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27일 월요일
영하 22도, 장춘에 도착하다.
상해에서 비행기로 대련을 거쳐 3시간 여만에 도착한 장춘. 공기가 일단 상해하고 확연히 다르다. 비행기장엔 쌓인 눈이 보이고 비행기에서 내리자 코가 시큼할 정도의 매서운 차가움. 옷을 단단히 입고 목도리에, 빵모자에 장갑까지 꼈으니 그나마 괜찮았지만 얼굴에 닿는 공기는 그야말로 얼음장같다.
택시를 타고 먼저 후배네 집으로 갔다. 인터넷으로 확인할 일도 있었고(집에 인터넷 끊었다.) 간만에 만났으니 지난 얘기라도 해야지. 오는 길에 택시는 빌빌빌 기어가듯 다니고 거리에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다들 술집이나 노래방이나 집에 숨어서 이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겠지.
영하 22도, 내가 오기 전엔 영하 28도라고 그러던데 장춘의 겨울은 정말 춥다. 하지만 나도 여기에서 겨울을 지내봤기 때문에 그다지 놀라움이 생기지 않는다. 쉽게 적응하고 몸에 밴다. 이보다 더 추운 곳일지라도 사람이 어찌 살 수 없을까.
얼어붙은 장춘, 그런데 반갑다. 날씨는 아무리 추워도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날씨에 관계없이 얼어붙지 않는다.
이제 짐정리도 하고 처리할 일들을 해야지.
한국에서 눈을 보지 못하다가 장춘에서 눈을 보니 겨울같다. :)
택시를 타고 먼저 후배네 집으로 갔다. 인터넷으로 확인할 일도 있었고(집에 인터넷 끊었다.) 간만에 만났으니 지난 얘기라도 해야지. 오는 길에 택시는 빌빌빌 기어가듯 다니고 거리에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다들 술집이나 노래방이나 집에 숨어서 이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겠지.
영하 22도, 내가 오기 전엔 영하 28도라고 그러던데 장춘의 겨울은 정말 춥다. 하지만 나도 여기에서 겨울을 지내봤기 때문에 그다지 놀라움이 생기지 않는다. 쉽게 적응하고 몸에 밴다. 이보다 더 추운 곳일지라도 사람이 어찌 살 수 없을까.
얼어붙은 장춘, 그런데 반갑다. 날씨는 아무리 추워도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날씨에 관계없이 얼어붙지 않는다.
이제 짐정리도 하고 처리할 일들을 해야지.
한국에서 눈을 보지 못하다가 장춘에서 눈을 보니 겨울같다. :)
2004년 12월 26일 일요일
상해에 오다.
상해에 왔다. 8월에 온 후로 처음이니 4개월 만이다. 원래 장춘에만 들어가서 나머지 짐을 정리해 한국으로 완전 철수를 할 생각이었는데 상해에 볼 일이 생겨 겸사겸사 들어왔다.
중국어에 자신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간단한 중국어에 주눅이 들 정도는 아니니 상해에 도착해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도착한 오늘,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요 며칠 상해는 무척 추웠다고 하는데 한국의 겨울 날씨로 치면 좀 서늘한 냉기가 드는 정도랄까? 공기가 습하고 바람이 좀 불면 꽤 서늘하긴 하다. 낮에는 상해 온도가 영상 17도였다고 하는데 밤이 되니 온도가 꽤 많이 떨어진다. 듣자하니 지금 장춘은 영하 28도까지 내려갔다는데...이걸 무척 추운 날씨로 생각하다니...역시 상해는 상해다.
오자마자 아는 분들에게 전화를 하고 소식을 전했다. 주홍수, 조승현 감독님은 여전히 바쁘게 작업 준비와 진행을 하고 계시고 김호는 휴일인데도 집에서 번역 일을 애써 하고 있다. 창광시 감독님께 전화를 걸었더니 너무도 반갑게 맞아주신다. 내일 쑤조우로 갈 일이 있으시다 해서 저녁에 만났다. 오늘만큼은 내가 식사 대접을 하려 했는데 상해에 온 손님에게 그럴 수 없다며 감독님이 사신다.
앉아서 한국, 중국의 애니메이션 상황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지금 내가 소속되어 있는 회사의 방향에 대해서도 설명을 드렸다. 감독님의 부인 건강이 좋지 않아 요즘 옆에서 보살피고 함께 돌아다닌다는 얘기부터 29살의 하나 밖에 없는 딸의 근황까지 시시콜콜한 얘기부터 한,중 양국의 애니메이션 상황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얘기 꽃을 피웠다.
언제 뵈어도 겸손하시고 유쾌하시고 표정이 따뜻하신 감독님을 뵙고 있노라니 내 마음도 한결 편해짐을 느낀다. 자기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을 하라는 말씀도 빼놓지 않으신다. 하지만 내가 능력이 되면 감독님을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난다. 기분 좋은 저녁 한 때.
감독님을 만나기 전에 시간이 좀 남아 근처 디비디 상점에 가서 몇 장의 디비디를 구입했다. 한장에 장춘보다 2원 비싼 8원. 내가 일본 애니메이션 쪽을 고르고 한국 영화는 거들떠도 안보니 직원이 내가 일본인인줄 알았다고 한다.-_-; 장춘 단골집에서 살 요량으로 몇 장만 구입했다. 저녁에 시간이 되면 일도 할 겸 디비디를 좀 봐야겠다.
오늘은 조승현 감독님 댁에서 하루 밤 신세지기로 했다. 그런데 고맙게도 김호도 내가 불편할까봐 동생인 자기 집에 와서 묵으라고 몇 번 전화를 준다. 고마운 녀석.
상해에서의 밤은 깊어가고 낯설지 않은 중국에서의 느낌이 묘한 느낌을 준다. 언어가 더 늘고 귀가 더 트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중국관련 일들이 더 많아져서 자주 왕래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일은 장국강, 정대파 선생을 만나 일 처리를 하고 비행기표를 예매해 장춘으로 떠나야 한다. 아쉬운 상해에서의 짧은 시간.
아까 창광시 감독님과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들리던 "丁香花" 노래가 이상하리만치 내가 타국의 이방인이란 느낌을 부추기더니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해진다. 그런데 난 이런 "이방인" 느낌이 참 좋다.
중국어에 자신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간단한 중국어에 주눅이 들 정도는 아니니 상해에 도착해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도착한 오늘,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요 며칠 상해는 무척 추웠다고 하는데 한국의 겨울 날씨로 치면 좀 서늘한 냉기가 드는 정도랄까? 공기가 습하고 바람이 좀 불면 꽤 서늘하긴 하다. 낮에는 상해 온도가 영상 17도였다고 하는데 밤이 되니 온도가 꽤 많이 떨어진다. 듣자하니 지금 장춘은 영하 28도까지 내려갔다는데...이걸 무척 추운 날씨로 생각하다니...역시 상해는 상해다.
오자마자 아는 분들에게 전화를 하고 소식을 전했다. 주홍수, 조승현 감독님은 여전히 바쁘게 작업 준비와 진행을 하고 계시고 김호는 휴일인데도 집에서 번역 일을 애써 하고 있다. 창광시 감독님께 전화를 걸었더니 너무도 반갑게 맞아주신다. 내일 쑤조우로 갈 일이 있으시다 해서 저녁에 만났다. 오늘만큼은 내가 식사 대접을 하려 했는데 상해에 온 손님에게 그럴 수 없다며 감독님이 사신다.
앉아서 한국, 중국의 애니메이션 상황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지금 내가 소속되어 있는 회사의 방향에 대해서도 설명을 드렸다. 감독님의 부인 건강이 좋지 않아 요즘 옆에서 보살피고 함께 돌아다닌다는 얘기부터 29살의 하나 밖에 없는 딸의 근황까지 시시콜콜한 얘기부터 한,중 양국의 애니메이션 상황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얘기 꽃을 피웠다.
언제 뵈어도 겸손하시고 유쾌하시고 표정이 따뜻하신 감독님을 뵙고 있노라니 내 마음도 한결 편해짐을 느낀다. 자기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을 하라는 말씀도 빼놓지 않으신다. 하지만 내가 능력이 되면 감독님을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난다. 기분 좋은 저녁 한 때.
감독님을 만나기 전에 시간이 좀 남아 근처 디비디 상점에 가서 몇 장의 디비디를 구입했다. 한장에 장춘보다 2원 비싼 8원. 내가 일본 애니메이션 쪽을 고르고 한국 영화는 거들떠도 안보니 직원이 내가 일본인인줄 알았다고 한다.-_-; 장춘 단골집에서 살 요량으로 몇 장만 구입했다. 저녁에 시간이 되면 일도 할 겸 디비디를 좀 봐야겠다.
오늘은 조승현 감독님 댁에서 하루 밤 신세지기로 했다. 그런데 고맙게도 김호도 내가 불편할까봐 동생인 자기 집에 와서 묵으라고 몇 번 전화를 준다. 고마운 녀석.
상해에서의 밤은 깊어가고 낯설지 않은 중국에서의 느낌이 묘한 느낌을 준다. 언어가 더 늘고 귀가 더 트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중국관련 일들이 더 많아져서 자주 왕래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일은 장국강, 정대파 선생을 만나 일 처리를 하고 비행기표를 예매해 장춘으로 떠나야 한다. 아쉬운 상해에서의 짧은 시간.
아까 창광시 감독님과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들리던 "丁香花" 노래가 이상하리만치 내가 타국의 이방인이란 느낌을 부추기더니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해진다. 그런데 난 이런 "이방인" 느낌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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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22일 수요일
내 안의 '적'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
- 징기스칸 -
상대평가를 하며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은 전형적이긴 하지만
꽤 나름대로 자신에게 용기를 주기도 하고 자부심을 갖게 한다.
어쨌든 "적"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음에 동감한다.
"나"를 이기는 자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가 아니겠는가.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들, 내가 살며 해결해야 할 것들에게 대한 고민이 지지부진하다면 언제나 그렇게 목 매달고 끌려가는 삶이 될 터. 하루에도 몇 번씩 스러질 마음 일으켜 세우는 게 어려워도 해야하겠지.
죽기밖에 더 하겠어?라는 말이 폼잡는 말이 아닐 때...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오롯한 "내"가 될 것이다.
2004년 12월 20일 월요일
주인공은 누구...
함부로 앉기도 어렵고
앉고 싶은 욕망도 가득하면
먼 발치에서나마 의자에 앉는 상상을 해보거나
조금씩 의자로 향해 다가서거나...
그러다 앉을 수 있을 때 앉기만 한다면
내 삶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까?
언제나 의자는 비워둔 채인데 말야.
2004년 12월 18일 토요일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기본적인 정(情)이 흐르지 않는다면 관계는 어느새 멀어지고 말테지. 정을 주고 받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타협을 하거나 뇌물을 주고 받게 된다면 그건 본질을 훼손하는 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서로 가까워질 수 있을까.
오늘 상사(?)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으며 머리 속으로는 그 말의 잘잘못과 내 잘잘못을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누가 얼마만큼 잘하고 잘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경계를 넘어서는 것. 어떻게 넘어서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어제 저녁부터 내 마음 속에 평소와는 다른 내가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그게 그러지 말아야지...하고 마음 먹는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는 건 아니다. 원인결과를 끊임없이 반추하고 살펴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어떤 경우엔 실수를 수 백번하다가 한 번 잘해도 이해받는 경우가 있고 어떤 경우엔 수 백번 잘하다가도 한 번 잘못하는 경우로 인해 완전히 틀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 두 가지 경우는 어떻게 판단하고 이해해야하는 것일까. 아마 내 20살 때 아는 분에게 들었던 "일의 경중(輕重)", "일의 선후(先後)"에 대한 문제일게다. 그리고 중용에서 말하는 "시중(時中)"의 개념. 이게 완전히 내 것으로 체화되지 못한다면 난 언제나 "틀어지는" 편에 서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 모든 게 나로부터 인한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 상대방의 오해, 곡해 혹은 성격 때문에 내가 잘못 이해되고 무시되는 경우도 있을테니. 하지만 어쨌든 간에 그것 또한 내가 "보여지는" 것에 대한 부분이므로 나의 잘못도 있는 것이긴 할테다.
공정한 판단과 결정 후에 "어긋남의 강"을 건너간 후 다시 이야기해도 늦지는 않을 게다. 서둘러서 그 강에 빠지는 경우도 언제든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니...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던 내 일 처리 방식에 한 번 더 돌아보게 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풀어가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지 다시 생각해 본다.
"연마(硏磨)"와 "취사(取捨)"하는 공부의 끈을 다시 조일 필요를 느낀다.
오늘 상사(?)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으며 머리 속으로는 그 말의 잘잘못과 내 잘잘못을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누가 얼마만큼 잘하고 잘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경계를 넘어서는 것. 어떻게 넘어서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어제 저녁부터 내 마음 속에 평소와는 다른 내가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그게 그러지 말아야지...하고 마음 먹는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는 건 아니다. 원인결과를 끊임없이 반추하고 살펴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어떤 경우엔 실수를 수 백번하다가 한 번 잘해도 이해받는 경우가 있고 어떤 경우엔 수 백번 잘하다가도 한 번 잘못하는 경우로 인해 완전히 틀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 두 가지 경우는 어떻게 판단하고 이해해야하는 것일까. 아마 내 20살 때 아는 분에게 들었던 "일의 경중(輕重)", "일의 선후(先後)"에 대한 문제일게다. 그리고 중용에서 말하는 "시중(時中)"의 개념. 이게 완전히 내 것으로 체화되지 못한다면 난 언제나 "틀어지는" 편에 서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 모든 게 나로부터 인한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 상대방의 오해, 곡해 혹은 성격 때문에 내가 잘못 이해되고 무시되는 경우도 있을테니. 하지만 어쨌든 간에 그것 또한 내가 "보여지는" 것에 대한 부분이므로 나의 잘못도 있는 것이긴 할테다.
공정한 판단과 결정 후에 "어긋남의 강"을 건너간 후 다시 이야기해도 늦지는 않을 게다. 서둘러서 그 강에 빠지는 경우도 언제든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니...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던 내 일 처리 방식에 한 번 더 돌아보게 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풀어가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지 다시 생각해 본다.
"연마(硏磨)"와 "취사(取捨)"하는 공부의 끈을 다시 조일 필요를 느낀다.
2004년 12월 11일 토요일
의미있게 한 걸음 떼는 방법
사무실 확보를 위해 계약을 하고 다시 한 번 사무실을 둘러보며 어떤 것들이 필요한 가를 생각해 본다. 작업 공간이 생긴다는 건 어느 작업자들에게건 약간의 설레임을 주지만 중국에서 갓 돌아온 나에게 안주(?)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것은 더욱 기분이 좋은 일이다.
앞으로 어떻게 사무실을 꾸려갈 것인가가 사실 더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어떤 일을 하던 간에 그 걱정은 뗄 수 없는 것 아닌가. 즐거운 마음으로 신나게 작업을 하다보면 이런 저런 일들이 하나 둘씩 해결이 되어가고 이루어지는 게 생길 것이란 믿음은 여전히 내게 유효하다.
물론, 지금 진행해야 할 일들이 바로 코 앞에 닥쳐 마음이 조급한데다가 사무실 정리도 해야하는 상황이 그다지 반가운 건 아니지만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으니 충분히 반길 자세는 되어있다.
일만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 적응해가야 하고 내 스스로의 위치도 되도록 빨리 안정시켜야 한다. 여러가지 일은 한꺼번에 몰려든다는 게 여태 살아오면서 느낀 것 중 하나다. 그런 일들도 순서를 밟아 차근차근 해가다 보면 실타래 풀리듯 순소롭게 풀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 이럴 때 일수록 단전에 힘을 놓지 않아야 하는데...여전히 수행이 부족한 자신에게 마인드 컨트롤을 해본다.
언제나 시작이듯, 이번에도 또 시작이다.
앞으로 어떻게 사무실을 꾸려갈 것인가가 사실 더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어떤 일을 하던 간에 그 걱정은 뗄 수 없는 것 아닌가. 즐거운 마음으로 신나게 작업을 하다보면 이런 저런 일들이 하나 둘씩 해결이 되어가고 이루어지는 게 생길 것이란 믿음은 여전히 내게 유효하다.
물론, 지금 진행해야 할 일들이 바로 코 앞에 닥쳐 마음이 조급한데다가 사무실 정리도 해야하는 상황이 그다지 반가운 건 아니지만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으니 충분히 반길 자세는 되어있다.
일만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 적응해가야 하고 내 스스로의 위치도 되도록 빨리 안정시켜야 한다. 여러가지 일은 한꺼번에 몰려든다는 게 여태 살아오면서 느낀 것 중 하나다. 그런 일들도 순서를 밟아 차근차근 해가다 보면 실타래 풀리듯 순소롭게 풀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 이럴 때 일수록 단전에 힘을 놓지 않아야 하는데...여전히 수행이 부족한 자신에게 마인드 컨트롤을 해본다.
언제나 시작이듯, 이번에도 또 시작이다.
2004년 12월 10일 금요일
음식과 종교인
미식가는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 멋있는 음식들을 찾아 다니고 그 맛을 즐기며 삶에 대해 알아가고 터득해간다. 하나의 취미일 수도 있고 하나의 직업일 수도 있고 그냥 삶일 수도 있다. 요리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잘 알지만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 요리의 역사(기원), 사람과의 관계성, 문화적 코드로서의 의미 등에 대해서도 잘 알 것이다.
어느 한 방면의 전문가는 그 일에 몰두할 때가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한가지에 몰두하면서 산다는 게 그리 쉽지만도 않다. 그래서 스스로 채찍질도 하며 노력하고, 그렇게 해서 타인들에게 명예와 존경을 얻기 위해 애를 쓰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미식가도 아닌 종교인이(* 일반인들이나 종교인들이나 음식을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해소를 위한 노력, 또는 취미생활, 맛있는 걸 먹고 싶어하는 요구에 대해서는 100% 인정한다.) 맛있는 집을 줄줄 꿰고 있거나 먹는 것에 너무 공을 많이 들이는 경우를 접하게 된다. 내 선입견임을 미리 인정하고 말을 하자면 종교인들의 그런 모습들이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수행을 하고, 마음을 닦아서 중생들에게, 범인(凡人)들에게 영성의 울림을 전해줘야 할 분들이 음식을 탐닉하며 겉도는 모습은 적어도 내게는 좋게 보이진 않더라.
밥 잘 먹고, 맛있고 몸에 좋은 거 많이 먹고 다니는 것도 건강을 챙기는 것이라는 건 인정한다. 정신건강도 챙겼으면 하는 거지. 정신건강도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해서 건강해지고 행복해진다면 할 말 없군.-_-a
어느 한 방면의 전문가는 그 일에 몰두할 때가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한가지에 몰두하면서 산다는 게 그리 쉽지만도 않다. 그래서 스스로 채찍질도 하며 노력하고, 그렇게 해서 타인들에게 명예와 존경을 얻기 위해 애를 쓰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미식가도 아닌 종교인이(* 일반인들이나 종교인들이나 음식을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해소를 위한 노력, 또는 취미생활, 맛있는 걸 먹고 싶어하는 요구에 대해서는 100% 인정한다.) 맛있는 집을 줄줄 꿰고 있거나 먹는 것에 너무 공을 많이 들이는 경우를 접하게 된다. 내 선입견임을 미리 인정하고 말을 하자면 종교인들의 그런 모습들이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수행을 하고, 마음을 닦아서 중생들에게, 범인(凡人)들에게 영성의 울림을 전해줘야 할 분들이 음식을 탐닉하며 겉도는 모습은 적어도 내게는 좋게 보이진 않더라.
밥 잘 먹고, 맛있고 몸에 좋은 거 많이 먹고 다니는 것도 건강을 챙기는 것이라는 건 인정한다. 정신건강도 챙겼으면 하는 거지. 정신건강도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해서 건강해지고 행복해진다면 할 말 없군.-_-a
2004년 12월 9일 목요일
화산(和山)님.
미남이십니다. :)
화산 김석원 정사가 지난 9일 신동 자택에서 열반, 11일 오전 10시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에서 교회연합장으로 발인식을 거행했다. 세수 63세. 법랍 44년. 공부성적 정식법강항마위, 사업성적 정특등, 원성적 준특등이다.
左山종법사는 발인식에서 “화산 정사는 평소 성실하고 알뜰한 공심 덩어리로 남이 알거나 모르거나 50여 성상을 이 교단과 함께 하며, 가는 곳마다 창립의 주춧돌을 쌓은 거룩한 삶을 살았다”고 칭송하고 “오는 세상은 밝고 대통(大通)하리니 이 회상에 다시 돌아와 대종사님 교법 받들며 영생영겁을 함께 하자”고 법문했다.
화산 김석원 정사는 1937년 5월10일 경북 경산군 진양면 산화동에서 출생, 원기33년 5월15일 다산 김근수 종사를 연원으로 영산교당에서 입교했다. 원기41년 5월3일 하타원 정양진 대봉도의 추천으로 전무출신을 서원, 총부 산업부·만덕산훈련원·원광중고·하섬수양원·영모묘원·원광대학교 등에서 근무했다. 틈틈이 어려운 교당의 불단 조성과 건축공사, 시설 보수 등을 자상히 살펴준 공심이 있었다.
장지는 왕궁 영모묘원. 종재는 원기85년 1월 26일(수) 오전 11시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
左山종법사는 발인식에서 “화산 정사는 평소 성실하고 알뜰한 공심 덩어리로 남이 알거나 모르거나 50여 성상을 이 교단과 함께 하며, 가는 곳마다 창립의 주춧돌을 쌓은 거룩한 삶을 살았다”고 칭송하고 “오는 세상은 밝고 대통(大通)하리니 이 회상에 다시 돌아와 대종사님 교법 받들며 영생영겁을 함께 하자”고 법문했다.
화산 김석원 정사는 1937년 5월10일 경북 경산군 진양면 산화동에서 출생, 원기33년 5월15일 다산 김근수 종사를 연원으로 영산교당에서 입교했다. 원기41년 5월3일 하타원 정양진 대봉도의 추천으로 전무출신을 서원, 총부 산업부·만덕산훈련원·원광중고·하섬수양원·영모묘원·원광대학교 등에서 근무했다. 틈틈이 어려운 교당의 불단 조성과 건축공사, 시설 보수 등을 자상히 살펴준 공심이 있었다.
장지는 왕궁 영모묘원. 종재는 원기85년 1월 26일(수) 오전 11시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
벌써 5주기. 6년째다. 작년엔 중국에 있어서 참석을 못했지만... 세월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흘러만 가고 있다. 올해는 동생이 호주에 있으니 참석을 못하고... 형제들의 부산한 움직임과 활동영역의 확장은 있으되 당신만큼은 늘 그 자리, 그대로 계시는 듯 하다. 조카 딸 삼총사가 온 집안 어른들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 넣고 애교가 하늘 땅 충만한데 못보시다니 참 아쉬우시겠다. "허허~ " 웃음 한 번으로 끝나실 사랑의 표현도 상상만으로 밖엔...
사실 위에 써있는 글은 너무 상투적이고 너무 형식적이긴 하다. 하긴, 몇 줄의 글로 누군가의 삶을 표현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겠는가. 그런데 더 아이러니하게도 난 당신의 삶 전부를 알지 못한다. 정말 아쉽고 죄송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또 끙끙거리며 힘겹게 살고 있으면 한 번쯤 찾아오시겠지. 당신과의 인연이 참 고마울 뿐이다. 음...그런데 당신만큼 잘 생기지 못해서 많이 아쉽기는 하다.^^;;; 능력(재주)도 부족하고.-_-a
아시죠? 저 계속 애니메이션 관련 일 하고 있어요. :) 더 노력할께요.
이미 완전한 해탈천도가 되셨을 거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지만
오늘 다시 한 번 "완전한 해탈천도를 하시길" 마음 모읍니다.
2004년 12월 8일 수요일
11월 20일~22일의 기록
장춘에 잠시 들어가 규이+치우메이 결혼식에 참석하고는 한국에서 해야 할 일 때문에 또 허겁지겁 귀국하는 바람에 다시 장춘에 나가야 할 상황이지만 그래도 더 주어진 기회가 더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비행기 값이건 뭐건 일의 핑계건 뭐건 차분히 그네들과 인사라도 하고 와야겠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공항까지 꼭 오겠다고 바득바득 우기는 요 네 녀석들과 12월 말에 꼭 오겠노라는 다짐을 하면서 기념으로 남긴 흔적들.
지금은 규이, 치우메이야 신혼살림에 행복한 날들이겠고, 옌뽀는 여전하겠고 옌궈는 일 구해서 장소를 옮겼다니 더욱 큰 발전이 있길 바랄 뿐이다.
규이, 치우메이 결혼식 사진을 꽤 찍었는데 올릴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고 있는 게 마음에 걸리네. 기다려라. 친구야.
흠, 그나저나 장춘 공항도 곧 이전을 하게 되면 내가 머물던 동네까지 택시로 거의 100원이 훨씬 넘게 나온다고 그러는데 쩝~ 공항은 깨끗해지고 더 넓어지고 좋아져서 좋긴 하지만 너무 먼 것 아냐? 하긴, 서울에서 인천 공항 가는 것도 만만치 않긴 하다.
12월에 또 볼 날을 기다려라.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 규이, 치우메이, 옌궈, 옌뽀
한국으로 돌아올 때 공항까지 꼭 오겠다고 바득바득 우기는 요 네 녀석들과 12월 말에 꼭 오겠노라는 다짐을 하면서 기념으로 남긴 흔적들.
지금은 규이, 치우메이야 신혼살림에 행복한 날들이겠고, 옌뽀는 여전하겠고 옌궈는 일 구해서 장소를 옮겼다니 더욱 큰 발전이 있길 바랄 뿐이다.
규이, 치우메이 결혼식 사진을 꽤 찍었는데 올릴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고 있는 게 마음에 걸리네. 기다려라. 친구야.
흠, 그나저나 장춘 공항도 곧 이전을 하게 되면 내가 머물던 동네까지 택시로 거의 100원이 훨씬 넘게 나온다고 그러는데 쩝~ 공항은 깨끗해지고 더 넓어지고 좋아져서 좋긴 하지만 너무 먼 것 아냐? 하긴, 서울에서 인천 공항 가는 것도 만만치 않긴 하다.
12월에 또 볼 날을 기다려라.
2004년 12월 7일 화요일
크리스마스도 아니면서...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어느 Bar에서
한달도 더 전에 어느 맥주 bar에 가서 찍은 폰카(VK-100M_32만화소)
비틀즈를 너무나 사랑하는 주인장 때문에 곳곳의 커다란 스피커에서는 비틀즈의 음악이 제 세상을 만난 듯이 쏟아지고 있다. 맥주 두 어 병에 취하지는 않았지만 음악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했던 느낌.
이상하게도 저런 줄조명만 보면 크리스마스가 떠오른다. 나도 광고효과에 이미 깊숙히 길들여지고 있나보다. 조명 바깥으로 흐느적거리며 지나가는 남녀를 보았었다. 저들에겐 언제나 축제인 것만 같은 밤.
비틀즈 음악이 듣고 싶으면 다시 이곳에 가야겠다.
2004년 12월 6일 월요일
몸뚱아리
다리의 근육통.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만약 이유가 있다면 오랜 시간 차를 타고 다녔다는 것 밖엔. 그것도 차를 내리고 한참을 걸을 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잠시 어디엔가 앉아있다가 일어나면서 그런다. 몸이 힘겨울 땐 자연스럽게 마음도 힘겨워 함을 느낀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은 몸과 정신, 마음 모두가 잘 살아낸다는 것과 맥이 통하는 것 같다.
몸살기운까지 슬쩍 지나간다. 문득 왜 이런 증상이 늦게 나타나나 싶다. 한국에 온 이후로 내 생활패턴으로 살지 못한 것과 적응하고 따라가느라 긴장하면서 살았던 걸 생각하면 이제야 몸이 좀 풀리면서 아플 수도 있겠다 싶다.
밤새 끙끙대며 땀을 한 바가지나 흘리고 나서야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있던 오한이 다 빠져나가고 개운해진다. 뜨거운 불덩어리가 자꾸만 안에서 빙빙 돌더니 이제야 다 수그러들고 잠잠해졌다. 그럼과 동시에 마음이 상당히 깊이 가라앉는다. 왜 그러지? 왜 그러는 것일까? 마음 한 귀퉁이에 쇠 추를 달아놓은 양 아래로 아래로 쳐진다.
이거 또 좋지 않은 버릇 나올려고 하는 모양이네.
............좀 지켜보자.
몸살기운까지 슬쩍 지나간다. 문득 왜 이런 증상이 늦게 나타나나 싶다. 한국에 온 이후로 내 생활패턴으로 살지 못한 것과 적응하고 따라가느라 긴장하면서 살았던 걸 생각하면 이제야 몸이 좀 풀리면서 아플 수도 있겠다 싶다.
밤새 끙끙대며 땀을 한 바가지나 흘리고 나서야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있던 오한이 다 빠져나가고 개운해진다. 뜨거운 불덩어리가 자꾸만 안에서 빙빙 돌더니 이제야 다 수그러들고 잠잠해졌다. 그럼과 동시에 마음이 상당히 깊이 가라앉는다. 왜 그러지? 왜 그러는 것일까? 마음 한 귀퉁이에 쇠 추를 달아놓은 양 아래로 아래로 쳐진다.
이거 또 좋지 않은 버릇 나올려고 하는 모양이네.
............좀 지켜보자.
라벨:
근육통,
몸,
daily life
2004년 12월 3일 금요일
쑨난, 한국에서 보다.
孙楠 (쑨난; 손남)
孙楠(쑨난 - 한국어 : 손남), 오늘 TV에서 "Asia song Festival" 하는 걸 잠깐 보는데 쑨난이 나온다. 아~ 참 신기하다 싶었다. 이 가수는 중국에서 남자들에게 꽤 인기가 있기도 하고 여자들도 무척 좋아하는 가수다. 노래를 따라부르기 좀 어려워서 그렇지. 주옥같은 노래들을 쏟아내는 가수다.
이 가수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중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가수라는 건 안다. 참 아이러니 한 건 이 가수는 중국 음반시장에서 자생적으로 크지 못했다고 한다. 외국(유럽인가 영국인가...)에 나가서 한동안 음반차트 1위를 하면서 유명해져 중국으로 돌아와서 인기를 얻었다 한다. 이 얘기를 나에게 해주며 중국 친구가 어이없어 하는 표정 짓는 걸 봤다. 이런 일들이 가수들 뿐만이 아니라 영화 쪽에서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중국에서 종종 보고 듣던 쑨난을 한국에 온지 1달이 지나서 한국 TV에서 보니 묘하고 반갑다. 이 친구, 한국어 연습 무척 많이 했나 보다. 한국어로 인사를 하고(물론 잊지 않기 위해 메모를 준비하긴 했지만...) 'I believe' 를 1절은 한국어로 부른다. 발음이 조금씩 틀리긴 하지만 노력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인다. '감사합니다'라고 한국어로 말할 때는 왜 이렇게 내가 아는 중국 친구들과 발음이 비슷한 건지...:) 중국인들의 구강구조가 비슷하게 생겼나?
뭐, 어쨌든, 반갑다. 쑨난.
아~! 'i believe' 는 "엽기적인 그녀"가 중국에서 상영될 때 삽입되었던 주제곡. 쑨난이 중국어로 부른다.
아래는 孙楠(쑨난)의 대표곡이라 할 만한 拯救(구원)이라는 노래다.
拯救(구원) - 孙楠(쑨난)
词:梁芒
曲:周笛
灯火辉煌的街头
突然袭来了一阵寒流
遥远的温柔
解不了近愁
是否在随波逐流
夜深人静的时候
我就潜伏在你的伤口
梦是氢气球
向天外飞走飞走
总化作乌有
一个人在梦游
像奔跑的犀牛
不到最后不罢休
爱若需要厮守
恨更需要自由
爱与恨纠缠不休
我拿什么拯救
当爱覆水难收
谁能把谁保佑
心愿为谁等待
我拿什么拯救
情能见血封喉
谁能把谁保佑
能让爱永不朽
2004년 12월 2일 목요일
바퀴 교체!
아는 분의 부탁으로 오토바이 뒷 바퀴를 좀 더 두꺼운 걸로 교체해야 했다. 오토바이가 50cc인데 모양은 상당히 세련된, 아기자기한 느낌의 오토바이. 많은 사람들이 그걸 보면 이쁘다고 하고, 또 작아서 자전거같다는 얘기도 종종 한다.
근처 오토바이 센터에 가서 뒷 바퀴를 교체할 수 있냐고 하니 이리저리 본 후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두꺼운 걸로 교체할 경우 물받이(바퀴 덮개)는 필히 제거해야 한다고 한다. 만약 여의치 않아서 다시 원상복귀할 경우 수고비로 만원을 내라 한다. 교체 비용은 3만원 정도...
한참을 기다려서 뒤바퀴 교체를 하고 보니 이제야 오토바이 모양새가 좀 난다. 바퀴가 굵을수록 코너링을 할 때 안정감이 있다는데 타보니 정말이다. 차체 뒤가 무거우니 안정감도 있는 것 같고...
어떤 사람이던 한 분야에 종사하다 보면 전문가가 되는 건 확실하다. 다만, 지속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을 경우 아는 만큼에서만 머문다는 것도 단순한 진리다. 오늘 수고해 주신 사장님은 대충대충 슬렁슬렁 작업을 하는 것 같은데 금새 일이 끝나있다. 보니 일을 대부분 그런 느낌으로 처리한다. 힘을 적게 들이고도 최선의 결과를 내는 방법을 아는 것 같다.
오토바이 폼 새도 잘 나고 새 느낌으로 시승을 해보니 좋다. 다만 바퀴가 무거워져서 힘이 조금 달리는 듯 하다. 하지만 50cc인데 뭘~ :)
근처 오토바이 센터에 가서 뒷 바퀴를 교체할 수 있냐고 하니 이리저리 본 후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두꺼운 걸로 교체할 경우 물받이(바퀴 덮개)는 필히 제거해야 한다고 한다. 만약 여의치 않아서 다시 원상복귀할 경우 수고비로 만원을 내라 한다. 교체 비용은 3만원 정도...
한참을 기다려서 뒤바퀴 교체를 하고 보니 이제야 오토바이 모양새가 좀 난다. 바퀴가 굵을수록 코너링을 할 때 안정감이 있다는데 타보니 정말이다. 차체 뒤가 무거우니 안정감도 있는 것 같고...
어떤 사람이던 한 분야에 종사하다 보면 전문가가 되는 건 확실하다. 다만, 지속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을 경우 아는 만큼에서만 머문다는 것도 단순한 진리다. 오늘 수고해 주신 사장님은 대충대충 슬렁슬렁 작업을 하는 것 같은데 금새 일이 끝나있다. 보니 일을 대부분 그런 느낌으로 처리한다. 힘을 적게 들이고도 최선의 결과를 내는 방법을 아는 것 같다.
오토바이 폼 새도 잘 나고 새 느낌으로 시승을 해보니 좋다. 다만 바퀴가 무거워져서 힘이 조금 달리는 듯 하다. 하지만 50cc인데 뭘~ :)
2004년 12월 1일 수요일
밤을 새우고...
PT를 준비한다고 밤을 꼬박 새웠다. 밤 샌다고 일을 잘 하는 건 당연히 아니기에 뿌듯한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때론 이렇게 정신없이 지내는 것도 즐거움을 주는 것 같다.
서둘러 집을 나서고 약간 허기진 기운의 상쾌함을 느끼며 지하철을 타고 가는 아침이 왠지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그 속에 익숙한 편안함도 있네.
사실 중국에서는 영화를 보다가 혹은 TV를 보다가, 술을 마시다가 날을 샌 적은 있지만 그 때는 꼭 아침에 잠을 청해 오후에 일어나곤 했었지. 그런데 지금은 날을 꼬박 새고도 오후까지 말짱한 정신으로(조금은 졸리지만...;;;) 회의다, 뭐다 하는 일까지 버겁지가 않다. 속을 비워내며 사는 삶의 힘인가 싶기도 하다.
앞으로 정신없는 생활이 종종 있을 것 같지만 두렵다기 보다는 긴장이 된다.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무언가 이뤄낼 수(?) 있을까 하는...그런 긴장감.
조금,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있다.
서둘러 집을 나서고 약간 허기진 기운의 상쾌함을 느끼며 지하철을 타고 가는 아침이 왠지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그 속에 익숙한 편안함도 있네.
사실 중국에서는 영화를 보다가 혹은 TV를 보다가, 술을 마시다가 날을 샌 적은 있지만 그 때는 꼭 아침에 잠을 청해 오후에 일어나곤 했었지. 그런데 지금은 날을 꼬박 새고도 오후까지 말짱한 정신으로(조금은 졸리지만...;;;) 회의다, 뭐다 하는 일까지 버겁지가 않다. 속을 비워내며 사는 삶의 힘인가 싶기도 하다.
앞으로 정신없는 생활이 종종 있을 것 같지만 두렵다기 보다는 긴장이 된다.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무언가 이뤄낼 수(?) 있을까 하는...그런 긴장감.
조금,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있다.
2004년 11월 19일 금요일
몸의 지혜
무거운(?) 노트북과 큰(?) 외장하드와 각종 연결 케이블, 그리고 책, 잡동사니를 한 가방에 넣고 다닌다. 오늘따라 '상당히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이곳 저곳으로 다니면서 어깨가 한쪽으로 쏠린다. 거, 참 무겁네.
어깨가 쏠리면 다른 어깨쪽으로 몸을 기울여 수평을 맞추려고 하는 게 사람의 본능이다. 역시 나도 그렇다. 몸은 그렇게 착하게도 내가 기울어 넘어지는 걸 막아주기 위해서 알아서 반응을 보이는데 마음은 왜 그게 쉽게 되지 않는 것일까? 치우치면 치우치지 않게 알아서 조정해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턱도 없는 생각을 해본다.
不偏不倚는 中庸之道라 했는데 몸은 중용을 잘 지키나 마음은 그렇지 못하는 걸 보면 인간 사는 세상이 재밌어지는 이유를 알 듯 말 듯 하다. 마음은 한 번 지르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가는 때도 있고 한 번 집착하면 놓지 않는 때도 있으니, 몸처럼 알아서 균형을 잡는 감각은 한참 떨어진다. 하긴, 그러니 마음공부하는 맛이 더 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생각해보니 좀 그렇네. 하물며 자전거를 타더라도 넘어지지 않으려고,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반사신경도 그럴진대, 평생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마음이 그렇다니...-_-; 그 본래자리를 보고 나면 단박에 상당부분 해결이 되긴 하겠지만... 쉽지는 않으니. 원~
그럼, 이제 다시 몸에서 배우자.
어깨가 쏠리면 다른 어깨쪽으로 몸을 기울여 수평을 맞추려고 하는 게 사람의 본능이다. 역시 나도 그렇다. 몸은 그렇게 착하게도 내가 기울어 넘어지는 걸 막아주기 위해서 알아서 반응을 보이는데 마음은 왜 그게 쉽게 되지 않는 것일까? 치우치면 치우치지 않게 알아서 조정해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턱도 없는 생각을 해본다.
不偏不倚는 中庸之道라 했는데 몸은 중용을 잘 지키나 마음은 그렇지 못하는 걸 보면 인간 사는 세상이 재밌어지는 이유를 알 듯 말 듯 하다. 마음은 한 번 지르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가는 때도 있고 한 번 집착하면 놓지 않는 때도 있으니, 몸처럼 알아서 균형을 잡는 감각은 한참 떨어진다. 하긴, 그러니 마음공부하는 맛이 더 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생각해보니 좀 그렇네. 하물며 자전거를 타더라도 넘어지지 않으려고,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반사신경도 그럴진대, 평생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마음이 그렇다니...-_-; 그 본래자리를 보고 나면 단박에 상당부분 해결이 되긴 하겠지만... 쉽지는 않으니. 원~
그럼, 이제 다시 몸에서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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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지혜,
record my mind
2004년 11월 12일 금요일
한가해요.
오랜만에(?) 오후 몇 시간이 붕 떴다. "나 오늘 한가해요~"가 된거지. 순간적으로 주어진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한다. 참, 이런 날도 다 있군.
오늘은 날씨가 한국에 들어온 이래라 가장 춥다. 내일은 더 추워진다는 데...그런데 걱정은 안된다. 그 험난한 장춘의 겨울을 지내고 온 내가 아니던가. 많이 상큼한 바람이란 느낌도 들고 한 편으론 옷을 얇게 입으니 춥다는 느낌도 들긴 하지만 충분히 괜찮은 날씨다.
적당히 입고 계원.에 왔다. 후배들을 만나는데 수업이 늦은 시간까지 있다고 그러네. 날 보면서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하는 녀석들이 왠지 낯설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학교에서 지낸 시간들이 좀 많아서(?)인지 지금이 2004년도임에도 날 알아보는 녀석들이 꽤 있다.
오선생님이랑 저녁이나 먹으며 반주 한 잔 해야지. 다른 선생님들은 안계시는군. 시간이 그리 늦지 않았는데도 상당히 어둡다.
아~ 학교 정말 많이 바뀌었네. 이렇게 좋은 학교가 되었단 말인가. 하긴 시설과 내용은 다를 수 있으니 속단 못하겠지만. 그래도 정말 좋아졌네. 돈 많이 벌었나보다.-_-;
오늘은 날씨가 한국에 들어온 이래라 가장 춥다. 내일은 더 추워진다는 데...그런데 걱정은 안된다. 그 험난한 장춘의 겨울을 지내고 온 내가 아니던가. 많이 상큼한 바람이란 느낌도 들고 한 편으론 옷을 얇게 입으니 춥다는 느낌도 들긴 하지만 충분히 괜찮은 날씨다.
적당히 입고 계원.에 왔다. 후배들을 만나는데 수업이 늦은 시간까지 있다고 그러네. 날 보면서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하는 녀석들이 왠지 낯설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학교에서 지낸 시간들이 좀 많아서(?)인지 지금이 2004년도임에도 날 알아보는 녀석들이 꽤 있다.
오선생님이랑 저녁이나 먹으며 반주 한 잔 해야지. 다른 선생님들은 안계시는군. 시간이 그리 늦지 않았는데도 상당히 어둡다.
아~ 학교 정말 많이 바뀌었네. 이렇게 좋은 학교가 되었단 말인가. 하긴 시설과 내용은 다를 수 있으니 속단 못하겠지만. 그래도 정말 좋아졌네. 돈 많이 벌었나보다.-_-;
2004년 11월 8일 월요일
중국친구 그리고...
1 규이에게서 메일 한통. 한국에서의 나의 선택에 대해 궁금해하고 그의 결혼식 참가 여부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다. 단지 반가운 얼굴들끼리 보고 회합을 했으면 한다는 그 말이 그 답다.
보고 싶다는 말에 참 마음이 싸~하다. 그리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것도 아니건만, 그렇게 많은 시간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건만 서로 생각해 주는 걸 보면 인연은 인연인가 보다.
내 선택에 대해 일러주고 또 중국에 가서 결혼식에 참석할 거라는 얘기로 회신을 보냈다. 그리고 그네들을 보고 싶다는 얘기도. 외국에 다녀가는 게 힘들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살면 오랜 친구도 연락 자주 하지 않는데 말이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야 마음 편히 다녀올텐데...왠지 지금도 위태위태하다. 하지만 꼭 장춘엔 다녀와야지.
2 일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영어로 뭐라뭐라 한다. 입에선 자꾸 중국어가 튀어나올려고 하고 영어는 생각도 나지 않고... 결국 차분히 한 말은 "나 영어 못해요. 미안해요"였다.-_-;;;
영어 공부 해야하는데...-_-
보고 싶다는 말에 참 마음이 싸~하다. 그리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것도 아니건만, 그렇게 많은 시간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건만 서로 생각해 주는 걸 보면 인연은 인연인가 보다.
내 선택에 대해 일러주고 또 중국에 가서 결혼식에 참석할 거라는 얘기로 회신을 보냈다. 그리고 그네들을 보고 싶다는 얘기도. 외국에 다녀가는 게 힘들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살면 오랜 친구도 연락 자주 하지 않는데 말이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야 마음 편히 다녀올텐데...왠지 지금도 위태위태하다. 하지만 꼭 장춘엔 다녀와야지.
2 일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영어로 뭐라뭐라 한다. 입에선 자꾸 중국어가 튀어나올려고 하고 영어는 생각도 나지 않고... 결국 차분히 한 말은 "나 영어 못해요. 미안해요"였다.-_-;;;
영어 공부 해야하는데...-_-
2004년 11월 7일 일요일
이런 저런 기록.
1 충훈이의 입원. 축구하다 발이 꼬이는 바람에 정강이 아래쪽 뼈가 부러져 철심을 박는 대 수술(?)을 했다. 친구들이야 체중을 이기지 못해서 다쳤다는 둥 농담을 하고 나도 농을 건네긴 했지만 다들 걱정하는 마음은 똑같은 듯. 오늘 문성이, 창녕이하고 병문안을 다녀왔는데 이 경민이 노므 자슥은 어제 왔다가 오늘 내려가면서도 전화한 번 안하고 갔다. 농담 따먹기에 사는 얘기 한참 하고 돌아오는 길. 문득 충훈이 생일이 어제였노라고 누군가 귀띔을 해준다. 아~ 이런! 우리 찬구 맞나?-_-;
충훈아. 늦었지만 생일 축하한다!
그리고 이제 격렬한 운동 못하는 거 아쉽겠지만 몸 조리 잘하고 살 빼라.-_-;;;
오늘 차로 데려다 준 창녕아, 고마웠다.
아~문성이는 잘 알아봐라. 같이 규이 결혼식에 갈 수도 있지 않겠냐? 충훈이 보디가드 해주면서.ㅎㅎ
2 마음을 교류하는 건 이해와 노력이 없으면 안되는 것. 사실 좋은 결과 건 혹은 나쁜 결과(?) 건 100% 만족할 수 있는 부분은 없겠지. 다만 그 100%는 언제나 1%에서부터 시작하는 채워짐이고 그 채워짐의 형태는 꼭 같은 형태로 일정할 필요는 없겠지.
머리에 바람이 불어오고 마음엔 온기가 전해지고. 그렇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 관계라면 누군들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애써 마음을 움직여 자리를 옮겨놓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실상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그런 마음을 지켜보는 건 때론 힘겹기도 하지만 즐거운 일. 그리고 누군가 함께 한다면 더욱 즐거운 일.
웃으니 고맙고, 말해주니 고맙네.
3 조금 노곤한 몸으로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다른 사람들도 나에게 주목하고 있는 이는 없겠지. 그럼에도 늦은 시간 지하철 안에서는 내가 신경쓰지 않아도 어떤 고단한 삶의 느낌이 전해져 온다. 고정관념처럼 뇌에 박혀있는 "퇴근 길의 지하철의 풍경" 때문이 아닌... 그네들의 마음들이 피곤해 하고 있는 느낌들...
살짝 미소를 띄워보기도 전에 눈꺼풀은 감기려고 하지.
4 엊그제? 보았던 T.V 프로그램 중에서 유남규가 나와 일반 시청자에게 선물을 주며 써줬던 문구 중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시작하는 때입니다.
아~! 최선을 다한 건 결과가 아니라 시작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머리 속에 바람이 불었다.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몸풀기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무대에 올라 쇼를 할 시간인 게지.
난 아직도 몸만 풀고 있다.
충훈아. 늦었지만 생일 축하한다!
그리고 이제 격렬한 운동 못하는 거 아쉽겠지만 몸 조리 잘하고 살 빼라.-_-;;;
오늘 차로 데려다 준 창녕아, 고마웠다.
아~문성이는 잘 알아봐라. 같이 규이 결혼식에 갈 수도 있지 않겠냐? 충훈이 보디가드 해주면서.ㅎㅎ
2 마음을 교류하는 건 이해와 노력이 없으면 안되는 것. 사실 좋은 결과 건 혹은 나쁜 결과(?) 건 100% 만족할 수 있는 부분은 없겠지. 다만 그 100%는 언제나 1%에서부터 시작하는 채워짐이고 그 채워짐의 형태는 꼭 같은 형태로 일정할 필요는 없겠지.
머리에 바람이 불어오고 마음엔 온기가 전해지고. 그렇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 관계라면 누군들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애써 마음을 움직여 자리를 옮겨놓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실상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그런 마음을 지켜보는 건 때론 힘겹기도 하지만 즐거운 일. 그리고 누군가 함께 한다면 더욱 즐거운 일.
웃으니 고맙고, 말해주니 고맙네.
3 조금 노곤한 몸으로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다른 사람들도 나에게 주목하고 있는 이는 없겠지. 그럼에도 늦은 시간 지하철 안에서는 내가 신경쓰지 않아도 어떤 고단한 삶의 느낌이 전해져 온다. 고정관념처럼 뇌에 박혀있는 "퇴근 길의 지하철의 풍경" 때문이 아닌... 그네들의 마음들이 피곤해 하고 있는 느낌들...
살짝 미소를 띄워보기도 전에 눈꺼풀은 감기려고 하지.
4 엊그제? 보았던 T.V 프로그램 중에서 유남규가 나와 일반 시청자에게 선물을 주며 써줬던 문구 중에,
아~! 최선을 다한 건 결과가 아니라 시작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머리 속에 바람이 불었다.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몸풀기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무대에 올라 쇼를 할 시간인 게지.
난 아직도 몸만 풀고 있다.
라벨:
교류,
최선,
daily life
2004년 11월 5일 금요일
통역
아무리 얘길 해도 듣지 않는 경우도 있고
아무리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 경우가 있어.
같은 언어로 얘기를 하는데도
이해가 안되는 건 왜 그런거지?
혹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혹 내가 말을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와 소통을 하기 위해선
통역기 하나쯤은 지니고 있어야 해.
최소한의 진심을 교환하기 위해선 말야.
그래야 아주 조금이라도 서로 이해를 할 수 있으니까.
비오네.
비가 조금만 올 줄 알았더니... 우르릉 거리는 소리는 거의 협박 수준인걸? 왠지 아주 오랜만에 가져보는 느낌같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사무실 비스무리 한 곳에 앉아있는 느낌.
빗소리가 은근히 분위기를 잡아주는 데 중간중간 꾸르릉~ 배앓이 소리같은 걸 듣는 건 썩 좋지 않다. 퇴근(?)을 어찌 할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인 듯. 우산은 있지만 파라솔을 들지 않는 한 비에 젖겠지. 파라솔은 너무 무겁고.
중국에선 금요일부터 주말로 계산을 해서 금요일날 술 먹는 사람들이 북적대는데 한국도 이제 토요일에 쉬는 회사들이 많으니 금요일날 북적대겠군. 나도 오늘처럼 비가 스스스 내리는 날은 따끈한 어묵 국물에 소주를 한 잔 하고 싶다.
한국에 온지 2주가 지났는데 벌써 한 달 이상 지나가버린 느낌. 뭔가 해놓은 건 없는데 쫓기며 바쁜 느낌. 아~ 싫다. 어여 시동을 걸어서 엔진을 달궈놔야겠다. 이렇게 쫓아가기도 바쁜데 마음 키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란 말이지. 중국에 두고 왔나? 좀 더 힘을 내보자고.
아~ 그런데...어제 부시가 당선이 되었다가 길길이 좋아라 뛰고 그랬다지? 거의 실시간으로 미국 선거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도 짜증나는 일이지만 그 밉상이 웃고 있는 걸 우연히라도 봐야 하는 건 더 짜증나는 일이다. 아무리 이래저래 봐야 쉬이 달라질 현실이 아닌 걸 알기 때문에 짜증이 일어나는 것도 순간일 뿐.
빗소리가 은근히 분위기를 잡아주는 데 중간중간 꾸르릉~ 배앓이 소리같은 걸 듣는 건 썩 좋지 않다. 퇴근(?)을 어찌 할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인 듯. 우산은 있지만 파라솔을 들지 않는 한 비에 젖겠지. 파라솔은 너무 무겁고.
중국에선 금요일부터 주말로 계산을 해서 금요일날 술 먹는 사람들이 북적대는데 한국도 이제 토요일에 쉬는 회사들이 많으니 금요일날 북적대겠군. 나도 오늘처럼 비가 스스스 내리는 날은 따끈한 어묵 국물에 소주를 한 잔 하고 싶다.
한국에 온지 2주가 지났는데 벌써 한 달 이상 지나가버린 느낌. 뭔가 해놓은 건 없는데 쫓기며 바쁜 느낌. 아~ 싫다. 어여 시동을 걸어서 엔진을 달궈놔야겠다. 이렇게 쫓아가기도 바쁜데 마음 키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란 말이지. 중국에 두고 왔나? 좀 더 힘을 내보자고.
아~ 그런데...어제 부시가 당선이 되었다가 길길이 좋아라 뛰고 그랬다지? 거의 실시간으로 미국 선거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도 짜증나는 일이지만 그 밉상이 웃고 있는 걸 우연히라도 봐야 하는 건 더 짜증나는 일이다. 아무리 이래저래 봐야 쉬이 달라질 현실이 아닌 걸 알기 때문에 짜증이 일어나는 것도 순간일 뿐.
2004년 10월 30일 토요일
좋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대화를 할 때,
어느 정도 솔직한 얘기가 보증되어 진행될 수 있다는 사실은
참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내가 보여지는 모습이 그 자체로 부끄럽지 않을 때,
아니, 혹 부끄러운 모습일지라 하더라도
상대방이 잘 받아들여 줄 때는 편안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이 잘 받아들여 줄 수 있다는 건
최소한 내가 상대를 속이지 않고 있다는 뜻이며
그 출발은 내가 내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음이다.
그러기에 대화를 할 때에는 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상대를 속이지 않는가?"라고 묻기 보단
"내 자신을 속이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는가?"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의아니게 혹은 고의로라도
모든 이야기를 꺼내 놓을 수는 없다.
그건 내가 버텨내야할 최소한의 자존심이기도 하겠지만
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부메랑에 다치기 싫어서 일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살면서 가능하면 그런 막연한 두려움이나 걱정은 사라지길 바란다.
또, 일과 삶은 때론 다른 가면을 쓰고 살 수도 있는 것이니
외형적인 이중성을 가지더라도 너무 스스로 자책하지 말자.
알맹이만 변하지 않도록 하자.
반가운 사람과 즐거운 얘기를 나누는 일은 기분이 좋다. :)
어느 정도 솔직한 얘기가 보증되어 진행될 수 있다는 사실은
참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내가 보여지는 모습이 그 자체로 부끄럽지 않을 때,
아니, 혹 부끄러운 모습일지라 하더라도
상대방이 잘 받아들여 줄 때는 편안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이 잘 받아들여 줄 수 있다는 건
최소한 내가 상대를 속이지 않고 있다는 뜻이며
그 출발은 내가 내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음이다.
그러기에 대화를 할 때에는 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상대를 속이지 않는가?"라고 묻기 보단
"내 자신을 속이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는가?"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의아니게 혹은 고의로라도
모든 이야기를 꺼내 놓을 수는 없다.
그건 내가 버텨내야할 최소한의 자존심이기도 하겠지만
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부메랑에 다치기 싫어서 일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살면서 가능하면 그런 막연한 두려움이나 걱정은 사라지길 바란다.
또, 일과 삶은 때론 다른 가면을 쓰고 살 수도 있는 것이니
외형적인 이중성을 가지더라도 너무 스스로 자책하지 말자.
알맹이만 변하지 않도록 하자.
반가운 사람과 즐거운 얘기를 나누는 일은 기분이 좋다. :)
2004년 10월 28일 목요일
머리를 굴려?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데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는다.
굴러가지 않는 머리는 다시 쓰지 않으면 아예 굳을 참이다.
그러다가도 문득문득 머리가 돌아가 좋은 생각이 나면 기분은 좋은데
뭔가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머리를 굴려야 하는 것일까.
마음을 굴려야 하는 것일까.
생각에 정서가 빠진 상태라면 늘 공허함을 느끼는 수 밖에 없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요즘 들어 화두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다.
이건 내가 허전함을 느끼는 것과는 상반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무엇을 말할 것인가가 늘 고민되어지고 나에게서 나오기는 하지만
그걸 어떻게 풀어가는 가에 따라 전달하는 느낌은 많이 다를 수 있겠다.
고민되지 않은 생각은 고민되지 않는 이야기 결말로 치닫고
그 이야기는 다시 나에게 일상성.이라는 경직됨으로 공격해 온다.
털어놓고 또 털어놔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즐겁게 할란다.
즐겁게라는 강박은 없이.
굴러가지 않는 머리는 다시 쓰지 않으면 아예 굳을 참이다.
그러다가도 문득문득 머리가 돌아가 좋은 생각이 나면 기분은 좋은데
뭔가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머리를 굴려야 하는 것일까.
마음을 굴려야 하는 것일까.
생각에 정서가 빠진 상태라면 늘 공허함을 느끼는 수 밖에 없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요즘 들어 화두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다.
이건 내가 허전함을 느끼는 것과는 상반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무엇을 말할 것인가가 늘 고민되어지고 나에게서 나오기는 하지만
그걸 어떻게 풀어가는 가에 따라 전달하는 느낌은 많이 다를 수 있겠다.
고민되지 않은 생각은 고민되지 않는 이야기 결말로 치닫고
그 이야기는 다시 나에게 일상성.이라는 경직됨으로 공격해 온다.
털어놓고 또 털어놔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즐겁게 할란다.
즐겁게라는 강박은 없이.
2004년 10월 24일 일요일
[mov] 아는 여자 / Someone Special / 认识的女人
아는 여자 / Someone Special / 认识的女人
감독 : 장진
출연 : 정재영(동치성), 이나영(한이연), 오승현, 장진, 임하룡
사실, 그렇게 기대한 영화는 아니었다. 특히나 장진 감독의 영화는 극장에서 보기엔 좀 아깝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드는 스케일(?)로 아기자기하게 꾸려나가는 영화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엄청난 감동을 받길 원한 것보단 작은 웃음과 싱그러운 유머를 보는 것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 했다.
설정이나 이야기 흐름이 조금 억지스러운 면이 있는 영화이긴 했지만 하고 싶은 말, 보여주고 싶은 장면을 다 보여주며 얘기를 풀어가는 장진 감독의 뚝심에 박수를 보낸다.
그냥 오래 전부터 알아오던 사람, 속칭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게 되는 건 관계가 그렇게 깊지 않다는 것의 반증임과 동시에 심중에 두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간혹 나는 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나를 '아는 사람' 정도로 치부해 소개할 때는 화가 나거나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겠지. 그런데 나의 경우엔 별로 그런 상황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모르게 나를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을까? 퍽이나~
만약 이나영같은 사람이 '아는 사람'이었다면 나도 그 사람을 부담없이 사랑했을 것 같다. 얼마나 쿨하면서 감성 넘치는 캐릭터란 말인가. 물론 TV 미니시리즈 '네 멋대로 해라'에서 나온 캐릭터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변주였겠지만 이나영표 사랑, 애정표현은 거부감없이 담백하고 깔끔하게 다가온다. 난 마지막 장면에서 정재영이 사랑고백을 위해 목소리가 하이톤으로 바뀌며 '이름'이며 '취미'며 80년대에나 유행했을 법한 멘트를 날리는 장면이 사랑스럽다. 닭살 돋을 만큼 어색하지만 그 만큼 사랑의 첫 시작은 풋풋한 것. 난 그 둘이 그런 식의 사랑을 되도록 오랫동안 해가길 바랬다.
사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시작된 짐짓 철학적인 주제의식은 생각보다 가볍고 쉽게 결론으로 마무리 지어졌지만 별 아쉬움은 없다. 감독도 딱히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다른 식으로 말을 해봐야 이 영화만큼 효과적이지도 않았겠지. 적정한 타협은 때로 피차 적당한 즐거움을 가져온다. 적당한 건 적당한 것이지 그 이상은 아니기 때문에 아쉽다.
영화 속에서 가끔 만나는 임하룡은 반갑다. 그리고 그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반갑다. 난 코미디언일 때의 임하룡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참 좋아보인다.
회화
일산에서 회의가 있었다. 함께 브레인 스토밍도 하고 앞으로 진행될 애니메이션의 전체적인 컨셉을 잡아내는 일.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기법이나 연출보다 컨셉 잡는 일이 더 어려운 것 같다. 특히나 전시장에서 상영될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제약이 뒤따르기도 하지만...우리는 그걸 일단 다 백지화 시키고 이야기를 진전시키기로 했다.
서로 주고 받는 이야기는 서로에게 피드백이 되고 말과 말이, 문장과 문장이 얽히고 섥히면서 새로운 말과 문장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건 나 혼자서는 절대로 끄집어 내오지 못할 지난 날의 경험과 앎들을 비교적 쉽게 꺼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란 건 참 신기하다. 스스로 해내지 못하는 부분이 두 사람, 세 사람과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해결되는 경우가 있으니... 물론 시너지 작용의 극대화는 그런 외형적인 부분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내 생각을 숨김없이 말하며 밀고 당기는 양보와 이해의 미덕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나른한 일산의 어느 동산에 올라, 강렬하고 따가운, 하지만 너무도 기분이 좋은 햇살 아래서 마음 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오후. 작은 행복이 느껴지는 날.
서로 주고 받는 이야기는 서로에게 피드백이 되고 말과 말이, 문장과 문장이 얽히고 섥히면서 새로운 말과 문장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건 나 혼자서는 절대로 끄집어 내오지 못할 지난 날의 경험과 앎들을 비교적 쉽게 꺼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란 건 참 신기하다. 스스로 해내지 못하는 부분이 두 사람, 세 사람과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해결되는 경우가 있으니... 물론 시너지 작용의 극대화는 그런 외형적인 부분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내 생각을 숨김없이 말하며 밀고 당기는 양보와 이해의 미덕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나른한 일산의 어느 동산에 올라, 강렬하고 따가운, 하지만 너무도 기분이 좋은 햇살 아래서 마음 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오후. 작은 행복이 느껴지는 날.
2004년 10월 19일 화요일
한국입국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일이 좀 생겨서 말이죠. 물론 나쁜 일은 아닙니다. :)
좀 바빠질 것 같습니다.
포스팅을 자주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시간 나는대로 한국에서의 생활을 기록해야겠죠.
한국에서 즐거운 생활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
반가운 얼굴들, 시간 되면 봤으면 좋겠네요.
그럼. 이만 보고 끝!
일이 좀 생겨서 말이죠. 물론 나쁜 일은 아닙니다. :)
좀 바빠질 것 같습니다.
포스팅을 자주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시간 나는대로 한국에서의 생활을 기록해야겠죠.
한국에서 즐거운 생활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
반가운 얼굴들, 시간 되면 봤으면 좋겠네요.
그럼. 이만 보고 끝!
한국 내 연락처
한국에 있을 때만 사용할 전화입니다.
국제 로밍은 하지 않습니다.
중국 핸드폰도 있거니와 로밍은 너무 비싸요.-_-;;;;
한국에 들어와서 바로 핸드폰 신규 가입했습니다.
그런데 가격들이 다 많많치 않네요.
가장 싼 걸 구입했는데도 정말...헉~!입니다.
잘 활용하도록 해야겠죠? :)
2004년 10월 17일 일요일
[mov] 둘째 동생 / Drifters / 二弟
둘째 동생 / Drifters / 二弟
감독 : 왕 시아오쏴이
출연 : 두완 롱(둘째 동생), 수 앤(여자친구), 자오 이웨이(큰 형), 탕 양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작품 중에 하나가 <북경 자전거>다. <북경 자전거>를 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특히 북경에 가본 사람이라면) 상당히 사실적인 영화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 같은 느낌. 그게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다. <둘째 동생>도 역시 사실적인 느낌을 담아내는데, 그다지 많은 정보를 전달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영화 내용에 공감할 수 있다. 중국인의 “아메리카 드림”이랄까? 아니면 “가난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몸부림”이랄까. 아무래도 후자가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밀수선을 타고 가다가 해안 경비대에 걸려 잡혀 되돌아오거나 죽거나. 하지만 많은 이들은 수 차례 배를 갈아타고 가는 긴 여정에 동참한다. 밀입국을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딱히 어떤 희망도 없는 그들의 고향, 작은 시골에서는 밀입국 말고는 더 좋은 방법은 없나보다.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풍요를 가져다 주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물질적 풍요는 일정 수준의 정신적 풍요를 담보한다는 것이다. 충만한 정신세계를 누리고 있는 사람도 금전적인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현실생활은 정말 힘들지 않은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급속하게 뒤섞이고 있는 중국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더욱 큰 화두로 다가올 법 하다. 한국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겠지. 어차피 사람 사는 곳에 발생되는 문제는 대부분 비슷하니까.
물질에 얽매이지 않는 삶은 그 물질을 소유해보고나 해야 할 소리는 아닐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유하고 있지 못한 사람이 무소유를 말하면 스님들이나 하는 소리가 되고 일반인들이 그런 얘기를 하면 현실감각이 없다고 비난을 받기 쉽상이다. 참 어려운 문제.
영화를 보고 난 후 느낀 감상 또 하나, 평탄한 인생은 결코 없다는 것. 본인 스스로 만들어 내는 일들도 무척 많지만 인연들에 얽혀서 많은 일들이 우연, 필연으로 발생한다. 그러다가 때론 자기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모르게 되고 결국 자신이 원하지 않는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그랬거나 어쨌거나 결국 사람은 희망과 목적이 있지 않은가. 방황도 하고 좌절도 하지만 잘 추스리고 일어서면 다시 궤도에 오를 수 있고 다시 정상적인 삶을 살 수도 있다고 믿는다.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생각이 났는데, 중국 영화를 보면 영웅들이 나오는 홍콩 느와르 풍의 영화 말고도 상당히 많은 영화에서 표현되는 중국인은 죽음에 대해 상당히 초연하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 영화에서만 더더욱 두드러지겠지만 한 나라의 영화는 그 나라 사람들의 삶과 정서의 반영이지 않는가. 이 영화에서도 목숨을 거는 일이 위험하다는 걸, 두렵다는 걸 알지만 대면하는 모습은 처절하도록 초연하다.
닌텐도 DS 플레이 화면
이런 게임기가 나왔다. 저렇게 게임하면 재미가 있긴 할까?싶지만, 해보면 재밌긴 하겠다.^^
출처 : http://www.yurizen.net/zblog/?no=62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보다 최소한 손목, 팔꿈치까지는 움직여야하니 운동량도 좀 되지 않을까?
아니면, 혹시 생긴 게 전자사전처럼 생겼으니 저렇게 펜으로 뭔가를 열중해서 하고 있으면 남들이 볼 때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겠다.(소리는 off) 흠~ 그럼 직장인들, 학생들도 많이 찾겠는걸?
난 몸에 센서를 붙이고 직접 온 몸으로 움직이며 하는 게임을 하고 싶다. 나온 게 있다고 들었는데 한 판 하는데 무척 비싸겠지? "한 게임 더?"는 힘들겠지? 그런데 그런 게임기 있으면 정말 해보고 싶다.
출처 : http://www.yurizen.net/zblog/?no=62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보다 최소한 손목, 팔꿈치까지는 움직여야하니 운동량도 좀 되지 않을까?
아니면, 혹시 생긴 게 전자사전처럼 생겼으니 저렇게 펜으로 뭔가를 열중해서 하고 있으면 남들이 볼 때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겠다.(소리는 off) 흠~ 그럼 직장인들, 학생들도 많이 찾겠는걸?
난 몸에 센서를 붙이고 직접 온 몸으로 움직이며 하는 게임을 하고 싶다. 나온 게 있다고 들었는데 한 판 하는데 무척 비싸겠지? "한 게임 더?"는 힘들겠지? 그런데 그런 게임기 있으면 정말 해보고 싶다.
라벨:
게임기,
닌텐도,
sense datum
2004년 10월 15일 금요일
조승우
EBS에서 방영된 걸 누가 복사한 모양인데 조승우 노래 정말 잘한다. 사실 난 영화에서의 그의 연기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힘은 느껴지는데 영화 내용과 약간의 엇갈림이 느껴진달까?
조승우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
인터넷을 허우적대다 보니 조승우에 대한 기사가 몇 개 링크 걸려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한 장애우가 말없이 조승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조승우가 먼저 다가가서 하는말...
"우리 사진 찍을까요?"
그리고 장애우와 키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사진을 찍은 뒤..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누가 사진으로 그 광경을 담았고 인터넷에 올렸다가 장애우의 부탁(인터넷에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기에)으로 사진을 내리는 대신 조승우가 연극할 때 노래부르는 동영상이 대신 올라가게 되었다. 조승우라는 배우가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자연스럽게 보여준 조승우에 대한 칭찬, 그리고 그 글을 읽고 난 후 자신을 반성하는 글들.
연예인들이 쇼를 너무 잘하기 때문에 믿지 않겠다고 하기엔 억지스러운 고집인 것 같고 조승우에 대한 인상이 나름대로 좋기 때문에 믿기로 했다. 그리고 나도 그가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난 예전에 "동그라미 재활원"에서 생활을 좀 해 본 덕분에, 그리고 예전 대학 다닐 때 식당 어머님 딸이 다운 증후군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많은 만남과 이해가 있었다. 그래서 장애우들이 그다지 달라보이진 않지만, 간혹 장애우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문득 문득 생길 수 있는 심리적 편견에 대해서는 더더욱 조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지.
그럼,
이쁜 여자나 멋진 남자를 보고 비교분석하는 것도 편견이겠지? 흠~ 그런데 이건 학습에 의한 게 아니라 DNA에 포함된 어떤 인자 때문이라고 발표도 났다던데... 쿨럭~ -_-;;;
하지 않는 것일까 안되는 것일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안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믿는다. 하지 않기 때문에 안되는 것일 뿐이지. 그런데 정말 내 스스로는 충분히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데도 되지 않는 경우는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난 다시 노력이 조금 더 부족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앤드류 매튜스 - Andrew Matthews는 <마음 가는대로 해라>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참으로 가슴 뜨끔한 말이다. 사실 새벽에 일어나고 말고는 별 중요하지 않다. 각자 종사하는 일에 따라 다를 테니까.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은 나름대로 늘 앞서가는 삶을 살아내는 것만은 확실한 듯 하다.
내가 노력의 "끝"까지 가보지 않고는 장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뒤를 돌아보면 "끝"까지 노력한 일은 참으로 드물다는 걸 알겠다. 하다가 어느 정도 되면 그 선에서 만족해버리는 알량한 자만심.같은 것. 꾸준히 하기가 힘들겠지만 방법은 없네.
안되는 것은 없다?!!
해보고 다시 말해보자고.
[#M_ 이 사람은 또 이런 말도 했네.|
"행복의 비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사실 난 행복한 삶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임을 지금도 믿고 있다. 단 이 말에서 다시 더 배운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다고 늘 울상을 짓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면 된다는 것. "고통을 참을 수 없으면 즐기라"고도 하지 않던가.
말이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구만~-_-;;;
어쨌든!!! :P
앤드류 매튜스 - Andrew Matthews는 <마음 가는대로 해라>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도 하고 공부를 하고 사람들을 사귀면서 최대한으로 노력하고 있는데도 인생에서 좋은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여태껏 본 적이 없다.
참으로 가슴 뜨끔한 말이다. 사실 새벽에 일어나고 말고는 별 중요하지 않다. 각자 종사하는 일에 따라 다를 테니까.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은 나름대로 늘 앞서가는 삶을 살아내는 것만은 확실한 듯 하다.
내가 노력의 "끝"까지 가보지 않고는 장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뒤를 돌아보면 "끝"까지 노력한 일은 참으로 드물다는 걸 알겠다. 하다가 어느 정도 되면 그 선에서 만족해버리는 알량한 자만심.같은 것. 꾸준히 하기가 힘들겠지만 방법은 없네.
안되는 것은 없다?!!
해보고 다시 말해보자고.
[#M_ 이 사람은 또 이런 말도 했네.|
"행복의 비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사실 난 행복한 삶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임을 지금도 믿고 있다. 단 이 말에서 다시 더 배운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다고 늘 울상을 짓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면 된다는 것. "고통을 참을 수 없으면 즐기라"고도 하지 않던가.
말이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구만~-_-;;;
어쨌든!!! :P
2004년 10월 14일 목요일
앎의 시작.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 유한준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은 아니다"는 뜻. 사실 내가 알고 있었던 문장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다르나니라"였는데 원래가 이런 뜻이었나? 이렇게 되면 해석하는 뜻이 상당히 차이가 많이 나는데...
유홍준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 나오는 글이라 한다. 원래 글은 유한준이란 분의 글이었고. 안다는 게 먼저인지 사랑하는 게 먼저인지에 따라 해석이 많이 달라질 수 있을텐데 어떻게 말이 다르게 전파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더 와 닿는다. 제대로 알면 제대로 사랑할 수 있으니까. 물론 사랑을 해도 알아가긴 매 한가지긴 하다. 다만 사랑에 빠져 제대로 볼 수 있는 마음의 망막을 가리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 그러고 보니 앎과 사랑은 거의 동시에 시작된다고 해도 될 듯 싶다.
'제대로' 안다는 것이 말장난에 불과할 지도 모르지만 그 제대로 안다는 것에 대한 욕구가 살다보니 정말 절실히 느껴진다. 나도, 상대방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또다시 반복이지만 간혹 사랑하려고,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에서 알아질 수 있긴 하다.)
누군가를 온 몸 세포줄기마다 새겨 넣 듯 이해하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빈번한 때에 머리 속 가득히, 마음 속 가득히 막막해지고 소통 불량이 되는 건 당연한 듯 싶다. 불끈 일어나는 호기심을 잘 다스리고 다독여서 함께 가야겠다.
살아도 살아도 실타래의 한 쪽 끝을 찾아내긴 커녕 꽁꽁 묶여가는 느낌. 아직도 갈 길이 바쁘다.
라벨:
사랑,
앎,
record my mind
2004년 10월 13일 수요일
뜨거울 열기 속으로...1
<길림성 장춘시 국제 애니메이션 교육 포럼> 주최측은 국내외빈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그리고 낯선 땅에서의 이국적 정취를 느끼게 해주기 위해 길림 예술 대학 학생들을 동원한 공연을 준비했다.
한 차례의 춤과 경쾌한 음악이 끝난 후 준비된 무대는 중국 전통 악기 연주. 얼후(한국의 아쟁과 같은)와 비파(맞나?-_-a) 그리고 거문고 혹은 가야금과 비슷한 악기로 구성된 연주단.
한 여자의 솔로 무대. 목소리가 아주 고음까지 올라가는 노래를 아주 잘 소화한다. 중국의 전통 음악(한국의 트롯트?)같다. TV에서 이런 창법과 노래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난 사실 이런 창법은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내가 아는 중국 여자 아이 중에 이런 창법으로 멋드러지게 노래를 부르는 걸 직접 들었지만 음..역시 내 취향은...-_-;;;
그 다음으론 정말 화려한 몸놀림을 자랑하는 무희들. 허리 돌림이 장난이 아니다.-0- 마치 누가 허리를 더 많이 움직이는지 시합이라고 열린 듯 하다. 약간 섹시한 모습 때문에 주변의 많은 남정네들은 기쁨의 눈초리를 초롱초롱 보내고 있었다.-_-;;;
정말 훤칠하다.
깜찍~! | 깜찍~!! |
한 차례의 춤과 경쾌한 음악이 끝난 후 준비된 무대는 중국 전통 악기 연주. 얼후(한국의 아쟁과 같은)와 비파(맞나?-_-a) 그리고 거문고 혹은 가야금과 비슷한 악기로 구성된 연주단.
중간의 흰 옷이 리더인 듯한...
남자는 단 한명~!
선율이 홍콩 무협 영화에서 들었음직하다.
한 여자의 솔로 무대. 목소리가 아주 고음까지 올라가는 노래를 아주 잘 소화한다. 중국의 전통 음악(한국의 트롯트?)같다. TV에서 이런 창법과 노래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난 사실 이런 창법은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내가 아는 중국 여자 아이 중에 이런 창법으로 멋드러지게 노래를 부르는 걸 직접 들었지만 음..역시 내 취향은...-_-;;;
통통한 천사~^^
그 다음으론 정말 화려한 몸놀림을 자랑하는 무희들. 허리 돌림이 장난이 아니다.-0- 마치 누가 허리를 더 많이 움직이는지 시합이라고 열린 듯 하다. 약간 섹시한 모습 때문에 주변의 많은 남정네들은 기쁨의 눈초리를 초롱초롱 보내고 있었다.-_-;;;
으쌰~ 허리꺽고~
조심해요~ 허리다칠라~
백문이 불여일견 - 클릭! " tt_lesstext="다 봤다!">
2004년 10월 12일 화요일
장춘 국제 애니메이션 교육 포럼 행사 중...
(2004년 9월 23일부터 있었던 행사) 만화, 애니메이션 경쟁부문이 있었다. 중국의 각 만화, 애니메이션 관련 대학을 비롯해 외국의 몇 몇 나라에서도 참여한 행사. 조금은 구색맞추기 식의 느낌이 강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준비는 한 것 같다.
세계 ASIFA회장, 중국 애니메이션학회 회장, 한국 SICAF 총감독을 비롯해 많은 내외빈들이 참석을 했었다. 다만 처음 준비하는 행사라 그런지 여기저기 충분치 못한 진행상의 미숙함이 보이긴 했다. 만화, 애니메이션 경쟁부문도 작품을 만든 학생들은 오지 않고 대부분 그 학생들이 소속된 학교 교수님들(교육 포럼에 참가한 교수님들)이 시상대에 올라가 상을 받는 식이었다. 이렇게 된 것에는 어떤 곡절이 있겠지...-_-;
애니메이션 '보련등'을 만든 창광시 감독과 학교 관계자가 함께 만화제, 영화제 진행을 했다. 처음 나온 젊은 청년들은 길림 예술 학원의 학생들인데 전체 진행 사회를 봤다. 이 행사가 끝난 후 길림 예술 학원의 재원들이 갖가지 '쇼'를 선사했으니까. 이 '쇼'는 차츰 올려야겠다.-0-
어쨌든, 한국에선 '한국 예술 종합학교' 이효정 감독 만든 '까만구름이 몰려와요'가 2등상(북경전영학원 애니메이션과도 함께 수상; 상금 7천원-당연 중국돈^^;)을 받았다. 아무래도 중국 국내 작품을 1등(상금 만원; 흠~) 주려는 의도가 뻔히 보이긴 하지만 그건 뭐 예의상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애니메이션을 언제 상영을 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행사 기간 동안 보지 못했고 또 시상식을 할 때도 클립을 제대로 틀어주지도 않았다. 만화는 전시관에서 전시를 했었으니 당연히 봤었고... 뭐, 이런 게 문제라기 보다는 좀 아쉬웠다는 뜻이지.
1등상은 남경대학 측에서 받아갔는데 나중에 들어본 결과 이건 학생들이 참여해 작품을 만든 게 아니라 교수님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급하게 만들어 출품한 작품들이 많았다는 사실.-_-; 게다가 1등을 받은 작품은 그 학교 학생이 만들지 않고 다른 곳에 외주를-0- 줘서 만들어 출품했다는 사실.(이 부분은 정확하진 않겠지만 아는 분으로부터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알고 나니 좀 김이 샌다.
과연 작품들의 공정한 경쟁을 위한 행사 준비라기 보다는 중국 애니메이션의 자존심을 구기지 않으려는 그런 의도로 읽혔다고나 할까? 길림성 정부 대표와 길림성과 장춘시 교육청에서 주관을 한 거니 체면을 구길 수는 없었겠지. 좀 얄미운걸...;;;;;
여하튼, 앞 부분의 행사들이 끝나고 난 후에 2부 행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어떤 행사일까 궁금하게 만드는...^^;;;
세계 ASIFA회장, 중국 애니메이션학회 회장, 한국 SICAF 총감독을 비롯해 많은 내외빈들이 참석을 했었다. 다만 처음 준비하는 행사라 그런지 여기저기 충분치 못한 진행상의 미숙함이 보이긴 했다. 만화, 애니메이션 경쟁부문도 작품을 만든 학생들은 오지 않고 대부분 그 학생들이 소속된 학교 교수님들(교육 포럼에 참가한 교수님들)이 시상대에 올라가 상을 받는 식이었다. 이렇게 된 것에는 어떤 곡절이 있겠지...-_-;
선남선녀의 사회로 시작~ | 창광시 감독의 진행 |
만화부분 시상 | 특별상(?)이었던 듯;;; |
넬슨 신 감독의 시상 | 박세형 감독의 시상 |
애니메이션 부분 2등상(고개숙인 분; 매형^^) | 애니메이션 부분 1등상 |
애니메이션 '보련등'을 만든 창광시 감독과 학교 관계자가 함께 만화제, 영화제 진행을 했다. 처음 나온 젊은 청년들은 길림 예술 학원의 학생들인데 전체 진행 사회를 봤다. 이 행사가 끝난 후 길림 예술 학원의 재원들이 갖가지 '쇼'를 선사했으니까. 이 '쇼'는 차츰 올려야겠다.-0-
어쨌든, 한국에선 '한국 예술 종합학교' 이효정 감독 만든 '까만구름이 몰려와요'가 2등상(북경전영학원 애니메이션과도 함께 수상; 상금 7천원-당연 중국돈^^;)을 받았다. 아무래도 중국 국내 작품을 1등(상금 만원; 흠~) 주려는 의도가 뻔히 보이긴 하지만 그건 뭐 예의상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애니메이션을 언제 상영을 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행사 기간 동안 보지 못했고 또 시상식을 할 때도 클립을 제대로 틀어주지도 않았다. 만화는 전시관에서 전시를 했었으니 당연히 봤었고... 뭐, 이런 게 문제라기 보다는 좀 아쉬웠다는 뜻이지.
1등상은 남경대학 측에서 받아갔는데 나중에 들어본 결과 이건 학생들이 참여해 작품을 만든 게 아니라 교수님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급하게 만들어 출품한 작품들이 많았다는 사실.-_-; 게다가 1등을 받은 작품은 그 학교 학생이 만들지 않고 다른 곳에 외주를-0- 줘서 만들어 출품했다는 사실.(이 부분은 정확하진 않겠지만 아는 분으로부터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알고 나니 좀 김이 샌다.
과연 작품들의 공정한 경쟁을 위한 행사 준비라기 보다는 중국 애니메이션의 자존심을 구기지 않으려는 그런 의도로 읽혔다고나 할까? 길림성 정부 대표와 길림성과 장춘시 교육청에서 주관을 한 거니 체면을 구길 수는 없었겠지. 좀 얄미운걸...;;;;;
여하튼, 앞 부분의 행사들이 끝나고 난 후에 2부 행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어떤 행사일까 궁금하게 만드는...^^;;;
2004년 10월 11일 월요일
포기할 때...
잃어버릴 만한 존재를 알고 있지도 않은 것 같다. 하루하루 잠에서 깨어 살아있는 내 몸을 만져보고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고서야 살아있음을 느끼니까. 요즘같은 계절엔 창으로 힘껏 밀고 들어오는 햇살에 내 종아리 부분이 살짝 열오름을 느끼는 행복감으로 아침을 맞이하긴 하지만 내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은 벌써 오래 전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가슴은 여전히 벌떡이며 뛰고 있고 슬플 때 울고 기쁠 때 웃는 감정이 있는 걸 보면 내 존재는 다만 아직 명확하게 모르고 있을 뿐 잃어버리진 않은 모양이다. 게다가 난 얼마나 내 스스로에게 집착을 하며 살아왔던가. 아직은 어느 하나도 잃어버리진 않았다는 안도감은 사실 사치일 수 있지만 그래도 안심이 되긴 한다.
여전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목적의식은 내가 삶의 종극에 가서 얻어내고 싶은 것과 약간의 괴리가 있긴 하다. 다만, 최대한 내가 하는 일과 삶에서 얻어내고 싶은 것과의 일치점을 만들기 위해 평행선을 유지하며 살진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아직 실패했다고 생각해 본 적 없이 잘 살아왔지만 그렇다고 뭔가를 이뤘다는 작은 만족감도 또한 없었다. 오래 전 작은 감각감상을 얻은 힘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정도랄까. 실패해보지도 않았으니 포기도 없다. 게다가 포기할 때 인생은 바로 무거운 막을 내려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으니까.
힘껏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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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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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10일 일요일
붓 위에 앉아 놀다.
할 일도 있고 오랜만에 낙서나 좀 해볼까 하고 예전에 사 놓은 먹과 붓을 꺼냈다. 서예나 붓 그림은 배워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아~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붓글씨를 배웠었구나. "중봉으로 잡고 팔꿈치는 수평을 이루고..." 등등. 그런데 하나도 모르겠다.
그냥 붓가는 대로 마음 가는 것도 좋고 화선지에 먹이 닿아 번지는 것도 좋다. 특히 먹향이 방 안에 은은하게 번지면 왠지 마음도 편안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약간 쾨쾨한 느낌이 낡은 느낌을 줘서 좋다. 먹을 직접 갈아 쓰지 않아 아쉽지만 화방에서 파는 먹도 그런대로 쓸만 하다. 나같은 경우야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니 갈아서 쓰는 먹의 느낌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먹향이 좋을 뿐이다. 자주 맡는 먹향이 아니어서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한 두어 시간을 가지고 놀았더니 방 안에 먹향이 가득하다.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낙서를 하고 화선지 하나 가득 내 마음이 검게, 물결을 따라 번진다. 마음대로 손이 가면 그런대로 기분이 좋고 손가는 대로 마음이 따라가도 상관없다.
코 끝을 살짝 자극하는 먹향이 화선지 깊숙히 배어 들어가는 소리, 그리고 시간이 지나 스며들어간 부분이 까칠하게 마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마음, 먹에 담그고 놀다.
그냥 붓가는 대로 마음 가는 것도 좋고 화선지에 먹이 닿아 번지는 것도 좋다. 특히 먹향이 방 안에 은은하게 번지면 왠지 마음도 편안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약간 쾨쾨한 느낌이 낡은 느낌을 줘서 좋다. 먹을 직접 갈아 쓰지 않아 아쉽지만 화방에서 파는 먹도 그런대로 쓸만 하다. 나같은 경우야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니 갈아서 쓰는 먹의 느낌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먹향이 좋을 뿐이다. 자주 맡는 먹향이 아니어서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한 두어 시간을 가지고 놀았더니 방 안에 먹향이 가득하다.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낙서를 하고 화선지 하나 가득 내 마음이 검게, 물결을 따라 번진다. 마음대로 손이 가면 그런대로 기분이 좋고 손가는 대로 마음이 따라가도 상관없다.
코 끝을 살짝 자극하는 먹향이 화선지 깊숙히 배어 들어가는 소리, 그리고 시간이 지나 스며들어간 부분이 까칠하게 마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마음, 먹에 담그고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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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
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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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9일 토요일
시간은 걱정하지 마.
눈 앞에 보이는 것만 보지 말아야지.
그러다 보면 늘 마음은 조급해지니까.
자꾸 흔들리잖아.
언제나 흘러오고 흘러가는 삶인데도
뒤로도 앞으로도 멀리 보지 못하고 있어.
지금 이 순간은 순간일 뿐이야.
빠른 회복을 바랍니다.
오랜만에 명오형이 메신저에서 부른다.
덕만교무는 예전의 동문수학하던 동기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덤프트럭 운전사가 오르막 길에서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고 내렸는데 그 브레이크가 풀리면서 사람도 없는 차가 미끄러져 내려왔다 한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이 차와 벽 사이에 끼이는 큰 사고를 당한 것이다. 사고처리야 어떻게든 잘 되겠지만 한창인 나이에 오랜 시간 동안 치료를 해야한다니... 아니, 치료가 문제가 아니라 살아난 게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정말 다행이다.
명오형의 말대로 마음을 모아 기도를 해야겠다.
기도라는 건 마음을 일심으로 모으면 바로 기도가 되는 것. 바라는 마음을 진심으로 다하면 그게 허공에 맺히고 위력을 발휘한다. 솔직히 말하면 기도라는 걸 제대로 했었는지 혹은 지금도 할 수 있는지 난 장담할 수 없다. 최대한 일심으로 만들려고 했었고 지금도 그 방법 밖엔 잘 모르겠다. 기도라는 게 배워서 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부모님들이 자나깨나 자식들을 위하는 마음이야 말로 기도하는 정성, 그 마음이 아닐까 싶다.
"한창 일할 젊은 친구 데려가지 않아서 정말 감사합니다. 상처는 크지만 잘 치료가 될 것이니 치료 받는 중에 마음 흔들리지 말고 잘 견뎌내도록 도와주십시요. 어서 회복해서 건강한 삶 터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요."
덕만.을 아는 분들도 마음 모아주시지요.
명오형 : 승인아~ 잘 지내지?
나 : 네. 그럼요. 오랜만입니다.
명오형 : 소식 하나 전해줄 게 있어서...혹시 알고 있나?
나 : 아니요? 모르는데요? 뭔데요?
명오형 : 덕만교무 알지? 어제 교통사고를 당했다. 갈비뼈가 11대가 나갔다고 그러는구나. 다행히 정신은 아주 말짱하고 얼굴에도 상처가 없다고 그런다.
나 : 예? 그런 큰 사고를...
명오형 : 생명엔 지장이 없고 치료를 잘 받으면 완치가 된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기도해주라고 말 건거다.
나 : 예... 알았어요. 그나저나 정말 불행 중 다행입니다.
나 : 네. 그럼요. 오랜만입니다.
명오형 : 소식 하나 전해줄 게 있어서...혹시 알고 있나?
나 : 아니요? 모르는데요? 뭔데요?
명오형 : 덕만교무 알지? 어제 교통사고를 당했다. 갈비뼈가 11대가 나갔다고 그러는구나. 다행히 정신은 아주 말짱하고 얼굴에도 상처가 없다고 그런다.
나 : 예? 그런 큰 사고를...
명오형 : 생명엔 지장이 없고 치료를 잘 받으면 완치가 된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기도해주라고 말 건거다.
나 : 예... 알았어요. 그나저나 정말 불행 중 다행입니다.
덕만교무는 예전의 동문수학하던 동기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덤프트럭 운전사가 오르막 길에서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고 내렸는데 그 브레이크가 풀리면서 사람도 없는 차가 미끄러져 내려왔다 한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이 차와 벽 사이에 끼이는 큰 사고를 당한 것이다. 사고처리야 어떻게든 잘 되겠지만 한창인 나이에 오랜 시간 동안 치료를 해야한다니... 아니, 치료가 문제가 아니라 살아난 게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정말 다행이다.
명오형의 말대로 마음을 모아 기도를 해야겠다.
기도라는 건 마음을 일심으로 모으면 바로 기도가 되는 것. 바라는 마음을 진심으로 다하면 그게 허공에 맺히고 위력을 발휘한다. 솔직히 말하면 기도라는 걸 제대로 했었는지 혹은 지금도 할 수 있는지 난 장담할 수 없다. 최대한 일심으로 만들려고 했었고 지금도 그 방법 밖엔 잘 모르겠다. 기도라는 게 배워서 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부모님들이 자나깨나 자식들을 위하는 마음이야 말로 기도하는 정성, 그 마음이 아닐까 싶다.
"한창 일할 젊은 친구 데려가지 않아서 정말 감사합니다. 상처는 크지만 잘 치료가 될 것이니 치료 받는 중에 마음 흔들리지 말고 잘 견뎌내도록 도와주십시요. 어서 회복해서 건강한 삶 터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요."
덕만.을 아는 분들도 마음 모아주시지요.
라벨:
기도,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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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8일 금요일
솎아내다가...
하루 종일(?) 애니메이션과 몇 편의 영화를 봤다. 전에 본 것들이 대부분이다. 자료로 활용할 겸 디비디를 샀는데 가끔 질량이 좋지 않은 것들이 있어서 확인 겸 주욱 돌려봤다. 틀어놓고 할 일도 좀 하고 인터넷 검색도 좀 하고... (거의 한량이구만-_-;;;)
그냥 틀어놓고 소리만 듣기도 하고 때론 잠시 화면과 함께 보기도 하고... 그런데 그러던 중에 참 많은 새로운 부분들이 눈에, 귀에 들어온다. 미국 애니메이션, 일본 애니메이션 모두 새삼스럽지만 참 대단하다.
색감이며 움직임이며 사운드며 특수효과며 참 좋다. 새삼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해 문득 문득 놀라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다름아닌 애니메이션의 섬세함 때문이었다. 전에 어느 정도 애니메이션을 봤다 싶은 후 부터는 본의 아니게 혹은 습관처럼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억지로 보지 않았고 중국에 와서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픽사 작품 외에는 되도록 사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몇 장을 사서 보는데 역시 세계 각국에서 환영을 받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 볼 때는 작은 부분, 움직임들은 무심코 봤거나 큰 흐름에 따라가며 신경을 쓰지 않고 봤었는데 이번엔 그런 부분들이 눈에 잘 잡힌다. 그런 부분이 애니메이션을 더 완성도 있게 만드는 건 확실한 것 같다.
특히 가장 감탄을 한 부분은 사운드 부분이었는데 예를 들어 뮬란 같은 경우 영어, 중국어, 한국어가 다 더빙되어 있는 버전이었는데 노래 씬에서 성우들의 노래 솜씨가 거의 일률적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던가, 다른 나라 언어로 노래를 부르는 데도 음악의 흐름이나 분위기는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된다던가 하는 부분. 또 작은 이미지 사운드 같은 경우도 소싱부터 믹싱까지 참 잘 되어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음...그러고 보니 반복적인 시청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단순한 교훈. 몇 년 전 학교 다니며 수업을 할 때 다 했던 건데.-_-; 그새 실력도 없는 처지에 좀 안다고 난 척 하고 다녔나 싶다. 부끄럽다. 예전엔 과제 하나를 위해 영화를 몇 번이고 보고 또 보고 그랬는데... 새로운 자극은 새로운 것을 접해야만 생성되는 것은 아닌데... 오감을 열고 받아들이면 늘 새로움으로 충만할텐데...-_-a
어쨌거나 몇 장의 불량 디비디를 솎아 내긴 했지만 그러는 동안에 즐거운 하루를 보낸 것 같네.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혼자서 키득거리고 웃은 건 정말 오랜만인 듯.
그러고 보니 한국에 있을 때 혼자 몬스터 주식회사를 보고 나오며 가슴이 벅찼던 때가 생각이 난다. 으~~~~~~!!!
그냥 틀어놓고 소리만 듣기도 하고 때론 잠시 화면과 함께 보기도 하고... 그런데 그러던 중에 참 많은 새로운 부분들이 눈에, 귀에 들어온다. 미국 애니메이션, 일본 애니메이션 모두 새삼스럽지만 참 대단하다.
색감이며 움직임이며 사운드며 특수효과며 참 좋다. 새삼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해 문득 문득 놀라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다름아닌 애니메이션의 섬세함 때문이었다. 전에 어느 정도 애니메이션을 봤다 싶은 후 부터는 본의 아니게 혹은 습관처럼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억지로 보지 않았고 중국에 와서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픽사 작품 외에는 되도록 사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몇 장을 사서 보는데 역시 세계 각국에서 환영을 받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 볼 때는 작은 부분, 움직임들은 무심코 봤거나 큰 흐름에 따라가며 신경을 쓰지 않고 봤었는데 이번엔 그런 부분들이 눈에 잘 잡힌다. 그런 부분이 애니메이션을 더 완성도 있게 만드는 건 확실한 것 같다.
특히 가장 감탄을 한 부분은 사운드 부분이었는데 예를 들어 뮬란 같은 경우 영어, 중국어, 한국어가 다 더빙되어 있는 버전이었는데 노래 씬에서 성우들의 노래 솜씨가 거의 일률적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던가, 다른 나라 언어로 노래를 부르는 데도 음악의 흐름이나 분위기는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된다던가 하는 부분. 또 작은 이미지 사운드 같은 경우도 소싱부터 믹싱까지 참 잘 되어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음...그러고 보니 반복적인 시청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단순한 교훈. 몇 년 전 학교 다니며 수업을 할 때 다 했던 건데.-_-; 그새 실력도 없는 처지에 좀 안다고 난 척 하고 다녔나 싶다. 부끄럽다. 예전엔 과제 하나를 위해 영화를 몇 번이고 보고 또 보고 그랬는데... 새로운 자극은 새로운 것을 접해야만 생성되는 것은 아닌데... 오감을 열고 받아들이면 늘 새로움으로 충만할텐데...-_-a
어쨌거나 몇 장의 불량 디비디를 솎아 내긴 했지만 그러는 동안에 즐거운 하루를 보낸 것 같네.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혼자서 키득거리고 웃은 건 정말 오랜만인 듯.
그러고 보니 한국에 있을 때 혼자 몬스터 주식회사를 보고 나오며 가슴이 벅찼던 때가 생각이 난다. 으~~~~~~!!!
2004년 10월 7일 목요일
김장철인가?
밖에 여기저기 배추들, 대파들의 일광욕들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몇 집에서만 그러나 싶었는데 곳곳이 다 배추와 대파들이다. 식당은 당연히 말할 것도 없고 일반 가정집에서도 김장을 준비하나 보다. 김장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 여긴 김치가 없으니까. 배추 등을 절여서 먹는 음식은 있는데 한국 김치랑은 너무 다르다. 아무래도 중국 식당에서 가끔 먹는 절인 배추 반찬 등을 만들려고 하나보다.
여기 장춘은 과일도 차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서 팔기도 하니 이런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지만 가끔 걱정도 된다. 장춘의 공기는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물론 대도시에 비해서 괜찮은 편이긴 하지만. 그리고 먼지도 무척 많이 날리는 편이기 때문에 밖에 저렇게 내놓으면 아마 씻는데 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_-;
그런데 이런 풍경은 참 정겹다. 겨울이 왔다는 느낌도 주지만 한국에서 김장철마다 느끼던 걸 새삼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가지런히~ | 큰 길 가에... |
여기에도~-_-; | 저기에도~-0- |
여기 장춘은 과일도 차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서 팔기도 하니 이런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지만 가끔 걱정도 된다. 장춘의 공기는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물론 대도시에 비해서 괜찮은 편이긴 하지만. 그리고 먼지도 무척 많이 날리는 편이기 때문에 밖에 저렇게 내놓으면 아마 씻는데 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_-;
그런데 이런 풍경은 참 정겹다. 겨울이 왔다는 느낌도 주지만 한국에서 김장철마다 느끼던 걸 새삼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라벨:
김장철,
배추,
daily life
2004년 10월 6일 수요일
무료함의 출처...
일이 없을 때는 무료하다. 무료하다는 것은 재밌지가 않다는 것인데 왜 재밌지 않을까를 생각해 본다. 혼자 있으면서도 재밌게 놀지 못하는 건 무슨 이유 때문일까. 어려서부터 그런 방면에 대해 익히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자라면서 재미라고 하는 부분, 흥미라고 하는 부분이 몇 가지 고정된 행동양식으로 굳어져 버린 것일까?
혼자 영화를 보건, 낮잠을 자건, 그림을 그리건 재밌어야 하는데... 하긴 지금 열거하는 내용들을 봐도 내겐 특별한 취미, 특기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어릴 적 앙케이트.라고 하는 게 유행했었는데 꼭 그럴 때마다 빠지지 않고 적어넣어야 하는 공란들. 취미. 특기. 당시 전국민이 즐겨 사용하던 취미의 대명사는 독서와 음악 감상. 그런데 난 지금은 독서도 잘 하지 않고 음악 감상도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책을 한 권 사긴했다. "노신의 잡문 모음집". 주로 하는 일이 있건 없건 간에 스스로의 교양을 쌓거나 혼자서 무언가를 하며 즐길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그 개인에게 참 행복한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드네.
무료함의 출처는 그러고 보니 일의 있고 없고, 하는 일의 재미있고 없고가 아니라. 지금 나의 습관에서 비롯되는 거 아닌가? 혹은 지금의 내 기호의 문제? 좀 더 고민 좀 해봐야겠군.
혼자 영화를 보건, 낮잠을 자건, 그림을 그리건 재밌어야 하는데... 하긴 지금 열거하는 내용들을 봐도 내겐 특별한 취미, 특기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어릴 적 앙케이트.라고 하는 게 유행했었는데 꼭 그럴 때마다 빠지지 않고 적어넣어야 하는 공란들. 취미. 특기. 당시 전국민이 즐겨 사용하던 취미의 대명사는 독서와 음악 감상. 그런데 난 지금은 독서도 잘 하지 않고 음악 감상도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책을 한 권 사긴했다. "노신의 잡문 모음집". 주로 하는 일이 있건 없건 간에 스스로의 교양을 쌓거나 혼자서 무언가를 하며 즐길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그 개인에게 참 행복한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드네.
무료함의 출처는 그러고 보니 일의 있고 없고, 하는 일의 재미있고 없고가 아니라. 지금 나의 습관에서 비롯되는 거 아닌가? 혹은 지금의 내 기호의 문제? 좀 더 고민 좀 해봐야겠군.
2004년 10월 5일 화요일
사람을 안다는 것.
도대체 사람을 이해하고 안다는 것은 언제쯤이나 마음에 걸림이 없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을까? 사실 요즘은 누구와 크게 걸리거나 마음이 대질리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만나서 얘기를 듣다 보면 동감하는 부분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부분에선 여전히 마음이 턱턱 막힌다.
이건 투정이다.
그렇다. 내 삶에 대한 나의 투정. 아무것도 걸림 없이 솔직히 말한다는 것에 대해선 이미 포기한 지 오래다. 아니, 내 머리가 커지고 마음에 하나 가득 욕심이 들어찬 이후엔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태도가 자연스럽게 견지되지 않는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지. 그건 곧 지금의 나를 포기하는 것과도 같은 것. 사실, 애기를 주욱 하다 보면 이런 저런 고민과 의문점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풀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다만 누가 먼저 그런 태도를 털어놓느냐를 가지고 계산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종종 발생하긴 하지만...
조금씩, 정말 아주 조금씩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이건 투정이다.
그렇다. 내 삶에 대한 나의 투정. 아무것도 걸림 없이 솔직히 말한다는 것에 대해선 이미 포기한 지 오래다. 아니, 내 머리가 커지고 마음에 하나 가득 욕심이 들어찬 이후엔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태도가 자연스럽게 견지되지 않는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지. 그건 곧 지금의 나를 포기하는 것과도 같은 것. 사실, 애기를 주욱 하다 보면 이런 저런 고민과 의문점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풀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다만 누가 먼저 그런 태도를 털어놓느냐를 가지고 계산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종종 발생하긴 하지만...
조금씩, 정말 아주 조금씩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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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워야...
인터넷으로 신문 기사를 읽다가 이런 문구를 보게 되었다.
사실 나도 입버릇처럼 하는 말 중에 하나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즐겨라. 그렇지 않으면 이뤄낼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식. 잘한다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듣고 살았던가. 그런데 그 즐긴다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떤 일을 할 때 먹고 사는 일차적인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명예욕, 자존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을 모두 떨쳐버리지 않으면 정말 신나서 즐길 수 없다.
애니메이션 만들면서도 혹은 그림 한 장을 그리면서도 얼마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지내왔던가. 내가 한 일에 대해 아무도 인정을 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누가 무슨 얘기를 하던 내가 신나고 즐거워 하는 일이 되어야만 그게 나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될 터.
사실 박사는 커녕 석사 문턱에도 못가봤지만 공부를 위한 공부는 사회적 지위를 올려주는 데 아주 중요하겠지만 내 마음, 영적인 부분의 깊이를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는 것으로 받아 들여진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마음을 걸고 있는 그물을 치워내는 일. 즐거워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다. 늘 반복적인 말을 해대는 내 스스로가 지겨울 때도 있지만 "작심삼일도 100번만 하면 일 년이 간다"던 친구의 말을 떠올려 본다.
...해럴드 W. 크로토 박사는 “노벨상을 받으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느냐”는 청중의 질문에 “물론 열심히 해야하지만, 중요하기 때문에 연구해선 안되고, 자신이 재미를 느끼는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나도 입버릇처럼 하는 말 중에 하나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즐겨라. 그렇지 않으면 이뤄낼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식. 잘한다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듣고 살았던가. 그런데 그 즐긴다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떤 일을 할 때 먹고 사는 일차적인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명예욕, 자존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을 모두 떨쳐버리지 않으면 정말 신나서 즐길 수 없다.
애니메이션 만들면서도 혹은 그림 한 장을 그리면서도 얼마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지내왔던가. 내가 한 일에 대해 아무도 인정을 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누가 무슨 얘기를 하던 내가 신나고 즐거워 하는 일이 되어야만 그게 나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될 터.
...그는 이어 “박사를 딴 다음엔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인 것 같아 아주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사실 박사는 커녕 석사 문턱에도 못가봤지만 공부를 위한 공부는 사회적 지위를 올려주는 데 아주 중요하겠지만 내 마음, 영적인 부분의 깊이를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는 것으로 받아 들여진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마음을 걸고 있는 그물을 치워내는 일. 즐거워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다. 늘 반복적인 말을 해대는 내 스스로가 지겨울 때도 있지만 "작심삼일도 100번만 하면 일 년이 간다"던 친구의 말을 떠올려 본다.
2004년 10월 4일 월요일
건너가도 될까요?
혹 늦지는 않았는지
지금 건너가면 날 받아주기는 할 건지
분명 내 눈엔 가능하다는 신호로 보이는데
또 다시 거절을 당할까봐 쉽게 발을 떼지도 못하네.
오래지 않아 지금의 망설임도 필요없는
순간이 오게 되면 더 후회를 하게 될까.
용기도 쉽게 나지 않고 포기도 쉽지 않을 때
그럴 때 난 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정말 건너가도 될까?
...촬영 현장
몇 달 전인가보다. 동생들과 저녁을 먹으러 가는 중에 보게 된 영화(혹은 TV 드라마?) 촬영 현장.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어서 뭔가 하고 들여다 보니 한창 촬영 중이다. 얼마 전에 한국 영화 "청연"을 장춘의 한 폐쇄된 비행기장을 보수해서 찍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청연"의 촬영 현장인 줄 알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장진영, 유민은 보이지 않더란 말이지.-_-; 중국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이 사람들도 뭘 촬영하고 있는지 모른다.
촬영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 스텝들은 지나가는 차들도 통제하고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느라고 정신이 없다. 문득 예전에 "ANYWAY"를 무대에 올리려고 준비하던 중에 라이브 액션 부분을 시청 앞에 가서 촬영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조명기와 반사판, 카메라 등이 왠지 낯설어 보이진 않는다.
촬영을 하는 내내 구경을 하고 싶었건만 녀석들과 함께 있는 바람에 나만 빠질 수가 없었다. '좀 더 볼 걸~'하는 후회가 나중에야...쩝~
장춘과 상해에 영화 제작소가 있는데 장춘은 이제 정부를 위한 홍보영화 등만 촬영한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 촬영하는 것도 아마 그런 차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춘이 상해보다 영화 쪽에서는 먼저 시작을 한 도시이건만 왜 지금은 아무런 힘도 못쓰고 있는지... 아마도 영화 산업이라는 게 자본과 불가분의 관계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상해는 국제 도시로써 외국의 자본이 수시로 투입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가만 보면 상해가 중국의 남북으로 볼 때 중간 정도 위치에 있긴 하다. 날씨도 장춘보다는 낫지. 장춘은 겨울에 관련 된 영화나 찍으면 모를까.-_- (가을 날씨도 내가 느낄 때는 좋은데...)
어쨌든, 한국에서건 외국에서건 영화, 드라마, 광고 등의 촬영 현장을 보는 건 참으로 흥미롭다. 장춘에서도 종종 영화 촬영 좀 하지 그래? 그냥, 내가 해버릴까 보다.-_-;;;
제법 그럴싸~ | 무슨 내용일까? |
촬영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 스텝들은 지나가는 차들도 통제하고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느라고 정신이 없다. 문득 예전에 "ANYWAY"를 무대에 올리려고 준비하던 중에 라이브 액션 부분을 시청 앞에 가서 촬영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조명기와 반사판, 카메라 등이 왠지 낯설어 보이진 않는다.
혹시 주인공?
장춘과 상해에 영화 제작소가 있는데 장춘은 이제 정부를 위한 홍보영화 등만 촬영한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 촬영하는 것도 아마 그런 차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춘이 상해보다 영화 쪽에서는 먼저 시작을 한 도시이건만 왜 지금은 아무런 힘도 못쓰고 있는지... 아마도 영화 산업이라는 게 자본과 불가분의 관계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상해는 국제 도시로써 외국의 자본이 수시로 투입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가만 보면 상해가 중국의 남북으로 볼 때 중간 정도 위치에 있긴 하다. 날씨도 장춘보다는 낫지. 장춘은 겨울에 관련 된 영화나 찍으면 모를까.-_- (가을 날씨도 내가 느낄 때는 좋은데...)
어쨌든, 한국에서건 외국에서건 영화, 드라마, 광고 등의 촬영 현장을 보는 건 참으로 흥미롭다. 장춘에서도 종종 영화 촬영 좀 하지 그래? 그냥, 내가 해버릴까 보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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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3일 일요일
2004 중국 국제 공자 문화제
TV를 보는 중에 우연히 보게 된 "2004 중국 국제 공자 문화제"
별 행사가 다 있다 싶은 마음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꽤 큰 행사다. 그리고 프로그램에 몽고, 대만 등지에서 온 무용단, 가수들이 모두 출연해 축제를 빛내주고 있다. 조선족(아마도 한국인은 아닌 것 같은데...)인지 한국인인지 나와서 한복을 곱게 입고 노래도 하고 공연도 한다. 중국에서는 '공맹사상'이나 '노장사상'이 역시 대접을 받는군.
중국 땅이 크고 인구가 많아서 어떤 행사든지 하기만 하면 몇 백만 명씩, 관광 수입도 몇 십 억(인민폐)씩 벌어들이는 모양이다. 아니지, 결국 행사는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의 문제이니... 공맹의 명성은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한국에서는 공자가 죽여야 나라가 사네 하는 책으로도 많은 이들이 덕을 봤을 텐데 공자의 사상에 담겨있는 진정한 뜻이나 제대로 곱씹고 살았음 좋겠다.
별 행사가 다 있다 싶은 마음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꽤 큰 행사다. 그리고 프로그램에 몽고, 대만 등지에서 온 무용단, 가수들이 모두 출연해 축제를 빛내주고 있다. 조선족(아마도 한국인은 아닌 것 같은데...)인지 한국인인지 나와서 한복을 곱게 입고 노래도 하고 공연도 한다. 중국에서는 '공맹사상'이나 '노장사상'이 역시 대접을 받는군.
'화성’보도 2004년 9월 28일자
“2004 중국 취푸(곡부) 국제 공자 문화제”와 “세계 여행일 중국 주회장 경축 행사”가 9월 26일 저녁 공자의 고향인 산동 취푸에서 성대하게 개막을 했다.
중국 방송네트워크 보도에 따르면, 전 전국 인민대표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왕한삔, 전국 인민대표 상임위원회 겸 홍콩 중화 총 상인협회 회장 쩡쉔쯔, 전국 정치협력 상임위원회 왕광치엔, 국가 여행국 부국장 구차오시, 산동성 인민대표 상임위원회 부주임 리밍신엔, 산동성 부성장 쑨쏘우푸, 산동성 정치협력 부주석 장민과 국가 관련 부분 책임자ㆍ산동성ㆍ지닝시ㆍ취푸시의 지도자와 국내외 공자ㆍ맹자ㆍ안회ㆍ증자(공맹안증)의 후예 등이 개막식에 참석하였다.
전 전국 인민대표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왕한삔이 “2004 중국 취푸 국제 공자 문화제”와 “세계 여행일 중국 주회장 경축 활동” 개막을 선포했다. 전국 정치협회 홍콩ㆍ마카오ㆍ타이완 화교위원회 부주임 겸 화시아(옛 중국이름) 문화 유대 프로젝트 조직위원회 부주임 장웨이차오가 국가 주석 후진타오이 징닝시에 건설하는 “중화문화 표지성”에 대해 하달한 정신을 전했다. 중국 연합국 교과문 조직 전국 위원회 사무총장 티엔시아오강은 연합국에 “공자상 표창” 설립에 대한 상황 보고를 했다.
이번 “국제 공자 문화제”는 국가 여행국과 산동성 인민정부의 주관이며 산동성 여행국과 지닝시 인민정부, 취부시 인민정부 집행으로 치뤄진다. 문화제는 중국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고 현대문화 발전으로 상호 결합하는 것을 주제로 하며, 대형 국제성 경축 행사로부터 문화, 여행, 학술교류, 경제무역 상담교섭을 하나로 융합하는 항목이다.
문화제 기간에 “공맹안증” 성현의 후예들의 정중한 연합 우호 대회와 세계 사상가 정상 포럼, 성지순례식, 명승고성 개성식 등의 행사가 거행 될 것이다. 더불어 원래의 민간 제사 행사로부터 정부 주관의 제사로 전환된 행사가 처음 거행 될 것이다. 공자묘의 공자 제사는 “취부 국제 공자 문화제”에서 가장 풍부한 특색이 있고 가장 문화적이며 감화력이 있는 행사이며, 국내외 문화계, 여행계에서 줄곧 주목을 하고 있는 문화여행의 항목이다. 올해의 공개 제사는 앞으로 공자묘에서 성대한 개묘 의식으로 거행 될 것이다. 수백 명으로 구성된 제사 의장대는 공자 제사 순례로 진행될 것이다.
취부시 시장 지앙청의 소개의 따르면, 이번 행사는 전국 14개 중요한 여행제 경축 행사 중 하나로 국제 공자 문화제가 되었으며, 이미 성공적인 20회의 행사를 치루었고 농후한 유교 문화 특색, 풍부하고 다채로운 여행 행사로써 독특한 풍격과 매력을 형성했고 국내외 폭넓은 영향을 주었고 유가 사상을 전승하고 동방문화의 무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동방의 성스러운 도시 취푸 역시 국내외 여행객들의 목적지가 되고 있다. 올해까지 취푸의 국내외 여행객은 360만 명에 다다르며 시의 여행 총 수입은 10억 원(인민폐)을 초과하고 있다.
출처 : http://www.hsm.com.cn/node2/node116/node1486/node1487/userobject6ai197153.html
“2004 중국 취푸(곡부) 국제 공자 문화제”와 “세계 여행일 중국 주회장 경축 행사”가 9월 26일 저녁 공자의 고향인 산동 취푸에서 성대하게 개막을 했다.
중국 방송네트워크 보도에 따르면, 전 전국 인민대표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왕한삔, 전국 인민대표 상임위원회 겸 홍콩 중화 총 상인협회 회장 쩡쉔쯔, 전국 정치협력 상임위원회 왕광치엔, 국가 여행국 부국장 구차오시, 산동성 인민대표 상임위원회 부주임 리밍신엔, 산동성 부성장 쑨쏘우푸, 산동성 정치협력 부주석 장민과 국가 관련 부분 책임자ㆍ산동성ㆍ지닝시ㆍ취푸시의 지도자와 국내외 공자ㆍ맹자ㆍ안회ㆍ증자(공맹안증)의 후예 등이 개막식에 참석하였다.
전 전국 인민대표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왕한삔이 “2004 중국 취푸 국제 공자 문화제”와 “세계 여행일 중국 주회장 경축 활동” 개막을 선포했다. 전국 정치협회 홍콩ㆍ마카오ㆍ타이완 화교위원회 부주임 겸 화시아(옛 중국이름) 문화 유대 프로젝트 조직위원회 부주임 장웨이차오가 국가 주석 후진타오이 징닝시에 건설하는 “중화문화 표지성”에 대해 하달한 정신을 전했다. 중국 연합국 교과문 조직 전국 위원회 사무총장 티엔시아오강은 연합국에 “공자상 표창” 설립에 대한 상황 보고를 했다.
이번 “국제 공자 문화제”는 국가 여행국과 산동성 인민정부의 주관이며 산동성 여행국과 지닝시 인민정부, 취부시 인민정부 집행으로 치뤄진다. 문화제는 중국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고 현대문화 발전으로 상호 결합하는 것을 주제로 하며, 대형 국제성 경축 행사로부터 문화, 여행, 학술교류, 경제무역 상담교섭을 하나로 융합하는 항목이다.
문화제 기간에 “공맹안증” 성현의 후예들의 정중한 연합 우호 대회와 세계 사상가 정상 포럼, 성지순례식, 명승고성 개성식 등의 행사가 거행 될 것이다. 더불어 원래의 민간 제사 행사로부터 정부 주관의 제사로 전환된 행사가 처음 거행 될 것이다. 공자묘의 공자 제사는 “취부 국제 공자 문화제”에서 가장 풍부한 특색이 있고 가장 문화적이며 감화력이 있는 행사이며, 국내외 문화계, 여행계에서 줄곧 주목을 하고 있는 문화여행의 항목이다. 올해의 공개 제사는 앞으로 공자묘에서 성대한 개묘 의식으로 거행 될 것이다. 수백 명으로 구성된 제사 의장대는 공자 제사 순례로 진행될 것이다.
취부시 시장 지앙청의 소개의 따르면, 이번 행사는 전국 14개 중요한 여행제 경축 행사 중 하나로 국제 공자 문화제가 되었으며, 이미 성공적인 20회의 행사를 치루었고 농후한 유교 문화 특색, 풍부하고 다채로운 여행 행사로써 독특한 풍격과 매력을 형성했고 국내외 폭넓은 영향을 주었고 유가 사상을 전승하고 동방문화의 무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동방의 성스러운 도시 취푸 역시 국내외 여행객들의 목적지가 되고 있다. 올해까지 취푸의 국내외 여행객은 360만 명에 다다르며 시의 여행 총 수입은 10억 원(인민폐)을 초과하고 있다.
출처 : http://www.hsm.com.cn/node2/node116/node1486/node1487/userobject6ai197153.html
2003년 행사 모습 1 | 2003년 행사 모습 2 |
중국 땅이 크고 인구가 많아서 어떤 행사든지 하기만 하면 몇 백만 명씩, 관광 수입도 몇 십 억(인민폐)씩 벌어들이는 모양이다. 아니지, 결국 행사는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의 문제이니... 공맹의 명성은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한국에서는 공자가 죽여야 나라가 사네 하는 책으로도 많은 이들이 덕을 봤을 텐데 공자의 사상에 담겨있는 진정한 뜻이나 제대로 곱씹고 살았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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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ife
단골 DVD가게에 들려...
중국에 와서 단골집이 몇 군데 생겼는데 그 중에 DVD상점 두 곳은 내가 자주 가는 집이다. 한 곳은 그 집이 돈을 좀 벌기 전부터 알게 되었고 내가 온 후에 돈 벌어서 가게를 옮기는 것도 보게 되었지. 다른 한 곳은 작년에 장춘 지리에 그리 익숙하지 않을 때 길림대 애니메이션과 이사장(?)이 한국에서 오신 분들을 모시고 갈 때 얼결에 따라가 알게 된 집이었다. 그곳이 중국 친구가 소개해 준 후에야 작년에 가봤던 집인 줄 알게 되었지만...
오늘 바람도 쐴 겸 볼 만한 영화가 나온 게 있나 해서 가봤다. 나중에 알게 된 그 집. 가면 늘 반갑게 맞이해 주는 두 명의 여자 복무원. 중국 사람들에 비해 DVD를 많이 사는 편이어서 그런지 더 잘해주는 편인 것 같기도 하고... 더구나 이번에 애니메이션 행사에 참석하러 오신 한국분들을 모시고 가서 한 몫 팔아줬으니...-_-; 어쨌든!
위처럼 생긴 곳에서 골라야 한다. 자주 가면 대충 어디서 고르면 되는지 알게 되지만 처음가면 일단 많은 양에 놀라기도(?) 하고 정품이 아닌, 좀 후줄그레하게 생긴 것에 대해 놀라기도 한다. 이런 공간의 한 3-4배 쯤이라고 하면 될까? 이 곳은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많은 양을 보유하고 있는 편이긴 하다. 장춘이 불법 DVD의 최대 시장이란 사실이 실감나는 곳. 질이 좋지 않은 것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충분히 볼만하지. Special Feature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원 가격(6원)의 세 배(18원)를 내면 거의 정품과 같은 걸 구할 수도 있다. 하긴 중국에서 파는 정품 DVD가격도 약 20원~40원 선이라고 들었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_-a
아~! 상해에 갔을 때 정품 DVD를 산 적이 있다. 상해 미술영화 제작소에 발행한 수묵 애니메이션 특별판. 가격이 38원이었던가? 정말 싸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가격을 주고 사기엔 너무 자주 사기 때문에 생활고가 생길 우려가 있으니 그냥 6원 짜리를 사는 편이다. 사실 정품 가격도 한국에 비하면 싼데... 변명같지 않은 변명을 하자면 오리지널 정품을 보기도 힘들다. 흠~
오늘은 'Man on Fire'를 비롯해 세 장을 샀다. 정말이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중국은 거의 천국이나 다름 없다. 아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정품 음반이 엄청나게 싸니까. 불법~불법~~ 하면서도 중국인들도 혹은 정부도 단속할 뾰족한 수가 없어 바라보고만 있는 듯 하고 이런 현실로 인해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나 영화 업계는 중국 DVD시장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고 들었다. 한국도 동영상으로 다운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 인데 종종 중국인들에게 한국은 불법판이 없지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참 난감하다.
또 며칠 즐거운 영화감상 시간을 갖겠군.-_-;;;;
오늘 바람도 쐴 겸 볼 만한 영화가 나온 게 있나 해서 가봤다. 나중에 알게 된 그 집. 가면 늘 반갑게 맞이해 주는 두 명의 여자 복무원. 중국 사람들에 비해 DVD를 많이 사는 편이어서 그런지 더 잘해주는 편인 것 같기도 하고... 더구나 이번에 애니메이션 행사에 참석하러 오신 한국분들을 모시고 가서 한 몫 팔아줬으니...-_-; 어쨌든!
좌측은 중국드라마 VHS | 책장쪽은 비교적 좋은 DVD |
위처럼 생긴 곳에서 골라야 한다. 자주 가면 대충 어디서 고르면 되는지 알게 되지만 처음가면 일단 많은 양에 놀라기도(?) 하고 정품이 아닌, 좀 후줄그레하게 생긴 것에 대해 놀라기도 한다. 이런 공간의 한 3-4배 쯤이라고 하면 될까? 이 곳은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많은 양을 보유하고 있는 편이긴 하다. 장춘이 불법 DVD의 최대 시장이란 사실이 실감나는 곳. 질이 좋지 않은 것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충분히 볼만하지. Special Feature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원 가격(6원)의 세 배(18원)를 내면 거의 정품과 같은 걸 구할 수도 있다. 하긴 중국에서 파는 정품 DVD가격도 약 20원~40원 선이라고 들었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_-a
아~! 상해에 갔을 때 정품 DVD를 산 적이 있다. 상해 미술영화 제작소에 발행한 수묵 애니메이션 특별판. 가격이 38원이었던가? 정말 싸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가격을 주고 사기엔 너무 자주 사기 때문에 생활고가 생길 우려가 있으니 그냥 6원 짜리를 사는 편이다. 사실 정품 가격도 한국에 비하면 싼데... 변명같지 않은 변명을 하자면 오리지널 정품을 보기도 힘들다. 흠~
아래 층은 음반 전문 | 벽에 장국영 브로마이드가... |
오늘은 'Man on Fire'를 비롯해 세 장을 샀다. 정말이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중국은 거의 천국이나 다름 없다. 아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정품 음반이 엄청나게 싸니까. 불법~불법~~ 하면서도 중국인들도 혹은 정부도 단속할 뾰족한 수가 없어 바라보고만 있는 듯 하고 이런 현실로 인해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나 영화 업계는 중국 DVD시장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고 들었다. 한국도 동영상으로 다운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 인데 종종 중국인들에게 한국은 불법판이 없지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참 난감하다.
또 며칠 즐거운 영화감상 시간을 갖겠군.-_-;;;;
2004년 10월 2일 토요일
[mov] 연인 / House of Flying Daggers / 十面埋伏
연인 / House of Flying Daggers / 十面埋伏
감독 : 장이모
출연 : 리우더화(리우), 진청우(진), 장쯔이(시아오메이)
스포일러 있습니다!!!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뭐 사랑이란 주제로 수많은 철학자, 종교가, 영화감독, 소설가, 화가 등등이 오랜 시간 동안 설왕설래 해도 막상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느끼는 것과 다른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때론 오랜 시간 탐구해온 통계처럼 진행되기도 한다. 사랑을 단한 마디로 정의 내린다는 것은 아마도 내 정체성에 대해서 딱 한마디로 잘라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난 20대 초반에 아는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이 내가 하는 사랑에 어느 정도 지침이 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돌이켜 본다. 그 분이 해주신 말은 “사랑은 이해”였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 집착이 생기고 원망이 생기고 상처가 생긴다는 것. 그 이해의 폭에는 그 어떤 것도 다 담을 수 있다고 믿었었고 지금도 상당부분 내겐 유효하다.
사랑은 시간이 오래되었다고 더 깊어지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짧다고 해서 깊이가 얕은 것도 아니다. 사실 이해라는 것도 이와 비슷하긴 하다. 간혹 오래 만나야 상대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데 어떤 경우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도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 일 수 있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결국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접촉한 시간의 장단에 의해 익어가는 사랑이 아니라 그 접촉할 때의 각자의 마음가짐(마음이 열어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리우와 시아오메이의 3년의 사랑(?)과 진과 시아오메이의 3일(?)의 사랑은 쉽게 속단할 수 있을까? 3년 동안이라도 서로 마음을 열지 못하고 만나왔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게 될 터. 사실 진과 시아오메이의 3일도 마음이 서로 통하고 이해하게 된 시간은 거의 하루 정도의 시간 뿐이지 않았던가. 과정을 무시할 순 없어도 마음이 열리고 닫히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지속해가는 노력, 그게 바로 이해라는 틀에서 생각해 봄 직 하다. 영화 속 세 사람의 사랑은 아마 그들만이 제대로 알 것이다. 다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본 나의 생각은 리우의 마지막 행동은 약간의 집착이 가미되었고 진의 사랑은 남성의 전형적(?)인 표현이 슬쩍 비춰진다. 그런 면에서 시아오메이의 고민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결과적으로 진 쪽으로 마음이 더 기울긴 했지만 그녀의 고민은 타당하다. 게다가 그 멋진 두 남성 사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겠는가.-0-;;;
내 관점으로 영화는 한국 인터넷에서 악평을 쏟아내는 것과 달리 꽤 괜찮게 봤다. ‘영웅’보다는 훨씬 좋다고 느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색감과 사운드였다. 색감이야 뭐 말할 것도 없겠지만 사운드는 정말 잘 입혀졌다. 사운드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등장인물들의 거친 숨소리였는데 난 이게 어떤 성적 표현의 방법으로 쓰인 게 아닌가 싶었다. 특히 진과 시아오메이가 관군에 쫓겨 도망갈 때 숨소리가 더 거칠고 크게 들렸는데 이 둘의 성적 묘사를 하지 않고도 숨소리만으로도 이들 둘의 관계가 점점 깊어진다는 상징적인 효과를 전달하지 않았나 싶다. 하긴 중국에서 찐한 성적 표현은 할 수 없었을 테니 이런 편법을 썼을 수도. 그런데 편법이건 아니건 그 효과는 영화 내내 상당한 효과를 전달해 준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장쯔이의 춤 씬. 장쯔이가 원래 무용을 전공했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진가가 나타난다. 그 유연한 몸놀림이라니.-0- TV에서 영화 촬영기가 좀 소개되었었는데 사실 그 춤 씬을 찍으면서 고생을 무척 많이 했다고 한다. 특히 손에 감은 천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등…하긴 영화는 편집의 예술 아닌가. 그렇게 찍고 찍은 가장 아름다운 장면들을 모아놨으니… 연주와 춤의 싱크도 끊어지지 않고 잘 연결되어서 참 멋지다는 생각 밖엔. 장쯔이의 장님 연기가 역시 장이모 영화 “행복한 날들/happy time/幸福时光”에 나온 둥제(董潔)의 연기와 비슷한 게 보였다. 이 둥제라는 배우도 장이모에게 발탁된 신인이었는데 장쯔이를 많이 닮았다. 기회가 되면 영화를 한 번 보시길.
영화 중에 가장 이해가 안되었던 장면은 갑자기 눈이 내린 장면이 아니었다. 칼에 맞고 한참을 쓰러져 있던 시아오메이가 리우와 진이 한참을 싸울 때는 죽은 듯 있더니 나중에 서로 결정적인 상황이 되니까 벌떡 일어나서 칼을 뽑겠다고 악을 쓰는 장면이었다. 아무리 상식적으로 이해를 하려고 해도 그것만큼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눈이 내리는 것이야 그들의 사랑싸움이 하늘을 움직일 정도 그랬다던가, 혹은 장이모의 욕심으로 설경에서 싸움을 하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이었겠지. 게다가 중국은 워낙에 넓으니 그런 기후변화 정도는 감안이 된다. 그런데 시아오메이의 벌떡 일어섬이란!!! 영화 보다가 내가 벌떡 일어날 지경이었다.-_-;;; 그것만 빼고는 이해를 충분히 하고도 남는 이야기였다.
잡설 하나; 한국에서 중국영화를 볼 때는 자막에 의존해서 보기 때문에 어떤 내용인지 자막 번역을 한 사람의 뜻대로 해석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중국에 와서 느낀 건데 중국어를 들으며 중국어 자막을 보며 영화를 보면 한국 자막 중에 상당부분 제대로 된 전달을 못하는 부분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중국 애들의 감수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한 지금이라면 내 경우에 ‘연인’의 경우에 내용도 그렇게 형편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 시작 전에 알려주는 큰 역사의 흐름은 삼각관계를 만들기 위한 장치였을 뿐(그러니 마지막 관군이 비도문을 포위해 들어갈 때도 전투 씬이 등장하지 않는다.)이고 장이모가 TV인터뷰에서도 말했듯이 무협형식을 빌린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보면 난 충분히 이해를 하고 몰입을 할 수 있었다.(절대 중국어 좀 한다고 잘난 체 하는 게 아님.-_-;;;) 아마 영어를 좀 하는 분들도 영어권 영화를 원어로 보려고 하는 이유 중에 이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잡설 둘; 장이모가 상업적으로 돌아선 두 번째 영화(내 기억으론) ‘연인’. ‘영웅’ 다음으로 찍은 영화인데 중국 내에서 관심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제작비를 빼고 약 30억 원을 들여서 중국 CCTV에서 ‘연인’의 성공을 기원하는 축하 쇼를 했으니 말이다. 이런 경우는 중국 정부(공산당)의 지지가 있지 않고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TV에서 그 쇼를 보는데 중국의 유명한 가수들, 연기자들이 모두 출연해 영화의 성공을 기원했다. 게다가 이 영화는 불법 DVD가 나오는데도 시간이 한 참 걸렸다. 중국 정부에서 단속을 열심히 했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장이모 띄워주기 행사를 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아테네 올림픽 폐막식 8분 중국편’과 ‘북경 올림픽 개폐막식’의 감독 장이모를 세계에 알리려고 했던 수단이 아니었을까 싶다. 장이모는 지금 영화계에서도 중국을 대표하는 거장 감독이니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그에게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중국 영화계(애니메이션 포함)가 뛰어넘어야 할 벽임을 감안하면 일종의 희망을 주는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아, 그런데 제목이 '연인'이 뭐냐고-_-; '십면매복'이라고 하면 이상한가? '연인'은 너무 직설적이잖아. '십면매복'은 뭔가 2-3중의 복선이 있는 것 같고...나만 그런가?-_-a
2004년 10월 1일 금요일
10월 1일 중국 국경절과 신장 소수민족
국경절이라고 중국인들은 다들 7일의 휴가를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고 즐거움에 들떠있는 듯 싶다. TV에서도 항일전쟁, 국민당과 공산당과의 전쟁에 관련된 영화나 혹은 인민들의 정서를 위한 영화, 쇼프로그램 등이 아침부터 방영이 되고 있다. 마치 한국 추석 때 영화며 각종 특집 프로그램을 해주는 것과 비슷하다. 부시시 눈을 뜨고 TV 채널을 여기 저기 돌리다가 CCTV3에서 공연 비슷한 걸 한다. 복장이 독특해 주의해서 봤다. 제목은 "중국 공산당학교 '신장반' 성립 50주년 기념행사"라고 하네.
신장이나 시장(=티벳)은 소수민족 자치구인데 독립을 원하는 민족으로도 유명하다. 문득 TV를 보면서 아이러니하다고 느낀 것은 한 편으론 독립을 이야기 하고 한편으론 중국 공산당에 축복의 메시지를 보내는 이런 공연을 한다는 것. 물론 강경책이건 회유책이건 지도자들이 다 알아서 결정할 일이지만 국경절에 나라가 없이 중국의 한 소수민족으로써 중국 국경절을 축하한다니 마음이 좀 그렇다.
사실 지금 고구려 역사 문제를 들먹이는 것도 이런저런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조선족 자치구를 중국의 한 역사로 흡입하려고 하는 욕심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중국친구들에겐 나도 "국경절 축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우리들 사이엔 국경절은 단지 하나의 긴 휴일(혹은 명절?)이라는 것. 어쨌든 TV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신장의 선남선녀들을 보며 역사의 아이러니를 생각해보게 된다. 어떤 중국 작가가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사람은 역사를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역사는 사람을 바꾼다." 물론 역사를 써내려가는 건 사람이겠지만 그 역사 앞에 쉽게 변해가는 것 또한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일정부분 동의한다.
뭐...어쨌든 국경절 7일 휴가가 시작되었으니 중국은 여기저기 고향가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바글거리겠다. 난 조용히 집에서 영화나~^^
신장은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이긴 하다. 특히 지금 중국의 대표(?)적 음식으로 알려진 양로우촬(양꼬치 고기)이 신장의 전통 음식 아니던가. 여기 장춘에서 가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고 하지만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
東투르키스탄 : 중국의 신장위구르(新疆維吾爾)자치구의 별칭이다.
'동(東) 투르키스탄'의 투르키스탄(Turkistan)은 페르시아어로 투르크(Turk)와 이스탄(istan : 지역)이 합쳐진 말로 원래 투르크 족이 사는 지역을 뜻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옛 오스만 제국의 투르크 족과 볼가 지역의 투르크-타타르 민족들을 비롯한 일부투르크 족의 거주지역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으며, 반대로 타지크 인들처럼 투르크 족이 아닌 민족들의 거주지역들이 포함되기도 한다.
총면적 260만㎢가 넘는 투르키스탄 전역은 파미르 고원과 톈산(天山)산맥을 사이에 두고 서(西) 투르키스탄과 동 투르키스탄으로 나뉜다.
서 투르키스탄은 지금의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및 카자흐스탄 남부지역을 포함한다. 카자흐스탄 지역을 제외한 서 투르키스탄은 1920년대 중반 이후 한동안 한 행정구로 소비에트 중앙 아시아로 불렸다.
동 투르키스탄은 청나라 때 회부(回部), 신장(新疆)성이 되었다가 지금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되었다. 위구르 족의 99.8%가 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거주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주변의 우즈베키스탄, 타지크스탄,키르기스스탄 등과 연대하여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의 수립을 목표로 하는 폭력적인 분리주의 운동이 활발해 중국 중앙정부의 심각한 두통거리가 되고 있다.
동 투르키스탄 분리주의 운동은 중국 내 다른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 운동에 비해 대단히 폭력적이다. 위구르 지역의 분리주의 운동이 티베트와 비교하여 국제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의식적으로 폭력에 호소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신장 위구르에는 동투르키스탄 망명정부, UNRF(연합민족혁명전선), 동 투르키스탄 이슬람 당을 중심으로 분리·독립 운동을 전개되고 있다.
대표적 지도자로 아이사가 꼽힌다. 그는 이샤유수프 알프테킨의 뒤를 이어 현재 동 투르키스탄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다. 위구르의 분리·독립운동의 배경에는 대다수의 위구르인들이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있는 종교적인 이유가 깔려 있다.
위구르인들의 분리·독립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하여, 주변의 우즈베키스탄, 타지크스탄, 키르기스스탄과 연대한 '투르크인의 땅'인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의 수립이다.
중국 북서쪽 끝에 있는 성급(省級) 자치구.
주도(主都)는 우루무치[烏魯木齊].
면적 : 164만 6900 ㎢, 인구 : 약 1,500만 (1992).
톈산[天山]산맥이 자치구의 중부 지역을 동서로 뻗어내리면서 남북으로 양분하는데, 남부 신장의 중앙 지역에는 50㎢ 가 넘는 타림[塔里木] 분지가 광활하게 펼쳐지고 톈산·쿤룬[崑崙]·아얼진[阿爾金]·카라코람 등 여러 산맥들이 둘러싸고 있다.
분지의 중앙에는 타클라마칸 사막이 전개되어 남서에서 북동 방향으로 경사를 이루고, 가장 낮은 지대(해발고도 760 m)에는 뤄부포호[羅布泊湖]가 있다. 톈산산맥 북쪽, 알타이[阿爾泰]산맥 남쪽 사이에 있는 북부 신장의 중심부는 중가리아[準1爾] 분지이며 사막과 함께 끝없는 초원이 펼쳐진다.
평균 해발고도 3,000 m가 넘는 톈산산맥의 봉우리들 사이에는 산림과 수초(水草)가 무성한데, 특히 투루판[吐魯蕃] 분지는 해면하(海面下) 154 m에 해당하며 중국에서 가장 낮은 지대이다. 최대 하천은 타림분지의 타림강으로 내륙 하천인데, 뤄부포호(湖)로 흘러든다. 그 밖의 하천도 대부분 주변 산지에서 눈이 녹아 흐르는 물을 수원(水源)으로 하는 내륙 하천이다.
호수 역시 거의가 함수호인데, 자치구의 북쪽 끝에 있는 이르티스[額爾齊斯]강은 오비강의 상류에 해당하며 유일한 외양하천(外洋河川)이다. 기후는 전형적인 대륙성기후이며, 북부 신장의 강수량은 150∼350 mm, 남부 신장은 100 mm 이하이다. 기온의 연교차는 30 ℃가 넘는다.
한민족(漢民族)이 옛부터 서역이라고 부른 지역의 일부로,현지어로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사막' 이라는 뜻의 타클라마칸사막을 중심으로 펼쳐진 분지와 오아시스 그리고 초원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지역이며, 동서교통의 요충지였다. 타클라마칸사막 주변에는 도시국가들이 늘어섰으며, 물과 목초를 찾아온 유목 민족들이 나라를 세우고 이 곳을 지배하였다.
청(淸)나라 때인 1884년 이후 신장성이라고 하였으나 1955년부터 위구르족의 자치구가 되었다. 지금도 10개가 넘는 소수 민족이 살고 있는데,전인구의 2/3는 위구르족이며 한족과 카자흐족이 그 다음을 차지하고, 그 밖에 후이족[回族]· 키르기스족· 몽골족·타지크족·우즈베크족·타타르족·시보족·다호르족 등도 자치주나 자치현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인민공화국이 들어서 서 이 지역의 엄청난 지하자원 때문이라도 중국정부에서는 한족을 이주시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 지금은 한족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광활한 초원으로 인해 목축업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주요 가축은 면양·염소·말·소·낙타 등이며, 개간 가능한 토지는 1,200만 ha를 상회하므로 농업 개발의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문제는 용수인데 투루판·하미[哈密] 등지에서는 운하라고 할 만큼 규모가 큰 지하수로(地下水路)로 공급해왔다. 중국 정권 수립 후에는 중국군 생산건설병단(공병대)이 투입되어 마나스[瑪納斯]아커쑤[阿克蘇] 등지에 인공수로를 건설, 농지를 확장하였다.
주요 농작물은 밀·옥수수·벼·목화·과일 등인데, 특히 목화 재배의 발전은 괄목할 만하다. 이 밖에도 타림 분지 남쪽의 허톈[和]사처[莎車] 등지에서 양잠이 성하며, 톈산이나 알타이 등의 고산지대에는 산림도 무성하다. 광물자원이 풍부하고, 특히 석유의 매장량이 많다.
유전은 커라마이[克拉瑪依]에 있고, 정유소는 두산쯔[獨山子]에 있다. 또한 우루무치 부근에 류다오완[六道灣]탄전이 있으며, 이 밖에 철·망간·유색금속·운모·중정석·황산나트륨 ·석고·황·암염의 매장량도 많다.
중국정권수립 후 비로소 근대 공업시설이 건설되었으며, 특히 면·모 방직공업 발전이 현저하다. 그 밖에 철강·기계·화학·석유·식품 등의 공업도 영위되며, 전통적 공업으로는 융단이 유명하다.
교통은 란신철도[蘭新鐵道]가 통과하고 간쑤[甘肅]·칭하이[靑海]·네이멍구[內蒙古]·티베트로 연결되는 자동차도로도 건설되었으며, 항공로도 여러 지방과 이어진다.
기후는 여름과 겨울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덥거나 추운데, 여름에는 40℃까지 올라가고, 겨울에는 영하 10℃까지 떨어지기 때문에 거주하기에는 적당치 못한 지역이다
우루무치 烏魯木齊(오노목제) 인구 약 116만(1990). 톈산[天山]산맥의 북쪽 기슭, 해발고도 915m의 고지에 있으며 우루무치강변에 위치한 데서 연유한 지명으로 우루무치는 ‘투쟁’이란 뜻이다. 또 ‘광대한 목초지’라는 뜻이라고도 하는데, 일찍이 중가르부와 후이족[回族]이 격렬한 싸움을 벌였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7세기 무렵 당나라의 위세가 이곳에 미쳐 북정도호부(北庭都護府)를 설치하여 톈산북로[天山北路]를 관할하면서 정주(庭州)라고 하였다. 그 후 오랫동안 몽골 ·투르크계(系) 등 여러 유목민족의 쟁탈지가 되었으나, 18세기 중엽 무렵 청나라의 건륭제(乾隆帝)가 중가르부를 평정하고 북쪽에 새로이 한성(漢城)을 축조하여 디화[迪化]라고 하였다.
1881년 러시아와의 조약으로 개시장(開市場)이 되고, 한때 러시아의 세력권에 들기도 하였다. 1882년 신장성이 설치되자 그 성도(省都)가 되었고, 민국시대에는 디화현[迪化縣]이라고 하였으나 중공정권 수립 후, 디화라는 지명이 계몽 ·교화 등의 어의(語義), 즉 이민족을 통치한다는 뜻이 내포되었다고 해서 원지명인 우루무치로 다시 개칭하였다.
내륙분지의 초원기후로 목초가 많아 예로부터 목축이 이루어져 양모 ·피혁 ·잡화 등의 거래가 성하였으나, 댐이 축조되고 관개수로가 정비되면서 농작물의 수확이 급증하고 있다. 부근에서 석유 ·석탄 ·철광 ·구리광이 발굴되고, 자원개발과 함께 전력 ·면방직 ·시멘트 ·화학 ·제분 ·피혁 ·주철 ·강철 ·자동차수리 공업 등이 발달하였다. 자동차도로의 중심지이며, 란신철도[蘭新線:蘭州∼우루무치]로 룽하이선[짱海線]과 연결되어 중국 동안에 있는 롄윈항[連雲港]에 이를 수 있다. S.헤딘의 중앙아시아 탐험대의 본부가 설치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신장의과대학이 설립되어 신장 지구의 문화 ·경제 ·교통 ·군사의 중심지를 이룬다.
우루무치는 新疆 維吾爾 自治區의 중심으로 그네들 말로 "아름다운 목장"이라는 뜻의 도시이다. 남쪽으로는 타클라마칸 사막과 곤륜(崑崙/Kunlun)산맥에 닿아 있 고, 서쪽은 실크로드의 오아시스였던 伊寧(Yining)을 지나 구소련과 파키스탄으 로 이어진다. 1992년에 실크로드 철도가 개통이 되어 국제열차가 알마아타 타슈켄트까지 이어져 교통이 매우 편리해 졌다.
중국내 자치구중 최대의 면적과 인구(109만)를 가진 신강 위구르자치구의 수도로서 남쪽으로는 타클라마칸 사막과 곤륜산맥(昆崙山脈)과 닿아 있고, 서쪽은 실크로드 오아시스의 요지인 이령(伊寧)을 지나 구 소련·파키스탄으로 이어진다. 2000여 년 동안 이 지역은 양과 소떼들을 몰고 다니는 많은 소수 민족들이 모여 살았던 초원 지대였으며 위그르족 · 카자흐족· 한족· 회족· 몽고족· 끼르끼즈족· 따따르족· 따지크족· 시버족· 우즈베키족· 만족· 따고르족· 러시아족 등 13개 민족이 살고 있다. 우루무치는 몽고어로 '아름다운 목장'이라는 뜻이나 지금은 초원은 사라지고 현대화·개방화의 물결에 의해 고층빌딩이 들어서면서 중국의 여타 개방 도시처럼 도시화되고 있다. 천산의 북쪽 기슭에 위치한 우룸치는 옛 '실크로드'의 길목이며 중국 서북변강의 중요 도시이다. 해발고도 900m, 세계의 최내륙 도시이다.
타림분지 (Tarim Basin)면적 약 70만km2, 남북 길이 500km, 동서 길이 1,500km, 평균 해발고도는 800∼1,200m이다. 서쪽은 파미르고원, 북쪽은 톈산[天山]산맥, 남쪽은 쿤룬[崑崙]산맥에 둘러싸여 있다.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경사를 이룬다. 주위의 산맥이 모두 높고 산꼭대기는 만년설에 덮여 있기 때문에 유출하는 수량이 많아 타림(물을 모으는 곳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산기슭에는 하천이 퇴적시킨 선상지가 늘어서 있으며 선상지의 선단(扇端)은 오아시스 지대이다. 분지의 중앙에 있는 타클라마칸 사막은 선사시대의 내륙호가 말라붙은 것이다. 오아시스 지대에서는 예로부터 농업이 발달하여 도시국가의 성립을 촉진하였으며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분지의 북쪽과 남쪽 가장자리에는 실크로드가 뻗어 있어 동양과 서양 문명의 교류에 공헌을 하였으며, 부근에서 유전이 발견되었다.
파미르고원 (Pamir Plat.)파미르는 옛 페르시아말로 ‘미트라(태양)신의 자리’를 뜻하는 ‘Pa-imihr’가 어원이라고 하나 이설(異說)도 있다. 해발고도 5,000m가 넘는 10여 갈래의 복잡한 주행(走行)을 보이는 산맥들로 구성되어 있는 파미르 지방의 대부분은 타지키스탄 고르노바다흐샨주에 속하며, 동쪽은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 남 ·서쪽은 아프가니스탄에 속한다.
산계(山系)는 3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지는데, 동(東)파미르는 카슈가르파미르(중국 영토)를 가리키며, 최고봉은 쿵구르봉(7,719m)이다. 북서에서 남동방향으로 호(孤)를 그리며 남쪽의 타시쿠르간 산계로 이어진다. 심한 개석이 진행되고 있으나 이 고원은 기후가 한랭한 데다 건조하기 때문에 식생이 빈약하고 관목상(灌木狀)의 텔레스켄이 주민의 유일한 식물질 연료이다. 중부 파미르(지질학자 무르자에프는 이곳을 좁은 뜻의 파미르라고 부른다)는 파미르 가운데에서도 가장 새로운 지질시대에 융기하였기 때문에 산꼭대기 부근이나 하곡(河谷)의 중간 등에서도 평탄한 면이 잘 남아 있다. 그리고 서(西)파미르는 자알라이산맥(트랜스알라이라고도 하며 이곳에 7,134m의 레닌봉이 있다) ·표트르1세산맥 ·아카데미아산맥(교차점에 7,495m의 코뮤니즘봉이 있다), 그 밖에 여러 산맥으로 구성되며 심한 개석으로 웅대한 모습을 보인다.
파미르 산계는 여러 줄기의 향사축(向斜軸) ·배사축(背斜軸)을 가지고 있는데 배사부는 편마암 ·고생층(古生層:헤르시니아계가 많다), 이에 관입(貫入)한 심성암류(深成岩流)로 이루어져 있으며, 향사부에는 중생층을 중심으로 하는 퇴적암이 나타나고 있다. 융기운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파미르 주변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지진대(地震帶)이다.
파미르 지방의 기후는 심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서파미르의 해발고도 4,000m 부근에서는 연평균 강수량이 1,000mm나 되지만 골짜기는 건조하다. 식생의 수직적인 변화가 분명하며 서쪽으로 열려 있는 하곡에서는 쑥 등이 식생하는 반사막(半砂漠), 하천 연안이나 선상지(扇狀地)에서는 규모는 작지만 버드나무 ·자작나무 숲을 볼 수 있다. 2,600m에서는 스텝, 3,800m에서는 고산식물의 꽃밭, 4,000m에서는 설선(雪線)이 나타난다. 동파미르에서는 5,200m에서 설선이 나타나고, 빙하는 타지키스탄 영토에만 해도 1,085줄기가 있다. 파미르에서 사는 동물은 양 ·늑대 ·설치류(齧齒類) ·산까마귀 ·독수리 등이고 서파미르에는 불곰 ·표범류도 있다.
뤄부포호 羅布泊(나포박)면적 3,006㎢, 호수면 해발 768km이다. 몽골어로는 ‘로프노르(Lop Nor:많은 강물이 흘러드는 호수)’라고 한다.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 타림분지와 타클라마칸사막의 동쪽에 위치한다. 한(漢)나라 때는 푸창하이[蒲昌海]·옌저[鹽澤] 등으로 불렀으며, 그 물이 땅 밑으로 흘러 황허강[黃河]을 이룬다고 여겼다.
19세기 말 이후에는 스벤 헤딘(Sven Hedin) 등의 탐험 결과, 이 호수 북쪽으로 흘러드는 타림강·쿵췌허강[孔雀河]의 물길 변화로, 호수의 위치와 모양이 달라진다는 ‘방황하는 호수’설(說)이 대두하였다. 그러나 1980∼1981년의 중국 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지금도 증가하는 풍식작용(風蝕作用)과 염분으로 덥히는 현상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큰 염호(鹽湖)였으나 상류지대의 하도(河道) 변화와 관개인수로공사 때문에 점차 축소된 것으로 추정되며, 1964년에 완전히 말라 없어져 오늘날에는 염탄(鹽灘)으로 덮인 지각(地殼)이 2만 480㎢에 이르는 사막으로 변해 있다. 부근에는 중국의 주요 핵연구시설과 실험장이 있으며, 1964년 이후 중국의 지하 및 대기 핵폭발 실험이 간헐적으로 있었다.
타림강 (Tarim R.)길이 2,179km. 쿤룬[崑崙]산맥에서 발원하는 허톈강[和蚊河]과 예얼창강[葉爾羌河], 톈산[天山] 산맥에서 발원하는 카스거얼강[喀什恩爾河], 퉈스한강[托什罕河] 등 4강이 퉈리커[托里克] 부근에서 합류, 타림강이 된 다음 동쪽으로 흘러 뤄부포호[羅布泊湖]로 유입한다. 중국 최대의 내륙하천으로 건조지역을 흐르기 때문에 물길이 말라버리거나 바뀌는 일이 잦다.
신강자치구박물관 (新疆自治區博物館)신강자치구 박물관은 시가지 서북쪽에 있다. 홍산빈관에서 7번버스를 타고 곧바로 가면 된다. 박물관은 전형적인 웨이우얼족 건축형식으로 지어져 있으며 3개의 전시지역으로 나뉘어있다.
[신강역사문물 전시실] - 이곳에는 실크, 도기, 토용, 화폐, 병기, 문서, 서적등 5만여점의 진귀한 물건이 전시되어 있다. 한나라와 당나라 때 실크의 조화로운 무늬가 그대로 남아있다. 그 가운데 '궈수어'라는 당나라 때의 실크로드 통행증이 있다. 이 '궈수어'는 본인의 신분뿐 아니라 동행인의 숫자, 특징, 여행목적, 여행에 따른 이익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궈수어'에는 통과하는 지역이 씌여있어서, 당시 실크로드이 주요 경로를 파악할 수 있으며, 학술적으로 많은 도움을 준다.
[미이라 전시실] - 이곳에는 고대 미이라가 전시되어 있어서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약10여구의 미이라가 있는데, 그중 '하미'에서 출토된 '잠자는 미인'이 유명하다. 이것은 약3000년전의 것으로서 중국에서 자장오래되고 잘 보존된 고대 미이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당나라 초기의 '까오창'왕국의 대장군 '쟝송'의 미이라도 있다. 이것은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군에서 출토된 것이다. 또한 어른, 어린아이, 황인종 미이라뿐 아니라, 코가 큰 아리안인등의 미이라가 있는 것을 미루어 보면, 옛날에는 신강지역에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민족 민속 전시실] - 신강에는 웨이우얼족, 하사커족, 커얼커족, 한족, 회족, 타지커족, 우즈베커족등 10여개 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다. 전시실에는 10개의 대표적인 민족을 선정, 실물과 사진등이 전시되어 있다. 각 민족의 의복, 주거, 관혼상제, 축제일, 오락, 음식, 종교등 각 방면의 풍속을 볼 수 있다. 내용이 비교적 풍부하여, 다 보려면 2-3시간을 잡아야한다.
투루판(吐魯番/Tu Lu Fan) 신강 위구르 자치구의 동쪽 천산 산맥의 남쪽 산록에 있다. 吐魯番이란, 위구 르어로 ‘ 패인 땅 ’이라는 의미이다. 투루판 분지는 중국에서 표고가 가장 낮은 지역으로 그 중에서도 바닥에 해당하는 애정호의 수면은 면보다 154m가 낮다. 뒤로는 흰 만년설을 두른 천산의 주봉을 볼 수 있다.
* 신강 여행시 도시간의 이동은 버스를 이용하기 바란다. 그래야만 도중에 지나치는 소도시를 통해 그들의 진정한 문화를 접할 수 있다.
투루판은 신강위구르 자치구의 일부분으로, 1975년 7월 15일, 국무원의 비준을 거쳐 성립된 도시이다. 신강과 대륙간의 교통의 요충지로, 서한(西漢)시대부터 오랫동안 서역 지방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실크로드 북행코스의 중요 도시로 해수면 보다 280m가 낮아 중국에서 가장 낮은 곳이며, 세계에서는 이스라엘의 사해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곳이다. 그래서 아시아의 우물'이라고 일컬을 만큼 지리학상으로도 유명하다.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중국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연간 최고 기온은 47.5℃, 지표의 온도는 70℃나 된다. 그러나 사막기후의 특성상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해가 지면 급격히 기온이 내려가 15℃ 정도가 된다. 11월에서 3월경까지는 낮에는 23∼24℃ 정도까지 올라가지만, 야간에는 영하 17℃까지 내려가므로 이곳을 여행하려면 충분한 준비를 하여야 한다.
카스카르(喀什)
카스카르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실크로드의 대표적인 도시로, 이국적인 풍물 때문에 실크로드 여행에서 빼놇을 수 없는 도시중의 하나이다. 카스카르에서는 유창한 중국어는 여행에 손해. 그들의 중국에 대한 반감은 신강 어느도시 보다도 강하다. 가능한 한 외국인임을 나타내는 것이 편하고 안전하다. ( 물론 신강 다른 도시에서도 외국인인 것이 유리하다.)
카스는 신강 위구르족 자치구의 극서쪽, 구소련과의 국경선으로부터 약 164㎞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로서 캬슈가르(Kashgar)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동서 문물의 접촉지, 동서 교역의 시장으로 번영하였으며, BC 2세기에 한(漢)나라가 서역(西域)과 교섭을 가졌을 때는 도시 국가를 형성하였는데, 한나라 때는 소륵국(疏勒國)이라고 하였다. 당(唐)나라의 지배를 거쳐 11세기부터 투르크 이슬람의 영향을 받았고, 다시 차가타이 한국(汗國)·티무르왕조의 지배를 받다가, 티무르 왕조 몰락 후인 16세기에 카슈가르 한국이 성립되자 그 수도가 되었다. 청(淸)나라 때에는 반청(反淸) 독립운동을 일으켰다. 1860년 러·청조약으로 시장이 개방되자 러시아인의 왕래가 많아지고, 그 밖에 인도인·아프가니스탄인 등이 혼거하면서 교역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실크로드가 쇠퇴한 후 이곳도 쇠퇴의 길을 걸어 현재는 인구 20만의 소도시로 전락했지만, 실크로드의 역사를 증언하는 도시이다. 현재도 인도·러시아 연방의 교역 중계지로서 곡물·목화·생사·과일 및 가축·피혁제품 등을 집산한다. 주민은 위구르족·한족(漢族) 외에 위의 종족들이 혼주하고 있다. 이국적인 풍물 때문에 아직까지는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중국에서 유일하게 여자들이 베일을 쓰고 다니는 도시이기도 하다.
쿠처(庫車/Ku Che)
쿠쳐는 가볼만한 곳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시내에서 거리가 멀기 때문에 7~8월 성수기를 제외하고는 차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가격도 200~300원 수준.
신강위구르자치구박물관1953년에 세워진 서북로에 위치한 박물관으로 외관은 위구르족 건축 풍격을 갖추고 있다. 역사문물, 혁명 문물, 민족문물 등의 5만여 물품들을 관람할 수 있다. 현재는 일반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신강소수민족진열관, 신강역사문물진열관, 신강고시진열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어 관람해야 한다.
천지
신강의 이름난 곳으로 우루무치와 90km 상거한 부강현경내의 천산 버거다봉 북쪽 기슭에 위치해 있다. 해발 1910m의 길이는 3.3㎞이고, 넓이는 평균 1㎞이며, 최고 깊이는 105m이다. 설산의 빙설이 녹아서 합류된 것이다. 천지 풍경구는 관광여건이 보완되어 산간도로가 호수가에까지 개통되어서 관광하기 편하고 정자, 수상정자, 레스토랑이 있어 관광객들에게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천지 주변에는 침엽수림이 자라는데 박격달봉의 만년설과 어울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홍산
홍산은 여러 해를 거쳐 울창해진 결과 홍산공원이 되었다. 근래에는 청대 민족 영웅인 칙서의 돌조각상과 홍산의 녹화를 기념하는 조각이 있다. 홍산 정상의 "원조루"에 오르면 시내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시내 중심에 위치한 홍산은 산세가 동서쪽으로 향해 있고, 해발 1391m의 봉우리를 자랑한다. "호두산', 홍산취'라고도 불리우고 있다.
남산목장(南山牧場)
우루무치에서 남쪽으로 75㎞ 어진 곳에 있는 방목 지구로서, 맑고 푸른 하늘, 비단결 같은 초원, 춤추듯 떨어지는 천산폭포가 그림과 같은 풍경을 제공한다. 이 지역은 카자흐족이 모여 살고 있는데, 그들이 사는 파오에서 묵을 수 있고 말을 타는 재미도 누릴 수 있다.
교하고성
서쪽 10㎞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유적지로 실크로드의 길목이다. 두 갈래의 강이 합류하는 곳이라서 교하고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실크로드의 교통의 요지였다. 전쟁으로 훼손당했지만 지금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도시라고 평가받고 있다. 고성을 발굴하는 도중 지하 사원과 차사국의 귀족무덤의 바다 진주, 사리 등의 진귀한 물품들이 출토되었다.
고창고성
사각형모양으로 흙벽돌로 축조된 고창고성은 1세기의 고창벽이 13세기에 전쟁으로 훼손 되어 사원과 궁전 유적이외에는 형태를 거의 알아 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르 렀다.
소공탑
동쪽 2㎞ 지점에 있는 목납촌에 있는 신강 에서 제일 오래된 고탑이다. 청대 명장인 액민화탁이 짓기 시작해 액민탑이라고도 불린다. 액민화탁이 죽고 나자 그 아들이 완공시켰다. 청회색의 원형탑으로 내부에는 나선형 층계 있다.
백자극리극천불동
화염산 아래에 위치해 있다. 원래는 83개의 동굴이 있었지만 현재 57개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천불동은 현존하는 석굴 중 가장 벽화가 많기로 알려져 있다. 위구르어로 '아름답게 장식된 집'이라는 뜻의 천불동은 너무 많이 손상되어 현재는 초라한 석비들만 남아 있을 뿐이다.
아사탑나고묘
고창고성 북쪽에 있는 위치한 이 외국 탐험대에 의해 모습을 드러낸 고분이다. 고창국과 당나라 귀족들의 공동묘지다. 아쓰타나의 뜻은 위구르어로, '영원히 잠든 묘지' 또는 '휴식의 장소'라는 뜻이다. 진귀한 물건들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가장 진귀한 것은 속눈썹과 안의 눈동자까지 볼 수 있는 미이라다.
파지키리크천불동
낭떠러지 굴착과 흙벽돌을 쌓는 건축형식을 사용했다. 서역의 각이한 민족특징을 반영한 벽화는 상당수가 파손되었지만 남아있는 양도 꽤 된다. 고창지역에서 내용이 풍부하고 보전이 비교적 잘된 석굴로 알려져 있다.
화염산(火焰山)
고창고성 뒤로 약 500m 정도의 산으로 약 100㎞에 걸쳐 길게 이어진다. 위구르인은 이 산을 '붉은 산' 이라고 부 는데, 이는 산이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햇빛을 받아 반사하면 마치 불타는 듯한 모양이어서 이런 이름을 붙었다고 한다. 실제로 한여름에는 표면 온도가 80℃를 넘기 때문에 접근하기조차 어렵다.
포도구(葡萄溝) 투루판이 포도의 도시라고 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곳으로 화염산의 서쪽에 있는 수목원으로 500m 정도 폭으로 길게 약 8㎞ 쯤 이어지는 계곡의 수로를 따라 나무숲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나는 포도는 특히 맛이 좋고 달기로 유명하다. 약 200여 종의 포도가 재배되고 있으며, 포도 이외에는 여러 가지 과일들을 재배하고 있다.
아이드카모스크 사원(艾提朶爾淸眞寺)
1442년에 세워진 신강 위구르족 자치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이슬람 사원으로, 과거에는 이슬람교 대학으로 사용되었다. 정문은 12m이고, 이 양 옆으로 있는 18m 첨탑은 이슬람 건축 양식을 보인다. 그 안에는 아름다운 조각 무늬로 장식된 홀이 있어 이곳에서 예배드리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평일에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고, 하루 다섯 번씩의 기도시간에 몇 명 정도만 찾아와 기도한다.
향비묘(香妃墓) 향비는 17세기경 이 지역의 권력자인 아바흐호자의 손녀로 청나라 건룡제의 비가 되었던 여인으로 끝까지 건룡제를 거부하다가 죽은 여인이다. 그녀는 북경에서 25년간 살다가 죽었는데 그녀의 친정 사람 의 소원에 따라 시신이 이곳으로 운구되었다. 그녀의 묘가 바로 향비묘로 지금도 이슬람교를 믿는 위구르인에게는 성지처럼 여겨지고 있다. 녹색의 타일로 벽을 장식한 주요 돔 건물 안에는 이 묘를 만든 호자(和卓)의 묘가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으며, 오른쪽 구석으로 향비가 묘가 안치되어 있다.
바자르
카스에는 열리는 바자르에는 매주 일요일에 열리는 바자르와 항상 열리고 있는 바자르 등이 있다. 이 바자르에는 온갖 종류의 수공예품이 펼쳐지는데, 항 이곳 주민들보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더 많은 곳이다. 일요 바자르에는 약 10만 명의 위구르인, 아프가니인, 파키스탄인, 카르키즈인, 타지크인, 몽고인 등의 민족들이 모여드는데, 주요 거래품목으로는 후추열매, 석류, 포도, 의류, 펠트카 , 보석으로 장식된 칼, 부츠, 낙타, 양 등이다.
출처 : http://www.chinainkorea.co.kr
화려한 춤... | 콧수염을 기른 아저씨와... |
공중에 점프;;; | 예쁘게 입고... |
아름다운 아가씨... | 화려한 의상들 |
신장이나 시장(=티벳)은 소수민족 자치구인데 독립을 원하는 민족으로도 유명하다. 문득 TV를 보면서 아이러니하다고 느낀 것은 한 편으론 독립을 이야기 하고 한편으론 중국 공산당에 축복의 메시지를 보내는 이런 공연을 한다는 것. 물론 강경책이건 회유책이건 지도자들이 다 알아서 결정할 일이지만 국경절에 나라가 없이 중국의 한 소수민족으로써 중국 국경절을 축하한다니 마음이 좀 그렇다.
사실 지금 고구려 역사 문제를 들먹이는 것도 이런저런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조선족 자치구를 중국의 한 역사로 흡입하려고 하는 욕심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중국친구들에겐 나도 "국경절 축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우리들 사이엔 국경절은 단지 하나의 긴 휴일(혹은 명절?)이라는 것. 어쨌든 TV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신장의 선남선녀들을 보며 역사의 아이러니를 생각해보게 된다. 어떤 중국 작가가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사람은 역사를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역사는 사람을 바꾼다." 물론 역사를 써내려가는 건 사람이겠지만 그 역사 앞에 쉽게 변해가는 것 또한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일정부분 동의한다.
뭐...어쨌든 국경절 7일 휴가가 시작되었으니 중국은 여기저기 고향가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바글거리겠다. 난 조용히 집에서 영화나~^^
신장은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이긴 하다. 특히 지금 중국의 대표(?)적 음식으로 알려진 양로우촬(양꼬치 고기)이 신장의 전통 음식 아니던가. 여기 장춘에서 가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고 하지만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
:: 신장족이란?..
東투르키스탄 : 중국의 신장위구르(新疆維吾爾)자치구의 별칭이다.
'동(東) 투르키스탄'의 투르키스탄(Turkistan)은 페르시아어로 투르크(Turk)와 이스탄(istan : 지역)이 합쳐진 말로 원래 투르크 족이 사는 지역을 뜻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옛 오스만 제국의 투르크 족과 볼가 지역의 투르크-타타르 민족들을 비롯한 일부투르크 족의 거주지역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으며, 반대로 타지크 인들처럼 투르크 족이 아닌 민족들의 거주지역들이 포함되기도 한다.
총면적 260만㎢가 넘는 투르키스탄 전역은 파미르 고원과 톈산(天山)산맥을 사이에 두고 서(西) 투르키스탄과 동 투르키스탄으로 나뉜다.
서 투르키스탄은 지금의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및 카자흐스탄 남부지역을 포함한다. 카자흐스탄 지역을 제외한 서 투르키스탄은 1920년대 중반 이후 한동안 한 행정구로 소비에트 중앙 아시아로 불렸다.
동 투르키스탄은 청나라 때 회부(回部), 신장(新疆)성이 되었다가 지금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되었다. 위구르 족의 99.8%가 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거주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주변의 우즈베키스탄, 타지크스탄,키르기스스탄 등과 연대하여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의 수립을 목표로 하는 폭력적인 분리주의 운동이 활발해 중국 중앙정부의 심각한 두통거리가 되고 있다.
동 투르키스탄 분리주의 운동은 중국 내 다른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 운동에 비해 대단히 폭력적이다. 위구르 지역의 분리주의 운동이 티베트와 비교하여 국제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의식적으로 폭력에 호소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신장 위구르에는 동투르키스탄 망명정부, UNRF(연합민족혁명전선), 동 투르키스탄 이슬람 당을 중심으로 분리·독립 운동을 전개되고 있다.
대표적 지도자로 아이사가 꼽힌다. 그는 이샤유수프 알프테킨의 뒤를 이어 현재 동 투르키스탄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다. 위구르의 분리·독립운동의 배경에는 대다수의 위구르인들이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있는 종교적인 이유가 깔려 있다.
위구르인들의 분리·독립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하여, 주변의 우즈베키스탄, 타지크스탄, 키르기스스탄과 연대한 '투르크인의 땅'인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의 수립이다.
:: 신장에 대한 자세한 정보~ 더 보기..
신장 위치
주도(主都)는 우루무치[烏魯木齊].
면적 : 164만 6900 ㎢, 인구 : 약 1,500만 (1992).
톈산[天山]산맥이 자치구의 중부 지역을 동서로 뻗어내리면서 남북으로 양분하는데, 남부 신장의 중앙 지역에는 50㎢ 가 넘는 타림[塔里木] 분지가 광활하게 펼쳐지고 톈산·쿤룬[崑崙]·아얼진[阿爾金]·카라코람 등 여러 산맥들이 둘러싸고 있다.
분지의 중앙에는 타클라마칸 사막이 전개되어 남서에서 북동 방향으로 경사를 이루고, 가장 낮은 지대(해발고도 760 m)에는 뤄부포호[羅布泊湖]가 있다. 톈산산맥 북쪽, 알타이[阿爾泰]산맥 남쪽 사이에 있는 북부 신장의 중심부는 중가리아[準1爾] 분지이며 사막과 함께 끝없는 초원이 펼쳐진다.
평균 해발고도 3,000 m가 넘는 톈산산맥의 봉우리들 사이에는 산림과 수초(水草)가 무성한데, 특히 투루판[吐魯蕃] 분지는 해면하(海面下) 154 m에 해당하며 중국에서 가장 낮은 지대이다. 최대 하천은 타림분지의 타림강으로 내륙 하천인데, 뤄부포호(湖)로 흘러든다. 그 밖의 하천도 대부분 주변 산지에서 눈이 녹아 흐르는 물을 수원(水源)으로 하는 내륙 하천이다.
호수 역시 거의가 함수호인데, 자치구의 북쪽 끝에 있는 이르티스[額爾齊斯]강은 오비강의 상류에 해당하며 유일한 외양하천(外洋河川)이다. 기후는 전형적인 대륙성기후이며, 북부 신장의 강수량은 150∼350 mm, 남부 신장은 100 mm 이하이다. 기온의 연교차는 30 ℃가 넘는다.
한민족(漢民族)이 옛부터 서역이라고 부른 지역의 일부로,현지어로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사막' 이라는 뜻의 타클라마칸사막을 중심으로 펼쳐진 분지와 오아시스 그리고 초원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지역이며, 동서교통의 요충지였다. 타클라마칸사막 주변에는 도시국가들이 늘어섰으며, 물과 목초를 찾아온 유목 민족들이 나라를 세우고 이 곳을 지배하였다.
청(淸)나라 때인 1884년 이후 신장성이라고 하였으나 1955년부터 위구르족의 자치구가 되었다. 지금도 10개가 넘는 소수 민족이 살고 있는데,전인구의 2/3는 위구르족이며 한족과 카자흐족이 그 다음을 차지하고, 그 밖에 후이족[回族]· 키르기스족· 몽골족·타지크족·우즈베크족·타타르족·시보족·다호르족 등도 자치주나 자치현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인민공화국이 들어서 서 이 지역의 엄청난 지하자원 때문이라도 중국정부에서는 한족을 이주시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 지금은 한족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광활한 초원으로 인해 목축업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주요 가축은 면양·염소·말·소·낙타 등이며, 개간 가능한 토지는 1,200만 ha를 상회하므로 농업 개발의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문제는 용수인데 투루판·하미[哈密] 등지에서는 운하라고 할 만큼 규모가 큰 지하수로(地下水路)로 공급해왔다. 중국 정권 수립 후에는 중국군 생산건설병단(공병대)이 투입되어 마나스[瑪納斯]아커쑤[阿克蘇] 등지에 인공수로를 건설, 농지를 확장하였다.
주요 농작물은 밀·옥수수·벼·목화·과일 등인데, 특히 목화 재배의 발전은 괄목할 만하다. 이 밖에도 타림 분지 남쪽의 허톈[和]사처[莎車] 등지에서 양잠이 성하며, 톈산이나 알타이 등의 고산지대에는 산림도 무성하다. 광물자원이 풍부하고, 특히 석유의 매장량이 많다.
유전은 커라마이[克拉瑪依]에 있고, 정유소는 두산쯔[獨山子]에 있다. 또한 우루무치 부근에 류다오완[六道灣]탄전이 있으며, 이 밖에 철·망간·유색금속·운모·중정석·황산나트륨 ·석고·황·암염의 매장량도 많다.
중국정권수립 후 비로소 근대 공업시설이 건설되었으며, 특히 면·모 방직공업 발전이 현저하다. 그 밖에 철강·기계·화학·석유·식품 등의 공업도 영위되며, 전통적 공업으로는 융단이 유명하다.
교통은 란신철도[蘭新鐵道]가 통과하고 간쑤[甘肅]·칭하이[靑海]·네이멍구[內蒙古]·티베트로 연결되는 자동차도로도 건설되었으며, 항공로도 여러 지방과 이어진다.
기후는 여름과 겨울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덥거나 추운데, 여름에는 40℃까지 올라가고, 겨울에는 영하 10℃까지 떨어지기 때문에 거주하기에는 적당치 못한 지역이다
우루무치 烏魯木齊(오노목제) 인구 약 116만(1990). 톈산[天山]산맥의 북쪽 기슭, 해발고도 915m의 고지에 있으며 우루무치강변에 위치한 데서 연유한 지명으로 우루무치는 ‘투쟁’이란 뜻이다. 또 ‘광대한 목초지’라는 뜻이라고도 하는데, 일찍이 중가르부와 후이족[回族]이 격렬한 싸움을 벌였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7세기 무렵 당나라의 위세가 이곳에 미쳐 북정도호부(北庭都護府)를 설치하여 톈산북로[天山北路]를 관할하면서 정주(庭州)라고 하였다. 그 후 오랫동안 몽골 ·투르크계(系) 등 여러 유목민족의 쟁탈지가 되었으나, 18세기 중엽 무렵 청나라의 건륭제(乾隆帝)가 중가르부를 평정하고 북쪽에 새로이 한성(漢城)을 축조하여 디화[迪化]라고 하였다.
1881년 러시아와의 조약으로 개시장(開市場)이 되고, 한때 러시아의 세력권에 들기도 하였다. 1882년 신장성이 설치되자 그 성도(省都)가 되었고, 민국시대에는 디화현[迪化縣]이라고 하였으나 중공정권 수립 후, 디화라는 지명이 계몽 ·교화 등의 어의(語義), 즉 이민족을 통치한다는 뜻이 내포되었다고 해서 원지명인 우루무치로 다시 개칭하였다.
내륙분지의 초원기후로 목초가 많아 예로부터 목축이 이루어져 양모 ·피혁 ·잡화 등의 거래가 성하였으나, 댐이 축조되고 관개수로가 정비되면서 농작물의 수확이 급증하고 있다. 부근에서 석유 ·석탄 ·철광 ·구리광이 발굴되고, 자원개발과 함께 전력 ·면방직 ·시멘트 ·화학 ·제분 ·피혁 ·주철 ·강철 ·자동차수리 공업 등이 발달하였다. 자동차도로의 중심지이며, 란신철도[蘭新線:蘭州∼우루무치]로 룽하이선[짱海線]과 연결되어 중국 동안에 있는 롄윈항[連雲港]에 이를 수 있다. S.헤딘의 중앙아시아 탐험대의 본부가 설치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신장의과대학이 설립되어 신장 지구의 문화 ·경제 ·교통 ·군사의 중심지를 이룬다.
우루무치는 新疆 維吾爾 自治區의 중심으로 그네들 말로 "아름다운 목장"이라는 뜻의 도시이다. 남쪽으로는 타클라마칸 사막과 곤륜(崑崙/Kunlun)산맥에 닿아 있 고, 서쪽은 실크로드의 오아시스였던 伊寧(Yining)을 지나 구소련과 파키스탄으 로 이어진다. 1992년에 실크로드 철도가 개통이 되어 국제열차가 알마아타 타슈켄트까지 이어져 교통이 매우 편리해 졌다.
중국내 자치구중 최대의 면적과 인구(109만)를 가진 신강 위구르자치구의 수도로서 남쪽으로는 타클라마칸 사막과 곤륜산맥(昆崙山脈)과 닿아 있고, 서쪽은 실크로드 오아시스의 요지인 이령(伊寧)을 지나 구 소련·파키스탄으로 이어진다. 2000여 년 동안 이 지역은 양과 소떼들을 몰고 다니는 많은 소수 민족들이 모여 살았던 초원 지대였으며 위그르족 · 카자흐족· 한족· 회족· 몽고족· 끼르끼즈족· 따따르족· 따지크족· 시버족· 우즈베키족· 만족· 따고르족· 러시아족 등 13개 민족이 살고 있다. 우루무치는 몽고어로 '아름다운 목장'이라는 뜻이나 지금은 초원은 사라지고 현대화·개방화의 물결에 의해 고층빌딩이 들어서면서 중국의 여타 개방 도시처럼 도시화되고 있다. 천산의 북쪽 기슭에 위치한 우룸치는 옛 '실크로드'의 길목이며 중국 서북변강의 중요 도시이다. 해발고도 900m, 세계의 최내륙 도시이다.
타림분지 (Tarim Basin)면적 약 70만km2, 남북 길이 500km, 동서 길이 1,500km, 평균 해발고도는 800∼1,200m이다. 서쪽은 파미르고원, 북쪽은 톈산[天山]산맥, 남쪽은 쿤룬[崑崙]산맥에 둘러싸여 있다.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경사를 이룬다. 주위의 산맥이 모두 높고 산꼭대기는 만년설에 덮여 있기 때문에 유출하는 수량이 많아 타림(물을 모으는 곳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산기슭에는 하천이 퇴적시킨 선상지가 늘어서 있으며 선상지의 선단(扇端)은 오아시스 지대이다. 분지의 중앙에 있는 타클라마칸 사막은 선사시대의 내륙호가 말라붙은 것이다. 오아시스 지대에서는 예로부터 농업이 발달하여 도시국가의 성립을 촉진하였으며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분지의 북쪽과 남쪽 가장자리에는 실크로드가 뻗어 있어 동양과 서양 문명의 교류에 공헌을 하였으며, 부근에서 유전이 발견되었다.
파미르고원 (Pamir Plat.)파미르는 옛 페르시아말로 ‘미트라(태양)신의 자리’를 뜻하는 ‘Pa-imihr’가 어원이라고 하나 이설(異說)도 있다. 해발고도 5,000m가 넘는 10여 갈래의 복잡한 주행(走行)을 보이는 산맥들로 구성되어 있는 파미르 지방의 대부분은 타지키스탄 고르노바다흐샨주에 속하며, 동쪽은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 남 ·서쪽은 아프가니스탄에 속한다.
산계(山系)는 3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지는데, 동(東)파미르는 카슈가르파미르(중국 영토)를 가리키며, 최고봉은 쿵구르봉(7,719m)이다. 북서에서 남동방향으로 호(孤)를 그리며 남쪽의 타시쿠르간 산계로 이어진다. 심한 개석이 진행되고 있으나 이 고원은 기후가 한랭한 데다 건조하기 때문에 식생이 빈약하고 관목상(灌木狀)의 텔레스켄이 주민의 유일한 식물질 연료이다. 중부 파미르(지질학자 무르자에프는 이곳을 좁은 뜻의 파미르라고 부른다)는 파미르 가운데에서도 가장 새로운 지질시대에 융기하였기 때문에 산꼭대기 부근이나 하곡(河谷)의 중간 등에서도 평탄한 면이 잘 남아 있다. 그리고 서(西)파미르는 자알라이산맥(트랜스알라이라고도 하며 이곳에 7,134m의 레닌봉이 있다) ·표트르1세산맥 ·아카데미아산맥(교차점에 7,495m의 코뮤니즘봉이 있다), 그 밖에 여러 산맥으로 구성되며 심한 개석으로 웅대한 모습을 보인다.
파미르 산계는 여러 줄기의 향사축(向斜軸) ·배사축(背斜軸)을 가지고 있는데 배사부는 편마암 ·고생층(古生層:헤르시니아계가 많다), 이에 관입(貫入)한 심성암류(深成岩流)로 이루어져 있으며, 향사부에는 중생층을 중심으로 하는 퇴적암이 나타나고 있다. 융기운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파미르 주변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지진대(地震帶)이다.
파미르 지방의 기후는 심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서파미르의 해발고도 4,000m 부근에서는 연평균 강수량이 1,000mm나 되지만 골짜기는 건조하다. 식생의 수직적인 변화가 분명하며 서쪽으로 열려 있는 하곡에서는 쑥 등이 식생하는 반사막(半砂漠), 하천 연안이나 선상지(扇狀地)에서는 규모는 작지만 버드나무 ·자작나무 숲을 볼 수 있다. 2,600m에서는 스텝, 3,800m에서는 고산식물의 꽃밭, 4,000m에서는 설선(雪線)이 나타난다. 동파미르에서는 5,200m에서 설선이 나타나고, 빙하는 타지키스탄 영토에만 해도 1,085줄기가 있다. 파미르에서 사는 동물은 양 ·늑대 ·설치류(齧齒類) ·산까마귀 ·독수리 등이고 서파미르에는 불곰 ·표범류도 있다.
뤄부포호 羅布泊(나포박)면적 3,006㎢, 호수면 해발 768km이다. 몽골어로는 ‘로프노르(Lop Nor:많은 강물이 흘러드는 호수)’라고 한다.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 타림분지와 타클라마칸사막의 동쪽에 위치한다. 한(漢)나라 때는 푸창하이[蒲昌海]·옌저[鹽澤] 등으로 불렀으며, 그 물이 땅 밑으로 흘러 황허강[黃河]을 이룬다고 여겼다.
19세기 말 이후에는 스벤 헤딘(Sven Hedin) 등의 탐험 결과, 이 호수 북쪽으로 흘러드는 타림강·쿵췌허강[孔雀河]의 물길 변화로, 호수의 위치와 모양이 달라진다는 ‘방황하는 호수’설(說)이 대두하였다. 그러나 1980∼1981년의 중국 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지금도 증가하는 풍식작용(風蝕作用)과 염분으로 덥히는 현상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큰 염호(鹽湖)였으나 상류지대의 하도(河道) 변화와 관개인수로공사 때문에 점차 축소된 것으로 추정되며, 1964년에 완전히 말라 없어져 오늘날에는 염탄(鹽灘)으로 덮인 지각(地殼)이 2만 480㎢에 이르는 사막으로 변해 있다. 부근에는 중국의 주요 핵연구시설과 실험장이 있으며, 1964년 이후 중국의 지하 및 대기 핵폭발 실험이 간헐적으로 있었다.
타림강 (Tarim R.)길이 2,179km. 쿤룬[崑崙]산맥에서 발원하는 허톈강[和蚊河]과 예얼창강[葉爾羌河], 톈산[天山] 산맥에서 발원하는 카스거얼강[喀什恩爾河], 퉈스한강[托什罕河] 등 4강이 퉈리커[托里克] 부근에서 합류, 타림강이 된 다음 동쪽으로 흘러 뤄부포호[羅布泊湖]로 유입한다. 중국 최대의 내륙하천으로 건조지역을 흐르기 때문에 물길이 말라버리거나 바뀌는 일이 잦다.
신강자치구박물관 (新疆自治區博物館)신강자치구 박물관은 시가지 서북쪽에 있다. 홍산빈관에서 7번버스를 타고 곧바로 가면 된다. 박물관은 전형적인 웨이우얼족 건축형식으로 지어져 있으며 3개의 전시지역으로 나뉘어있다.
[신강역사문물 전시실] - 이곳에는 실크, 도기, 토용, 화폐, 병기, 문서, 서적등 5만여점의 진귀한 물건이 전시되어 있다. 한나라와 당나라 때 실크의 조화로운 무늬가 그대로 남아있다. 그 가운데 '궈수어'라는 당나라 때의 실크로드 통행증이 있다. 이 '궈수어'는 본인의 신분뿐 아니라 동행인의 숫자, 특징, 여행목적, 여행에 따른 이익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궈수어'에는 통과하는 지역이 씌여있어서, 당시 실크로드이 주요 경로를 파악할 수 있으며, 학술적으로 많은 도움을 준다.
[미이라 전시실] - 이곳에는 고대 미이라가 전시되어 있어서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약10여구의 미이라가 있는데, 그중 '하미'에서 출토된 '잠자는 미인'이 유명하다. 이것은 약3000년전의 것으로서 중국에서 자장오래되고 잘 보존된 고대 미이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당나라 초기의 '까오창'왕국의 대장군 '쟝송'의 미이라도 있다. 이것은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군에서 출토된 것이다. 또한 어른, 어린아이, 황인종 미이라뿐 아니라, 코가 큰 아리안인등의 미이라가 있는 것을 미루어 보면, 옛날에는 신강지역에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민족 민속 전시실] - 신강에는 웨이우얼족, 하사커족, 커얼커족, 한족, 회족, 타지커족, 우즈베커족등 10여개 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다. 전시실에는 10개의 대표적인 민족을 선정, 실물과 사진등이 전시되어 있다. 각 민족의 의복, 주거, 관혼상제, 축제일, 오락, 음식, 종교등 각 방면의 풍속을 볼 수 있다. 내용이 비교적 풍부하여, 다 보려면 2-3시간을 잡아야한다.
투루판(吐魯番/Tu Lu Fan) 신강 위구르 자치구의 동쪽 천산 산맥의 남쪽 산록에 있다. 吐魯番이란, 위구 르어로 ‘ 패인 땅 ’이라는 의미이다. 투루판 분지는 중국에서 표고가 가장 낮은 지역으로 그 중에서도 바닥에 해당하는 애정호의 수면은 면보다 154m가 낮다. 뒤로는 흰 만년설을 두른 천산의 주봉을 볼 수 있다.
* 신강 여행시 도시간의 이동은 버스를 이용하기 바란다. 그래야만 도중에 지나치는 소도시를 통해 그들의 진정한 문화를 접할 수 있다.
투루판은 신강위구르 자치구의 일부분으로, 1975년 7월 15일, 국무원의 비준을 거쳐 성립된 도시이다. 신강과 대륙간의 교통의 요충지로, 서한(西漢)시대부터 오랫동안 서역 지방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실크로드 북행코스의 중요 도시로 해수면 보다 280m가 낮아 중국에서 가장 낮은 곳이며, 세계에서는 이스라엘의 사해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곳이다. 그래서 아시아의 우물'이라고 일컬을 만큼 지리학상으로도 유명하다.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중국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연간 최고 기온은 47.5℃, 지표의 온도는 70℃나 된다. 그러나 사막기후의 특성상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해가 지면 급격히 기온이 내려가 15℃ 정도가 된다. 11월에서 3월경까지는 낮에는 23∼24℃ 정도까지 올라가지만, 야간에는 영하 17℃까지 내려가므로 이곳을 여행하려면 충분한 준비를 하여야 한다.
카스카르(喀什)
카스카르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실크로드의 대표적인 도시로, 이국적인 풍물 때문에 실크로드 여행에서 빼놇을 수 없는 도시중의 하나이다. 카스카르에서는 유창한 중국어는 여행에 손해. 그들의 중국에 대한 반감은 신강 어느도시 보다도 강하다. 가능한 한 외국인임을 나타내는 것이 편하고 안전하다. ( 물론 신강 다른 도시에서도 외국인인 것이 유리하다.)
카스는 신강 위구르족 자치구의 극서쪽, 구소련과의 국경선으로부터 약 164㎞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로서 캬슈가르(Kashgar)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동서 문물의 접촉지, 동서 교역의 시장으로 번영하였으며, BC 2세기에 한(漢)나라가 서역(西域)과 교섭을 가졌을 때는 도시 국가를 형성하였는데, 한나라 때는 소륵국(疏勒國)이라고 하였다. 당(唐)나라의 지배를 거쳐 11세기부터 투르크 이슬람의 영향을 받았고, 다시 차가타이 한국(汗國)·티무르왕조의 지배를 받다가, 티무르 왕조 몰락 후인 16세기에 카슈가르 한국이 성립되자 그 수도가 되었다. 청(淸)나라 때에는 반청(反淸) 독립운동을 일으켰다. 1860년 러·청조약으로 시장이 개방되자 러시아인의 왕래가 많아지고, 그 밖에 인도인·아프가니스탄인 등이 혼거하면서 교역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실크로드가 쇠퇴한 후 이곳도 쇠퇴의 길을 걸어 현재는 인구 20만의 소도시로 전락했지만, 실크로드의 역사를 증언하는 도시이다. 현재도 인도·러시아 연방의 교역 중계지로서 곡물·목화·생사·과일 및 가축·피혁제품 등을 집산한다. 주민은 위구르족·한족(漢族) 외에 위의 종족들이 혼주하고 있다. 이국적인 풍물 때문에 아직까지는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중국에서 유일하게 여자들이 베일을 쓰고 다니는 도시이기도 하다.
쿠처(庫車/Ku Che)
쿠쳐는 가볼만한 곳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시내에서 거리가 멀기 때문에 7~8월 성수기를 제외하고는 차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가격도 200~300원 수준.
신강위구르자치구박물관1953년에 세워진 서북로에 위치한 박물관으로 외관은 위구르족 건축 풍격을 갖추고 있다. 역사문물, 혁명 문물, 민족문물 등의 5만여 물품들을 관람할 수 있다. 현재는 일반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신강소수민족진열관, 신강역사문물진열관, 신강고시진열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어 관람해야 한다.
천지
신강의 이름난 곳으로 우루무치와 90km 상거한 부강현경내의 천산 버거다봉 북쪽 기슭에 위치해 있다. 해발 1910m의 길이는 3.3㎞이고, 넓이는 평균 1㎞이며, 최고 깊이는 105m이다. 설산의 빙설이 녹아서 합류된 것이다. 천지 풍경구는 관광여건이 보완되어 산간도로가 호수가에까지 개통되어서 관광하기 편하고 정자, 수상정자, 레스토랑이 있어 관광객들에게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천지 주변에는 침엽수림이 자라는데 박격달봉의 만년설과 어울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홍산
홍산은 여러 해를 거쳐 울창해진 결과 홍산공원이 되었다. 근래에는 청대 민족 영웅인 칙서의 돌조각상과 홍산의 녹화를 기념하는 조각이 있다. 홍산 정상의 "원조루"에 오르면 시내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시내 중심에 위치한 홍산은 산세가 동서쪽으로 향해 있고, 해발 1391m의 봉우리를 자랑한다. "호두산', 홍산취'라고도 불리우고 있다.
남산목장(南山牧場)
우루무치에서 남쪽으로 75㎞ 어진 곳에 있는 방목 지구로서, 맑고 푸른 하늘, 비단결 같은 초원, 춤추듯 떨어지는 천산폭포가 그림과 같은 풍경을 제공한다. 이 지역은 카자흐족이 모여 살고 있는데, 그들이 사는 파오에서 묵을 수 있고 말을 타는 재미도 누릴 수 있다.
교하고성
서쪽 10㎞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유적지로 실크로드의 길목이다. 두 갈래의 강이 합류하는 곳이라서 교하고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실크로드의 교통의 요지였다. 전쟁으로 훼손당했지만 지금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도시라고 평가받고 있다. 고성을 발굴하는 도중 지하 사원과 차사국의 귀족무덤의 바다 진주, 사리 등의 진귀한 물품들이 출토되었다.
고창고성
사각형모양으로 흙벽돌로 축조된 고창고성은 1세기의 고창벽이 13세기에 전쟁으로 훼손 되어 사원과 궁전 유적이외에는 형태를 거의 알아 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르 렀다.
소공탑
동쪽 2㎞ 지점에 있는 목납촌에 있는 신강 에서 제일 오래된 고탑이다. 청대 명장인 액민화탁이 짓기 시작해 액민탑이라고도 불린다. 액민화탁이 죽고 나자 그 아들이 완공시켰다. 청회색의 원형탑으로 내부에는 나선형 층계 있다.
백자극리극천불동
화염산 아래에 위치해 있다. 원래는 83개의 동굴이 있었지만 현재 57개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천불동은 현존하는 석굴 중 가장 벽화가 많기로 알려져 있다. 위구르어로 '아름답게 장식된 집'이라는 뜻의 천불동은 너무 많이 손상되어 현재는 초라한 석비들만 남아 있을 뿐이다.
아사탑나고묘
고창고성 북쪽에 있는 위치한 이 외국 탐험대에 의해 모습을 드러낸 고분이다. 고창국과 당나라 귀족들의 공동묘지다. 아쓰타나의 뜻은 위구르어로, '영원히 잠든 묘지' 또는 '휴식의 장소'라는 뜻이다. 진귀한 물건들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가장 진귀한 것은 속눈썹과 안의 눈동자까지 볼 수 있는 미이라다.
파지키리크천불동
낭떠러지 굴착과 흙벽돌을 쌓는 건축형식을 사용했다. 서역의 각이한 민족특징을 반영한 벽화는 상당수가 파손되었지만 남아있는 양도 꽤 된다. 고창지역에서 내용이 풍부하고 보전이 비교적 잘된 석굴로 알려져 있다.
화염산(火焰山)
고창고성 뒤로 약 500m 정도의 산으로 약 100㎞에 걸쳐 길게 이어진다. 위구르인은 이 산을 '붉은 산' 이라고 부 는데, 이는 산이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햇빛을 받아 반사하면 마치 불타는 듯한 모양이어서 이런 이름을 붙었다고 한다. 실제로 한여름에는 표면 온도가 80℃를 넘기 때문에 접근하기조차 어렵다.
포도구(葡萄溝) 투루판이 포도의 도시라고 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곳으로 화염산의 서쪽에 있는 수목원으로 500m 정도 폭으로 길게 약 8㎞ 쯤 이어지는 계곡의 수로를 따라 나무숲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나는 포도는 특히 맛이 좋고 달기로 유명하다. 약 200여 종의 포도가 재배되고 있으며, 포도 이외에는 여러 가지 과일들을 재배하고 있다.
아이드카모스크 사원(艾提朶爾淸眞寺)
1442년에 세워진 신강 위구르족 자치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이슬람 사원으로, 과거에는 이슬람교 대학으로 사용되었다. 정문은 12m이고, 이 양 옆으로 있는 18m 첨탑은 이슬람 건축 양식을 보인다. 그 안에는 아름다운 조각 무늬로 장식된 홀이 있어 이곳에서 예배드리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평일에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고, 하루 다섯 번씩의 기도시간에 몇 명 정도만 찾아와 기도한다.
향비묘(香妃墓) 향비는 17세기경 이 지역의 권력자인 아바흐호자의 손녀로 청나라 건룡제의 비가 되었던 여인으로 끝까지 건룡제를 거부하다가 죽은 여인이다. 그녀는 북경에서 25년간 살다가 죽었는데 그녀의 친정 사람 의 소원에 따라 시신이 이곳으로 운구되었다. 그녀의 묘가 바로 향비묘로 지금도 이슬람교를 믿는 위구르인에게는 성지처럼 여겨지고 있다. 녹색의 타일로 벽을 장식한 주요 돔 건물 안에는 이 묘를 만든 호자(和卓)의 묘가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으며, 오른쪽 구석으로 향비가 묘가 안치되어 있다.
바자르
카스에는 열리는 바자르에는 매주 일요일에 열리는 바자르와 항상 열리고 있는 바자르 등이 있다. 이 바자르에는 온갖 종류의 수공예품이 펼쳐지는데, 항 이곳 주민들보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더 많은 곳이다. 일요 바자르에는 약 10만 명의 위구르인, 아프가니인, 파키스탄인, 카르키즈인, 타지크인, 몽고인 등의 민족들이 모여드는데, 주요 거래품목으로는 후추열매, 석류, 포도, 의류, 펠트카 , 보석으로 장식된 칼, 부츠, 낙타, 양 등이다.
출처 : http://www.chinain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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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30일 목요일
[mov] 엔비 / Envy / 终极贱靶
엔비 / Envy / 终极贱靶
감독 : 배리 레빈슨
출연 : 벤 스틸러(팀 딩맨), 잭 블랙(닉 밴더마크), 레이첼 와이즈(데비 딩맨), 에이미 포엘러(나탈리 밴더마크), 크리스토퍼 워큰(드리프터)
성실과 공상,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은 것일까? 뻔한 말이지만 어떤 게 더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성실한 사람은 그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을 테고 공상을 좋아하는 사람은 또 그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을 테니까. 성실한 사람과 공상가, 이건 이 영화를 풀어가는 아이디어는 될지언정 주제는 아니다. 친구간의 질투와 시기에 대한 이야기니까.
그런데 나도 전에 자주, 요즘은 가끔 공상(?)을 해볼 때가 있었다. 예를 들면 카니발이나 카렌스 등의 차가 나오기 훨씬 이전에 일반 승용차 문이 지금의 밴 스타일로 열리게 되면 좁은 곳에서도 사람이 타고 내릴 때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 옷에 컴퓨터를 부착하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능을 첨가한다면 좋지 않을까, 옷 스타일은 그대로지만 색깔은 원하는 대로 혹은 날씨에 따라서 변한다면 어떨까… 하는 식의 생각들. 영화에서도 닉은 그런 공상을 끊임없이 하면서도 스스로 결정이 내려지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스타일이어서 갑부가 되었지만 난 생각만으로 그쳤으니 지금 갑부가 안되었겠지. 생각했던 것들이 몇 년 후 혹은 10년 후 즈음 다 현실에서 사용 가능한 제품으로 나오는 것에 대해 혼자서만 신기해하곤 했다. 망상이건 공상이건 아이디이건 간에 생각한 것을 현실화 시키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돈 벌고 싶다면 생각한 걸 실천으로 옮겨라!!! 꼭 돈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꿈이나 이상이 있다면 실천으로 옮겨야 그 결과를 보는 법.
사실 영화를 보면서 팀이 드리프터에게 신세한탄을 하는 장면에서 닉은 공상을 좋아하지만 그걸 실천으로 옮겨 부자가 되었고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생각한대로 애니메이션을 하게 되었고 중국에까지 왔지만 여전히 많은 생각들은 생각으로만 사장되고 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만약 나랑 정말 친한-생활수준도 비슷한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갑부가 되었다고 할 때 난 어떤 마음이 들까? 그 친구를 질투하고 시기하고 때론 모함도 하게 될까? 아니면 그 친구에게 잘 보여서 혜택을 보려고 할까? 그런 상황에 접해보지 않아서 어떻게 말을 할 수는 없겠다. 다만 지금 내 친구들이라면 별다른 일들은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믿음 정도는 있다. 옛말에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고 하는데 질투와 시기는 여기저기에서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갑부가 되었다고 하면 어떨까? 그렇다면 말할 수는 없지만 생각해 둔 바가 있다. 내가 갑부가 되면 친구들이여 걱정 마시라~!!!:)
언제부터인가 닉을 연기한 잭 블랙에 대해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정확히는 “스쿨오브락/School of Rock(리차드 링클래이터 감독)”을 보고서부터다. 그 전에 다른 영화를 보거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너무 오버하는 연기가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잘 보지 않았는데 그 오버 연기가 아주 적절하게 그리고 인간적으로 다가온 영화 “스쿨오브락/School of Rock”를 보고서 잭 블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빛을 발한다. 벤 스틸러의 코믹연기는 잭 블랙이나 아담 샌들러보다는 못한 것 같다는 생각. 드리프터로 분한 크리스토퍼 워큰은 역시 제 몫을 다 해준다. 잠깐 잠깐이지만 극과 극의 연기를 보여주는 맛. 멋지다.
똥을 사라지게 해주는 스프레이를 발명하고 이름을 “VaPooRize”라고 짓는데 그 이름을 꼭 잭 블랙이 지은 것만 같다.^^ 게다가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라든지 약간 어설픈 졸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든지 어떤 연기를 하더라도 잭 블랙 표 연기가 빛을 발한다. 잠시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나오는 장면에서는 잭 니콜슨을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만 보면 잭 블랙도 매력있는 얼굴이긴 하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 MTV Movie Award에서였던가 잭 블랙이 최우수 코미디언상을 받을 때 시상식에 올라와 덤블링과 더불어 보여준 갖가지 액션은 삶이 아예 영화 속 캐릭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마지막에 또다른 신제품(!)을 개발해 재기에 성공하는 두 친구들을 보면서 우리 주변에도 로또 복권 못지 않는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넘쳐나지 않나 싶은 생각을 잠시 했다. 거기에 실행으로 옮기는 용기와 추진력이 있는 삶의 에너지를 첨가한다면 말이지!!!
☞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접한 내용인데 원래는 그런 내용이 아니라고 하네.
원래 문장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라도 아파야 한다.”
1. 사촌이 땅을 샀다면 여기저기 변통해서 돈을 모아 샀을 테니 집에 돈이 부족했을 테니 사촌네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오기가 미안해 배 아프다는 핑계로 입이라도 덜어주고 집에 돌아온다는 뜻 하나.
2. 사촌이 땅을 사면 축하는 해줘야 할 텐데 형편이 녹록치 않으니 배라도 아파서 사촌이 산 땅에 설사를 해주고 땅을 기름지게 하는데 도움이라도 되어야겠다는 뜻 둘.
결국 원래는 좋은 의미였는데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의 민족말살정책에 더불어 좋은 뜻들을 다 나쁜 뜻으로 만들어 서로를 이간질시키려고 했다는 이야기.
정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믿음에 한 표!!!
“배가” 하고 “배라도”에서 토씨 차이 하나로 뜻 차이가 엄청 달라지는군.
2004년 9월 29일 수요일
멈춘다는 것의 의미
멈춘다는 건 끝난다는 의미만은 아닐 겁니다.
멈춘다는 건 잠시 숨을 돌린다는 의미도 있을겁니다.
끊임없이 그대에게 말을 하는 것 보다는
잠시 멈추고 그대의 얘기를 듣는 것도 필요할 겁니다.
잠시 큰 숨을 쉬며 멈추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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