 구시대의 습(習)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가장 이해가 되지 않은 이는 22살의 농촌총각이다. 집안 망신시킨다고, 쪽 팔린다고 부인을 때려 쫓아내다니... 흠, 이런 녀석들이 아직 많은 건가?-_-;


중국 정부에서 민공들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류의 드라마는 분명 정부 시책으로 장기 방영이 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쩌면 드라마가 감동을 주기보다는 비참한 결말을 유도하면서 수 많은 민공들에게 농촌을 떠나지 말라고 위협하는 것일까? 하지만 중국의 사회주의 역시 '돈'문제에 흔들리고 휘청거리고 있는데 민공 역시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내가 느끼기엔 중국 드라마가 한국 드라마보다 사실성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닐지도... 힘겨운 삶을 넘어서는 모든 이들에게 축배를...!


여전히 중국 드라마의 장기인 '쿨'한 느낌은 곳곳에 존재한다. 어리둥절하게 하는 점프 컷과 표나는 특수효과도 함께.-_-a


스크린 샷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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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 송환 | Repatriation | 送还

송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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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눈물과 여러 차례의 한숨, 그리고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생각 하나"


송환을 보고 난 감상이다. 생각해보면 난 간첩에 대해서 초등학교 웅변대회 말고는 별다른 기억이 없다. 간첩을 생포하고 사살하던 뉴스도 그저 그런가보다 했을 뿐 인상에 남아있는 부분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북정책이나 간첩사건, 조작사건 등으로 인해 부지불식 중에 내가 받은 영향은 꽤 된다고 생각한다. 그 영향은 장성해서 나름대로 '사실'을 알고 있는 지금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은 듯 하다. 나 혼자만의 흉터가 아닌, '모두'의 흉터.


간첩이 아닌 북한에 대해서는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나도 '북괴'란 말을 사용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북한주민을 뿔달린 괴물로 묘사하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나이를 먹으며 떨쳐내려고 해도 쉽지 않은 부분이 많다. 아직도 어린 시절 "똘이장군"이나 "해돌이의 대모험"같은 '만화영화'에 열광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 의지가 아니었음에도 강제적으로 뇌리에 각인되었던 간첩, 북한의 이미지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한국 사회의 정체성은 나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한참 후에서야 차츰 거짓틀에 대해, 잘못 교육 받아온 것에 대해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여전히 회자되는 대북 사상, 관념들은 왜 그런 것일까. 그 시절을 피와 눈물로 살아온 어르신들 이외에 젊은 세대들을 옭죄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역사는, 기억은, 경험은 세습되고 유전이 되나보다. 거부하지 않는 한.


김동원 감독님은 한국독립영화의 대부로 알려져 있다. 사석에서 몇 번 뵌 적은 있지만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었다. 그 분의 모습은 옆 집 아저씨같은 넉넉한 인상과 목소리로 기억을 하는 것이 전부다. 그 분이 12년에 걸쳐 기록한 간첩의 이야기 '송환'은 그 분의 이미지에 비해 다루는 내용의 충격 내용으로 인해 더욱 아이러니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더불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생각들은 어떠한 말로도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영화는 비극을 담고 있지만 비극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희망을 얘기하고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나는 어떠한 신념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그 신념을 위해 인생 모두를 버릴 수 있는지 영화를 보는 내내 반문하고 또 반문했다. 거듭되는 반복의 굴레, 윤회의 굴레를 벗어버리기엔 이놈의 경직된 사회는 너무도 견고하지만 끊임없는 두드림과 노력으로 차츰 완화되고 있긴 하다. 그저 난 반문 밖에는 할 수 없다. 스스로 묻고 있지만 스스로 답을 얻어내기란 요원해 보인다. 일단은 살아가는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아직도 난 '미전향'과 '비전향'이란 말이 주는 엄청난 간극의 뉘앙스를 쉽게 체화해내지 못하긴 하지만 영화는 내게 인생을 송두리째 묻고 있고 그로 인해 답답한 마음만 한가득이다.


죽음과 싸워 지켜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죽음을 이겨내고 자유를 찾고서 또다시 죽음을 마주하는 이들 삶의 가치는 무엇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고 가슴은 먹먹하기만 하다.


12년의 기록이 지난 50여 년의 이야기를 모두 담아낼 수 없듯 50여 년의 상처는 시간이 얼마나 흘러야 아물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http://imgmovie.naver.com/mdi/mi/0382/C8253-00.jpg

2005년 10월 22일 토요일

미녀 삼총사

며칠 전 누이 집에 갔다가 재롱둥이들 카메라에 담아왔다.
한 녀석에게 헤어밴드처럼 꾸며주니 다른 녀석들도 달려들며


"나도! 나도! 나도!"


결국 세 녀석 모두 꾸미고 기념 사진.

미녀 삼총사


표정을 보면 각각의 캐릭터를 짐작할 수 있다.
이제 막내는 말을 제법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가장 귀여울 때는 울면서도 엄마가 알려주는 말을 또박또박 따라할 때다.
분명 제 의사전달을 도와준다고 알고 있고 말을 끝까지 따라한다.
중간에 다른 말을 시키려고 시도해도 절대 따라하지 않는다.-0-

2005년 10월 19일 수요일

주어진 길.

과거 어떤 기자가 당신의 영화와 장 뤽 고다르의 유사점에 대해 말했을 때, 당신이 "장 뤽 고다르가 누군데?"라고 답한 건 잘 알려진 일화다. 당신은 작가적 자의식이 전혀 없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영화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찾으려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고픈 말은?


고다르? 고다르가 누구지? (한참 생각하다 무릎을 탁 치며) 아! 고다르상!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다. 만약 당신이 무엇인가를 특별히 구하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그냥 흘려보내면서 주어진 길을 가다보면, 당초 찾고자 했던 그 무엇인가를 반드시 찾게 될 것이다. 난 그렇게 확신한다.


2005.10.25_#253 FILM 2.0에 소개된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의 스즈키 세이준과 허지웅 기자와의 인터뷰 내용의 일부다.


의지와 신념들은 때론 이기적인 고집으로 고개를 돌린 후 맹목적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기도 한다. 전체 삶에 대한 믿음, 목적이 불명확할 바에야 작은 목표를 세워 하나하나 해결해 가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처럼 보인다. 하지만 종종 목적을 위한 목적 때문에 정작 내 자신에 대한 고민은 놓쳐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냥 흘려보내면 되는 것일까. 특별히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내게 주어진 길은 무엇인가. 난 그 길을 알고 있는가? 간혹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몸은 비대한데 알고 있는 사실은 갓 태어난 신생아처럼 아무 것도 없는 듯 느껴지곤 한다. 아니, 줄곧 그래왔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모르겠다.


내가 찾고자 하는 것.

2005년 10월 18일 화요일

춘천역

몇 주 전이던가?
일이 있어 비오던 날 춘천에 갔는데 춘천역 앞 풍경이 촉촉하다.
춘천역은 너무도 작아서 시골같은 정겨움이 있다.
사람들의 발길도 뜸한 시간,
춘천이 예뻐보인다.


춘천역 앞

서울로 오던 기차 안에서

호주에서 온 블루맨s

인디애니페스티벌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오래전에(-_-;;) 폐막식 때 갔었는데 씨네코아 앞에서 호주에서 온 마임팀이 폐막식 전 공연을 하고 있었다. 개막식 때도 와서 공연을 했다고 하는데 보지 못했다.


호주에서 온 블루맨들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했던 블루맨들은 아카펠라 실력도 수준급이다. 몸매는 동네 아저씨같은 몸매지만 몸에 밴 매너들로 인해 구경하던 많은 이들이 즐거워했다.


밤 촬영은 조명이 있어도 이렇게나 흔들린다.-_-;
디카로 촬영한 동영상도 있는데 귀찮아서 못 올리겠다.-_-;;;


블루 아저씨들 언제 또 오려나??

부산 영화제 트레일러에 대한 평가, 그리고 단상

여기다가 영화제 트레일러는 단연 최악이다. 제발 쇼박스에서 이젠 손을 안댔으면 한다. 작년 CG로 떡친 반딧불몰이와 조금은 다르지만, 전혀 영화제의 의미가 뭔지 감잡을수 없는, 더욱더 민속문화제 같은 이미지를 굳히는데 일조했다. 누구의 얘기로는 어느 한 외국인 게스트는 "태국"의 문양이 아니냐고 조심스레 물어봤단다.


가끔 둘러보는 블로그에서 우연히 위와 같은 포스팅을 봤다. 전체 내용은 제10회 부산영화제에 대한 이야기인데 중간에 위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포스팅 제목은 "편향되게 얘기한다 - 부산 영화제 경험기 : 2005. 10. 8 ~ 10"이다.


초반PD를 했던 8회 트레일러는 그럭저럭(?) 괜찮은 반응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이번 10회 트레일러에 대한 피드백들은 참 아쉽다. 아쉽다는 감정은 평가가 좋게 나오지 않아 아픈 마음이 아니다. 나 스스로도 그다지 만족을 못하고 있기에 드는 일종의 반성같은 느낌이다. PD였네 TD였네, 총괄하신 감독님의 책임이네, 상황이 이러저러했네라고 궁시렁 대는 건 별 의미가 없다. 트레일러를 본 사람들의 솔직한, 따끔한 피드백을 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 게다가 칭찬이라고 해서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악평이라고 해서 거부하고 싶진 않다. 스스로 위안하고 다짐하는 건 만약 다음에 또다른 기회가 있다면 잘 해야지 하는 마음 뿐이다.


트레일러 훼손 때문에도 소란스러웠는데 훼손의 문제가 아닌 영상 그 자체로 평을 받으니 아프다.


위에 있는 글을 소개할까 말까 망설였다. 스스로 부끄러워 낯뜨겁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면교사로 삼고 가기로 마음을 돌렸다. 본 사람들마다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넘어가기도 멋적다.


글이나 작업 등은 활자화되고 영상화되어 흔적이 남고 자료가 되기 때문에 좀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2005년 10월 15일 토요일

21세기의 빨갱이, 그리고 아프리카.

아침에 일어나 블로깅을 하던 중 거대한 아스피린님 블로그에서 포스트 하나를 접하게 되었고 소개한 대로 원문중앙일보 기사를 읽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스피리님의 제목에 대한 적절한 지적과 원문의 내용을 곡해하고 왜곡하는 찌라시 기자들에 대한 일침, 네티즌들의 부화뇌동함에 따끔한 충고 글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하고 난 후 문득 다른 측면에 관심이 간다.


장시기 교수 글 읽기



일단, 원문을 다 읽어본 사람이라면 김일성을 찬양했네 마네 하는 이야기는 입에 담는 것 조차 코미디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장시기 교수가 제목을 좀 더 친절하게 적었다면 이런 해프닝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먹이를 찾아 네트의 기슭을 헤메고 다니는 하이에나'같은 언론들 사이에선 강정구 교수 사건에 이은 관련자 엮기 이벤트가 (언제나처럼) 진행되고 있는 중인가 보다.


강정구 교수 글 읽기

2005년 10월 14일 금요일

[펌] 맨날 컴퓨터만 하니까 그렇지.

역시 원 출처를 모릅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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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빌게이츠 요즘 몸 건강히 잘 지내냐.

가끔 이런 걸 보며 크득크득 소리내서 웃는다.

[펌] 실제? 착시?

아는 분 싸이에 갔다가 우연히 본 그림.
원 출처가 불분명해서 밝힐 수 없음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죄송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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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미지는 예전부터 인터넷에서 종종 봐왔던 거라 뒷북성이 강하지만 몇 개는 처음 보는 이미지다.
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 앵글 잘 맞춰서 찍는 사람들 모두 대단하다. 콜라병은 아무리 봐도 그림같지가 않단 말이야.


재밌는 세상. :)

행운도 필요없다.

- 자신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제일 먼저 알아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쉽게 잊혀지는 영화는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런 영화를 만들기 위해 매번 내 인생의 몇 퍼센트씩을 지옥 같은 현장에서 바치면서 영화를 찍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항상 관객과의 정서적인 교감을 생각한다. 가끔 새벽에 케이블 TV를 보다보면 질 낮은 싸구려 영화를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나도 어느 순간 그런 영화로 기억될까봐 두렵다는 생각을 한다. 그 사람들도 똑같이 고생스럽게 영화를 찍었는데 완성된 결과물이 무의미하게 눈과 귀를 괴롭히는 영화로 남는 것 만큼 공포스러운 일도 없을 것 같다."


- 영화에 발을 들여놓은 과정이 독특했는데, 어떻게 영화감독이 자신의 길임을 확신하게 됐는지
"일단 말해두고 싶은 건 나는 영화감독이 되기 위한 최악의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경제력, 인맥, 학벌. 정말 내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영화를 너무 만들고 싶어서 무작장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물론 먹고사는 현실적인 문제도 배제할 수 없어서 여러 직업을 전전한 게 30가지가 넘는다.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평생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영화 밖에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가끔 내게 영화 감독이 된 과정을 물어보는 질문 속에는, 과연 무슨 행운을 만나 지금까지 왔는지 나를 표본으로 자신에게 대입할 어떤 경우의 수를 찾아보려는 듯한 의미가 숨어 있다. 그러나 행동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는 사람에게 행운 같은 건 절대 오지 않는다.


생각이 있다면 직접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가서 영화를 찍어보거나, 시나리오 한줄 제대로 써보지 않고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모두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에너지가 있을 때 과감히 행동하지 않으면 어느새 나이만 먹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나에겐 행운이 없었다. 정말 최악의 상황 속에서 시작하여 여기까지 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출처 |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85818


류승완 감독과의 인터뷰 중 일부 내용이다. 세상엔 모든 게 갖춰져(있다고 생각되는)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그리고 갖춰가는 사람들이 있다. 류승완 감독 말처럼 어떤 사람들은 남들이 볼 때 어떤 행운을 만나 그 위치까지 갔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이 말한 대로 영화감독(혹은 그 무엇이든 간에)이 되기 위한 최악의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영화를 너무나 만들고 싶어서" 백방으로 뛰어다닌 노력의 결과가 지금의 자리를 만들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 똑같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성공 이야기가 늘 잘 팔리는 이유는 그대로 해내는 이들이 적기 때문이고 나태한 자신의 삶에 쉽게 무릎을 꿇기 때문일 게다.


한 때 나와 동갑인 류승완 감독에게 터무니 없게도 질투를 느낀 적이 있었다. 지금의 내 나이와 현재의 위치가 늘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다. 당연히 내 자신의 게으름과 변명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인간적 본능으로 질투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신화(?)를 보고 들으면서도 움직이지도 않으며 꿈만 꾸는 건 바로 실패한 사람의 삶과 다를 바 없는 걸 안다. 아무튼 인터뷰 내용을 보며 많이 찔린다. 핑계로 점철된 삶을 꽤 많이 살아온 것 같아서다.


작품을 만들어서 수상을 하던지 말던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던지 말던지 일단 내 속에서 그르렁 대는 소리부터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만들어 내야하지 않나 싶다. 도저히 아무것도 정리도 안되고 꽉 막힌 속을 가지고는 허구헌날 무언가를 한다고 꼼지락 거리는 것도 지친다. 형편없는 작품을 만들더라도 만들어 놔야 형편없는지 어떤지 알 수 있을 거 아닌가. 남들에게 그저 그런 작품으로 기억되는 게 두렵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말이지.


별 것도 없는 상태로 참 오래도 버텨왔다 싶다.


행운도 필요없다. 그냥 좀 풀어내지길 스스로 희망할 뿐이다.

2005년 10월 12일 수요일

계원조형예술대학의 문제

얼마 전 극적으로 문제가 타결되었다고 기분 좋아하시던 교수님(들)과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함께 답답해하고 문제 해결을 반가워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문제는 또다시 산 넘어 산이다. 대학 내의 문제는 민주화 운동으로 시작해 학내 이권다툼, 학내 비리로 이어지더니 대학의 본질은 저만치 사라지고 대학교육과 학생을 볼모로 한 투쟁으로 변하고 있다. 학교의 이사장이라는 자는 학교를 그저 돈세탁이나 하는 세탁기 정도로만 아는 건지 도대체 학생 및 교직원들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없고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이 모든 걸 장악해 좌지우지 하려고만 한다.


학교를 처음 설립했을 때 목적도 염불보단 잿밥 쪽이었겠지. 학교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신입생을 뽑지 못하고 수업이 중지될 때 가장 피해를 입는 쪽은 학생들인데 학교 이사장에게 학생이란 원서비와 등록금을 가져다 주는 돈의 통로 쯤으로만 보이고 있을 게 분명하다.


학교의 모든 구성원들은 어제의 대립이 오늘의 화합으로 오늘의 화합이 또다른 투쟁으로 이어진다.


2005년 10월 11일 화요일

잉? 그랬던거야?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대만 영화인들의 불만이 접수되었다는 연합뉴스의 소식을 접했다. 진행 미숙과 불친절, 통역 미숙 그리고 국제 영화인들보다 국내 한류스타들에게 집중 조명하는 진행 특히 대만 영화감독 리윈찬의 국적을 한국으로 표기되는 (큰) 실수 등이 속속 벌어지며 대만 영화인들이 불만을 토로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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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 때문에 부산 국제 영화제를 나름대로 비판했었는데 이 일이 터지는 걸 보니 트레일러 뿐만이 아니었던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개막식부터 참여해서 보지는 못했지만 개막식 참여했던 분들 얘기륻 들어도 행사 진행이 10년이나 된 영화제 치고는 미숙하고 엉망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다.


영화제를 진행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영화제 진행을 위해 투신하는 이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물론 오랫동안 해오면 진행의 노하우도 생기고 요령도 생기겠지만 그렇더라도 어려운 일인 건 사실이다. 일이 어려운 만큼 보람도 클 것이고 자부심도 상당할 게다. 당연히 이에 따르는 책임은 막중하다. 더군다나 '국제'라는 이름을 붙이고 치뤄지는 행사들은 이미 행사 자체가 지자체 성격을 떠나서 '한국'이란 브랜드로 사업을 하는 것과 같다. 이런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아무리 행사 진행하는 임원들이 고생을 하고 노력을 했다고 하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큰 오점을 남기고 만다.


하지만 어떤 행사든 실수는 있게 마련인 법. 그 실수의 마무리가 잘 되었을 때는 세월이 흐른 뒤 영화제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에피소드가 되고 미담이 되는 것이겠지만 그 실수를 덮어두고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실수에 대한 부인(否認)이 능사가 아니라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문제해결에 적극적이고 겸손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 관록있는 행사 주인들의 모습이다. 혹여 이번에 '연합뉴스'에서 보도된 부산 국제 영화제의 모습이 100% 사실이 아닐지라도 영화제 측에 불만을 가진 영화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부족한 모습에 개선의 의지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부산 국제 영화제와 동경 국제 영화제가 서로 아시아를 대표하고 있는 영화제라고 우기고 있는 판에, 한류의 화려함 뒤에 한류의 오만함이 지적되고 있는 이 시기에 부산 국제 영화제는 10년 동안 쌓아온 보다 전문가다운 능숙한 솜씨로 깨끗한 마무리를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일의 발생보다는 사후처리가 더욱 중요하다. 그건 어떤 상황에서나 마찬가지다.

부산국제영화제 트레일러 훼손에 관한 공개편지



부산에서 올린 소식을 접한 분들이라면 다 아는 내용. 부산국제영화제를 위한 트레일러가 훼손되었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이 관철되지 않음으로 인해 제작에 참여한 감독 및 피디, 스텝들은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일종의 배신감을 갖게 되었다. 보다 나은 영화제가 되도록 하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닌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고 여전히 방만한 운영과 고자세를 유지하는 영화제에 자성의 기회를 주고자 이용배 감독님이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에게 공개편지를 띄웠다. 위의 내용은 그 편지의 전문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테지만 이 편지가 나오기 전까지 소위 행사 주체의 의해 갈기갈기 찢겨진 트레일러를 봐야만 했던 감독의 심정은 어땠을 것이며, 손상된 트레일러를 보게 된 국내외 관객들에게는 어떤 말로 설명을 해야 한단 말인가. 공개편지는 10년 영화제에 싸움을 거는 도발이 아니라 문제 해결에 대한 조속한 시정을 원하는 영화인의 마음이자, 영화제가 명성에 걸맞는 모양새를 갖추게 되길 원하는 관객의 마음인 것이다.


이를 통해서도 아무런 답변이나 조치가 없다면 영화제 스스로가 자격없음을 시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여전히 뭐가 문제인지를 모르고 있는 영화제 측이 답답하기만 하다. 행사는 이름 값으로만 굴러가는 게 아니다. 게다가 그 이름 값은 부산국제영화제를 위해 음으로 양으로 열의와 성의를 다한 영화제 스탭, 감독, 배우, 관객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한낱 '트레일러'가 아니라 영화제의 얼굴인 '트레일러'를 이렇게 다루는 정도라면 그들의 마음엔 국내외 감독, 관객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멘트조차도 다 거짓인 것이다. 머리와 가슴이 텅 빈, 몸집만 거대한 상징물로서의 영화제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05년 10월 10일 월요일

갈증

한 없이 잡아 끌어보는 생각의 꼬리.
더 이상 놓칠 것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젠 잡을 것도 없다.


주변으로 무언가
스물스물 나를 둘러싸는 것 같긴 한데
하나하나 정리해내지 못하고 있다.


조금 가닥이 잡힐 것도 같은데
아직도 오리무중.


갈증이다.

나무의 변화

BBC의 전언에 따르면 이제 나무가 CO2를 뿜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상식으로는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산소를 뿜어내는 것이었는데 나무들이 이례적인 고온현상을 견디기 위해 생장 시스템을 바꾸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한다. 유럽에서 연구한 학자들의 결과다.

아무 말도 할 줄 모른다고 미물취급을 받거나 생명이 없는 취급을 받던 나무들이 자신들의 생장시스템을 바꿔가면서까지 얘기를 하고 있다. 참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인간들에게 호들갑을 떨며 말을 하지도 않는다. 그냥 자신들의 삶을 묵묵히 지켜갈 뿐이다. 이를 보며 인간들이 나무들을 욕할 것인가? 신기한 일이고 재밌는 일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만 볼 것인가?

어쩐지 올 더위는 끈질기게 오래 간다 싶었다. 지금 10월 초반인데도 주변에서 모기 때문에 잠을 못이룬다는 사람들도 많고 선선한 바람보다는 아직도 후덥지근한 기후들이 계속되고 있다.

계절이 변할 때는 변하는 이유가 있어서 변하는 것이다. 그건 우주가 생기고 지구가 생겨난 이래로 계속 그렇게 해온 것이다. 그걸 단 몇 십년 만에 완전히 다른 지구 시스템을 만들어 놨으니 지구도 견디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카트리나나 쓰나미도 지구의 평형이 깨지면서 생겨난 재해는 아닌가 생각해 본다.




더불어 살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인가...

2005년 10월 8일 토요일

리얼 트레일러 소각식(?)

소각식은 취소되었습니다. 리얼 트레일러는 조직위 측에 전달되었습니다. 이 글은 비슷한 일이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올리는 것이고 트레일러를 만드신 감독님의 심정을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위 글은 tengulee님 블로그에서 그대로 퍼온 글입니다. 물론 허락을 받았지요.


사실 어제 부산에 내려오자 마자 이 감독님을 뵈었죠. 내려오기 전에 트레일러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이 감독님이 살짝 흥분한 상태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고 그 '내막'을 들었습니다.


아~ 이런 그 내막은 있을 수도 없는, 있어서도 안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영화제를 10년이나 운영해오면서 트레일러 필름의 체크나 문제 발생시 대응능력이 이것 밖에 안되나 하는 허탈함도 함께 느껴지더군요. 작품의 완성도는 별개 문제입니다. 작품에 대한 비판과 질책은 달게 받아야지요. 그러나 그 짧은, 하지만 영화제의 얼굴이자 첫 인상이라고 할 수 있는 트레일러에 대한 기술적 실수로 인해 생긴 문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결국 20초 분량의 트레일러에 사운드 필름이 21프레임나(!!!) 잘려나가튼 바람에 사운드 싱크가 하나도 맞지 않은 상태로 개막식에서 상영이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까지 각 상영관에서는 제대로 된 트레일러를 관객들과 감독들이 보지 못하고 사운드도 엉망인 채로 상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다시 급하게 프린트를 떠서 가져오긴 했지만 92개나 되는 상영관에서 트레일러를 교체하는 작업은 여전히 늦어지고 있고 필름 관리하는 '알바'들의 미숙함에 문제 해결은 더디 될 것 같습니다.


인디라운지에서 들은 한 감독님의 얘기를 인용하자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기에 발생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여전히 상영관에서는 필름으로 상영을 하고 있지만 필름(아날로그)에 대한 교육은 순방향으로도 역방향으로도 전혀 교육이 되지 않고 인식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0년이나 진행해 온 한국 최대 영화제인 부산 영화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도 늑장으로 대처하거나 문제해결에 아무런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20초 밖에!! 되지 않는 트레일러는 영화제 조직위에 아무런 가치도 없나 봅니다.


한류에, 한국영화의 약진에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축제는 한동안 지속될 것 같지만 이런 일들이 또 발생하게 된다면 그리고 영화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고집스러운 권력이 되어간다면 미래 영화제의 성패도 알 수 없는 일이 되고 말 것 같습니다.


부산 국제 영화제에 오는 것만으로도(영화를 한 편 보지 못하더라도) 영화제의 생생한,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을 공유하게 되는 축제가 앞으로도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은 비단 저 뿐만은 아니겠지요. 눈가리고 아웅하는 시대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버리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공식 사과문이 영화제 기간에 나오게 될 것 같네요.


즐거운 축제 조금만 더 즐기다가 돌아가겠습니다.



2005년 10월 7일 금요일

[ani] 10th PIFF Leader

넉넉치 않은 시간과 열악한 조건과 쉽지 않은 주변 환경 속에서 열.심.히 만든 부산국제영화제 리더필름이 PIFF 홈페이지에 공개가 되었다. 다시 디코딩을 하고, 게다가 작은 화면이라 아쉽지만 느낌을 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론 큰 화면으로 확인하고자 그리고 바닷 바람 잠시 쐬고자 내일 부산에 내려갈 생각이다. ID카드가 나오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영화표는 구해지는 대로 보고 그렇지 못하면 아는 사람들과 영화제 속에 묻혀 있다가 올라올 생각이다.


부러운 사람은... 방법이 없다.-_-;


부산에 오게 된다면 본인에게 연락을 해도 된다. 하핫.




Leader(Trailer) 보러 가기

대장금, 중국에서 난리가 났다.

상해에 있는 멀티미디어산업원 소속 사람하고 전에 메신저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중국에서 대장금하고 풀하우스가 엄청 인기입니다." 정말? 그렇다면 대단한걸?


난 대장금을 본 적이 없다. 사실 보고 싶었는데 못봤다. 그 이후엔 관심이 없어졌다. 그리고 풀하우스도 보지 못했다. 주변에 있는 한 여성은 대장금은 이해가 되지만 풀하우스가 인기가 있다는 건 이해가 안된다고 한다. 혹 만화라면 모르겠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든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니 축하할 일이다. 기회가 된다면 훑어라도 봐야겠다. 중국에 들어가면 대장금 DVD를 사오던가.


암튼 상해에 있는 지인과 얘기를 나누고 난 얼마 후 중국 신문에서 대장금이 중국 전역에서 난리가 났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정부 관계자도 대장금을 한 번 정도 거론해줘야 분위기가 좋아지고 인기를 얻는다나? 중국 대륙 뿐만이 아니라 대만도 사정은 매한가지인 것 같다.


접해보질 않아서 난 잘 모르겠지만 왜 그렇게 인기가 있는지에 대한 이유는 중국통 EnCheng님 블로그에 가보면 알 수 있다.


그러고보니 애니메이션 판도 난리가 아니라더라. 지금 꽤 유명한 감독은 대장금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고 풀하우스도 곧 제작된다는 소식을 접할 것 같다. 지금 한국 애니메이션의 한 쪽의 흐름은 드라마나 영화를 애니메이션화 하는 것이다. 즉 드라마나 영화의 후속편이나 외전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행보는 역시나 '돈'이 되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개인적으로 농반진반 생각하길 이건 변종된 형태의 'OEM'이 아닌가 싶긴 하지만 제대로 잘 만들어지기만 하면 좋겠다. 꽤 괜찮은 시나리오와 연출의 감이 존재하는 원작이 있다는 건 그만큼 위험부담도 적을테니 말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들은 다시 중국으로 들어가 사업물꼬를 트게 되겠지.


전에 중국에 가서 친구 집에 갔을 때 꽤 많은 채널에서 한국드라마가 방영되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었는데 이제 대장금을 기점으로 폭발을 하고 있나보다.


대장금의 드라마 구조는 드라마 '허준'과 비슷한 거라고 설핏 들어보긴 한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본 중국 드라마 중에도 이런 드라마 구조를 가진 게 있는데(꽤 많은 드라마가 성장구조 형식을 취하고 있긴 하다) "大染坊(따란팡)"과 "康熙皇朝(캉시황차오)"다. 이 드라마들은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인데 그걸 감안해본다면, 그리고 한국 드라마의 완성도나 중국인이 보기에 비슷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독특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조선시대 분위기의 사극류라는 걸 고려해본다면 '대박'날 만도 하겠다.

2005년 10월 6일 목요일

독립 애니메이션도 권력(권위)가 목적인가?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들끼리 모인 자리에서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작품을 꾸준히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영화제 어느 곳에서라도 주목을 받았거나 상을 받았던 감독과 그렇지 않은 감독으로 나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개인적인 친분이 있을 경우에는 위 2가지 상황은 전혀 나뉘지 않는다.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고 싶어하거나 초청을 받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 거다. 한국엔 독립애니 감독들이 대중(관객)과 누릴 수 있는 소통의 창구가 너무 없고 지원사업도 그다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립애니 감독의 자격으로 한국에서 산다는 건 먹고 살기가 힘들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영화제를 통해 감독 자신의 이름이 일단 "뜨고"나면 많은 게 달라지고 (계)"급"이 격상된다. 그래서 영화제를 위한 작업을(도) 열심히 한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이곳 저곳에 창작 지원금을 받을 때 준비해야 하는 기획서는 '영진위'용 기획서와 '애니센터'용 기획서 양식이 있다는 소문들. 그리고 그 소문은 일정부분 타당성을 갖고 비슷한 느낌의 작품들의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독립애니 감독들은 그렇게 지원금을 받아 몇 개월 생활비를 확보하고 생활고와 싸워가며 작품을 만든다. 그리고 난 후에 실력이 좋다면 또는 간혹 운이 좋다면 영화제 초청을 받아 참석한다. 혹여 수상을 하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단적인 예로 박세종 감독의 "축 생일(해피버스데이)"이 오스카에 호명이 되지 않았더들, 그리고 다른 영화제에서 상을 받지 못했던들 박세종 감독을 아는 사람들이 한국에 몇이나 되었을까. 당연히 유명해져서 스스로의 힘이 커지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독립애니 감독들은 별로 없을 듯 하다. 그리고 말했듯이 생활고를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원래 부유한 감독들도 물론 있겠지만 독립애니를 만드는 감독들은 대체로 힘겹다.


그런데 이런 사실들이 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지만은 않는다. 개인적인 견해차는 늘 존재하기 때문에 어느쪽이 옳다, 그르다를 말하고 싶은 건 절대로 아니다. 그저 요즘에 와서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들 중 한 부분이 위와 같은 내용들에 관련되었다는 것 뿐.


독립애니 감독들이 혹은 관계자들이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하면서 조금씩 권력(권위)를 알아가고 누리며 행사한다는 것이다. 정말 이 작은 놀이판에서 그런 상황들을 접하거나 느끼게 된다는 건 슬프기 짝이 없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독립애니 제작의 목적은 분명 그것만은 아닐 터인데 난 지금 무엇을 위해 애니메이션 판에서 살고 있는가. 내 안에는 저런 생각, 마음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가. 이런 내용과는 완전히 별개로 순수하게 애니메이션 만드는 게 좋아서 사는 감독 얘기도 들어왔다. 그런데 그 감독이 갖고 있는 생각 이면엔 위 내용과 같은 생각들이 잠복해 있기도 하더라.




오늘 제 1 회 인디 애니 페스티벌이 막을 내렸다.

2005년 10월 5일 수요일

스킨 변경.

1
날씨도 쌀쌀해지고 그래서..인지
문득 스킨을 바꾸고 싶어졌다.



leezche님이 배포한 스킨. 심플하고 맘에 든다.
스킨을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 밖엔.
아무리 들여다봐도 내 머리 구조는 알파벳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정도.
하지만 다른 이가 만든 스킨이 맘에 드니 머리 아프지 않고 행복하다. :)



2
아는 이들의 블로그며 싸이며 홈페이지를 돌아다니다가
접하게 된 여행 사진들을 보니 마음이 동(動)한다.
좀 길게 길게 배낭메고 떠났으면 하는 생각이...



3
시간은 정말 빠른 듯.



4
또 기회를 놓치기 전에 영화 몇 편은 봐야할텐데...

2005년 10월 3일 월요일

직업에 대한 단상

대학 다닐 때 같이 방을 썼던 형이 결혼을 한다고 해서 대전엘 다녀왔다. 당시에 함께 공부했던 형들이 몇 왔다. 반갑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성직을 수행하고 있는 이들이기에 나와는 다르다. 난 그 길을 포기해서 이젠 '범부중생'이 되어버린 탓이다. 여전히 난 성직자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스스로 포기해서가 아니라 치열하지 못한 성직자들을 보면 그렇다.

뭐, 어차피 사람들인데 일반인들과 다를 게 무어냐고 묻는다면 할 말 없지만 '성직'을 가지고 필요에 따라 또는 자신의 입맛과 기호에 따라 일반인과 동일시하거나 혹은 완전히 다른 부류로 나누거나 하지만 않는다면 말 없이 있어줄 수 있다.

비단 성직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자신이 가진 직업, 지위, 계급을 이용해 때에 따라 소신과 정체성과는 별개로 졸렬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지 않나 싶다. 개인끼리도 힘의 균형을 자신에게 끌어오기 위해 다툼을 벌이고 어떤 소속 안에서는 자신의 힘이 우월함을 과시하고 싶어하고 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그래서 종종 삐딱해지는 그런 상황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직업(?) 속에서도 그렇다.

2005년 10월 2일 일요일

난 가슴이 아프다고 밖엔 다른 생각이 없다.

나는 강준만씨를 좋아한다. 때론 존경한다. 사랑스럽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김규항씨를 좋아하고 존경하며 사랑스럽게 느낀다. 내게 노선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난 쉽게 대답할 수 없다. 내 삶은 "열심히 살아서 참된 삶의 가치를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B급 좌파니, 중도 보수니 하는 선에 내 삶을 얹히기가 참 힘들기 때문이다.

김규항씨의 글 중에 (앞 뒤 문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아채지 못했다면 죄송스럽지만) "자, 이제 한번 살펴보자. 그래서 세상은 변했는가? 언론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고 했고 정치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고 했는데 세상은 정말 변했는가?"라는 말이 있었다.

난 역으로 되묻고 싶다. "정말 언론이 변했는가?" 물론 나 또한 언론 하나가 변한다고 해서 세상이 쉽게 변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개인적인 기억으론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발표가 된 다음 날 세상의 공기가 더 상쾌할 줄 알았고 하늘 빛이 달라질 거라 생각했던 (어떤 면으론) 무지몽매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난 지금의 언론이 달라졌다 생각하지 않는다. 강준만씨의 글을 읽으며 공감을 했던 내용, 지지를 했던 내용이 지금 현재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고 난 생각한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실천으로 보이려 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염증을 느껴, 혹은 본인의 내공에 힘이 달려 강준만씨는 절필을 했다고 믿는 우매한 백성이 느끼는 건... 강준만씨가 목에 핏대를 세워 말하던 때와 지금의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아니, 나는 무엇을 했는가.

강준만씨와 김규항씨를 이간질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난 앞서 말한대로 두 분을 좋아한다. 그리고 두 분의 설왕설래는 애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느낀다. 다만, 난 작금의 상황이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고 느끼는 것 뿐이다. 매체가 달라졌고 방식이 달라졌고 행태가 기형으로 변한 것 뿐이다.

정태춘씨가 92년도부터(라고 생각한다) 불러왔던 사회 비판적 노래들의 가사는, 특히 "아! 대한민국" 노래의 가사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 그렇게 싸우고 투쟁하는데 혹은 조금씩 삶의 형태를 바꿔가는 데 변하는 건 없을까. 변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어리석다. 분명 변해가고 달라져 가고 있다. 다만, 기득권들의 양태는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규항씨가 고백한 대로 "나는 매우 성실한 미디어 학자인 그가 이 쇼가 갖는 진정한 의미를 모를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는 것에 희망을 건다. 비슷한 곳,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이들끼리의 아픈 비판은 추분히 공감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조선일보'의 행태와 노선에는 그다지 이해를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냥, 어리숙한 생각으로 김규항씨의 꾸준한 일상의 투쟁과 강준만씨의 격렬한 논쟁이 늘 공존하며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민초들에게 크고 작은 경종이 되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억지 연대가 아닌, 비판적 연대가 필요한 때에 기득권에 밥그릇을 걸고 싸우는 이가 부족하다는 것은 평범하게 삶을 '잘' 살아보려고 하는 내겐 더 견디기 힘든 상황일 뿐인 것이다.

그게 '쇼'가 되었든 '삶'이 되었든 난 두 양반의 노선엔 '대동소이'함이 보이는 것이지 '소동대이'를 느끼진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전히 두 양반과 같은 삶의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그립고 삶의 실천을 하는 이들이 그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