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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넓은 장춘의 남호공원이 꽝.꽝. 얼어붙었다. 마치 육지의 아스팔트와 같은 느낌. 그 위로 하루가 저물어가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가롭다. 여름엔 조그만 모터가 달린 배를 타고도 한 시간 남짓 걸려야 한바퀴 돌 수 있을 정도로 큰 호수가 겨울과 마주하고 속까지 꽝.꽝. 얼어붙었다. 봄까지 언 가슴 녹이지 않을 태세다.
정이강 감독님(좌)과 이용배 선생님(우)
장춘국제애니메이션포럼 기간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한국에서 오신 교수, 감독, 전문가들을 모시고 일정 조정이며 통역을 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원래 포럼조직위 위원으로 시작한 게 아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포럼이 시작한 후에는 더더욱 다른 일들까지 맡아 관리하고 처리하느라 진땀을 뺐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좋은 경험이 되고 많은 중국 선생들과 알게 된 걸 생각하면 그나마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처음부터 일에 투입되지 않아서 발생했던 문제들과 행사 진행의 미비함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꽤 힘든 시간이었다. 준비기간과 행사 기간을 합해 그렇게 몇 주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다섯 분의 강연에 줄곧 통역을 맡고(강연 통역은 정말 어렵다.-_-;) 저녁 만찬 장소나 기타 장소에서도 한국 귀빈들과 대화를 나누려는 학교 이사장 및 길림성, 학교 간부들의 요청에 통역은 쉴 새가 없었으니 말을 두배, 세배 더 하게 될 수 밖에 없었고 하루 일정이 끝난 후 새벽까지도 다음날 일정을 위해 소회의를 하거나 상의를 하거나 한국분들을 모시는 일까지 하다보니 행사 막바지에 이르러 그만 감기가 들고 말았다. 한국에서라면 혹 덜 피로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중국(외국)사람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내게 언어 방면과 사고 방식의 차이로 인해 몇 배나 더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었고 그만큼 쉽게 피로를 느끼는 일이었던 것이다. 물론 언어는 여전히 부족함 투성이지만 나름 대견하긴 하다.-_-v
행사 기간동안 사진도 좀 찍고 한국에서 오신 분들 중에 오랫동안 뵙지 못한 분들이 계셔서 저녁에 편하게 술이라도 한 잔 하며 얘기를 나누려던 생각은 그저 생각만으로 그쳐야 했고 오신 분들과 제대로 얘기도 나누지 못한 채 작별을 해야했다. 특히 아쉬웠던 것은 기타 국가-캐나다, 미국, 유럽, 체코 등등에서 온 교수, 감독, 전문가들의 강연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포럼이 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영어를 좀 해보려고 노력 중이었는데 그들의 강연을 듣거나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는 전혀 만들 수 없었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행사는 끝나버리고 몸 추스리고 감기도 다 나았는데 막바로 단편 작업에 돌입을 하게 되었다. 작업은 언제 시작하더라도 늘 즐거운 마음이 먼저 앞선다. 다만 오랫동안(?) 작업을 하지 못했던 이유로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이 정도의 부담은 오히려 약간의 긴장감을 동반하기에 느낌이 좋다.
저녁 늦게까지 작업할 공간이 생겨서 더 좋다. 틈틈이 공부도 해야겠다고 불끈!
제2회길림국제애니메이션교육포럼이 16일 정식 개막한다. 최근 좀 바빴던 이유가 이 행사를 돕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다른 일로 정신없어야 했을 텐데 행사가 겹치는 바람에 일단 포럼에 투입되게 되었다. 간단한 번역만 도와주는 일이었는데 점점 책임져야 할 일들이 불어나더니 급기야는 어느 정도 선까지는 함께 일하는 친구들을 지휘하게 되었다. (중국어 번역도 버거운 녀석이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지휘를 하게 되다니...) 물론 젊은 친구들이었으니 오빠, 형처럼 따르는 부분도 많이 작용했을 듯 하다. 물론 한국인끼리 느끼는 감정과는 사뭇 다른 것이겠지만.
저녁 늦게 퇴근하는 일이 잦아지다가 새벽까지 일을 하는 시간이 생겨나고 어제는 날을 꼬박 새며 문서를 정리하며 행사 준비를 했다. 처음부터 행사 준비에 참석한 게 아니라서 큰 도움은 되지 못했겠지만 가장 바쁜 시기에 나름 할 만큼 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학교(길림예술학원동화학원)의 수 많은 인원들은 나보다 더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을 테고 함께 조직위원회를 이끌어가던 Fu선생도, 그 아래 Tong, Zhang, Bao,Yu, He, Bai..등도 할만큼 열심히 했다. 내겐 여러 크고 작은 문제들이 불거지는 일이 없었기에(외국인이니까) 나름 심적으론 부담이 적었다. 암튼, 조직위원회, 그리고 준비하며 열심히 한 이들에게 격려의 박수. 짝.짝.짝.
여전히 중국어 성조는 들쑥날쑥 흔들리고 단어들은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들어주려고 애를 쓰고 이해해주는 친구들 덕에 즐거운 '노동'을 하지 않았나 싶다.
몇 가지 일들에 대한 감각감상은 포럼이 끝난 후에나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일이 끝나면 장비 세팅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본격적으로 단편 애니메이션 작업에 돌입하게 된다. 그 기다리고 기다리던 작업실이 학교 안에 마련이 되었고 그럭저럭(보다는 더 나은) 괜찮은 컴퓨터 설비로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시작이 15일 오늘인데. 난 오늘부터 귀빈 마중부터 행사 시작, 마무리까지 일을 해야하니 다음 주 부터나 Zeng선생과 함께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애니메이션 작업을 꽤 오랫동안 하지 않은 듯한 느낌때문에 살짝 걱정스럽긴 하지만 이런 긴장감이 때론 좋다. 작업 시작하면서 또 공부하듯 열심히 배워봐야겠다. 작업이 진행되면 작업일지를 틈틈히 써볼 생각인데 나태함에 굴복하지만 않으면...가능할테지.-_-a
바빠지니 한가할 때보다는 유유자적한 시간이 적어지긴 했지만 기분은 꽤 상큼하다. 忙中閒.
그리고... 靜中動, 動中靜.
중국어를 조금 안다는 이유로 어제 한 포털사이트를 통해 '조삼모사 중국판'이라는 기사가 시선을 끌었다. 중국인들은 어떻게 그걸 표현했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다. 기사의 요지는 한국에서 한참 유행했던 '조삼모사' 만화를 중국에서 실사판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물론 기사 후반부에 가서는 중국에 살고 있는 한 교민의 말을 빌어 '조선족이나 한국유학생이 중국의 베끼기 문화, 짝퉁문화를 조롱하기 위해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 기사의 리플들을 보니 가관이다. 사실 보통 리플들을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조삼모사 중국판'에 써있는 중국어가 좀 이상하다고 느껴져서 혹시 누군가는 그 부분을 지적하지 않았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에 보게 되었다. 예상대로 몇 명 정도가 '중국어 어법이 틀리고 문장이 어색한 걸 보면 분명 한국 유학생의 소행'이라는 정도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말은 그저 한 줄의 의견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대부분은 중국의 짝퉁 문화, 베끼기 문화에 대해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떼로 욕을 해대고 있는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중국인들과 대화하면서, 혼자 생각하면서 생긴 궁금증이 다시 일었다.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일본이나 미국, 다른 나라에 비해 공정한 사고방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정말 대다수 누리꾼들이 중국에 와서 사기를 당하고 그들의 행태에 치를 떨었던 경험들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한국이 일본과 미국문화를 비판없이 수용하고 베끼기에 열중일 때는 그저 선진 문화를 배우기 위한 습작일 뿐이었던 것이어서 괜찮았던 것일까? 가만 보면 미국과 일본, 중국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좀 차이가 있다.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무작정 깍아내리고 비판하는 행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이야기도 꽤 많았던 것 같다. 간혹 어떤 방면이든 그들을 추월했을 때의 보이는 우월감은 실로 대단한 정도고. 즉, 한국인은 그들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한 편으로 많은 열등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 대한 태도는 이와 정 반대다. 중국은 앞으로 영원히 한국을 추월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하고(믿고) 있고 그들의 베끼기 문화 등은 '짱깨'들이니까 한다는 식이다. 오히려 그들이 한국보다 나은 점을 보이면 거짓말이라고 우기거나 더 많은 나쁜 점을 들추면서 무조건 깔보고 무시하고 욕하기 바쁘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들의 우월함을 증명하고 싶겠지만 보기에 참 추하다.
한국인들 사이에 중국인들은 더럽고 시끄럽다고 하는 인식은 이미 널리 퍼진지 오래다. 공교롭게도 최근 중국에 한국인 수가 많아지면서 오히려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시끄럽다고 생각하고 있다. 술자리에서나 기타 공공장소에서도 적지 않은 '개념을 잃은' 한국인들이 시끄럽게 굴고 소란을 피우는 경우가 많아서 일게다. 아니, 그보다 먼저 그들의 귀엔 한국어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외계어처럼 들리기 때문일게다. 그런데 사실 한국인들도 술마실 때나 여럿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는 목소리가 상당히 큰 편고 시끄럽다. 더럽다는 문제는 중국의 역사적인 상황이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데 이유가 있다고 난 생각한다.(설명 생략) 시끄럽다는 인식은 상대적인 개념의 문제고 더럽다는 문제는 분명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존재하는 부분임에도 그저 한 나라의 인민들을 규정하는데 확고부동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중국인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얼굴이 화끈거렸던 적이 있었는데 한국에서 한국인들이 중국 유학생들에게 모멸감을 주고 인신공격을 한다는 이야기들 때문이었다. 국가 간 경제지표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외국에 가서 유학을 하는 건 집안 경제사정이 좋건 좋지 않건 간에 각 개인의 염원으로 이루어진 일인데 중국에서 온 유학생들은 일본, 미국, 유럽 유학생들에 비해 인격적으로 인간적으로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했다. 모든 한국인들이 그렇지 않다고 설명하는 내게 그는 모든 한국인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그런다고 회답했다. 솔직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내 친구들 중에도 내가 중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농반 진반 나를 '짱깨'라고 약올리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를 가련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개인이 가진 꿈과 생각은 이런 편견 앞에 아무것도 아닌게 되고 만다. 그저 어떤 나라에 사는지에 따라 바로 신분이 나뉘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혹은 살아갈 동남아시아 인민들이나 중국인, 제3세계에서 온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처하게 될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아무리 겉으로 예의를 갖춰 대한다고 한들 저 뿌리깊게 박힌 국가별, 자본(경제)별 계급주의가 솎아지지 않는 한 쉽게 해결될 문제로 생각되지 않는다.
남을 무작정 깎아내리면 나의 위상이 올라간다고 믿기 때문인걸까? 남에게 함부로 할 수 있는 건 내가 그만큼 자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인걸까? 많은 경우 국가를 대표해 개인끼리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개인의 국적은 쉽게(함부로) 바꿀 수 없긴 하지만(한국에서는 돈만 있으면 뭐든 하긴 하더라만) 개인과 개인이 만날 때는 인간대 인간으로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가가 부자면 나도 부자인건가? 한국의 기업이 부자면 나도 덩달아 부자가 되는 것일까? 한 인간의 인격은 국가 때문에, 경제상황 때문에 무시하거나 조롱받을 수 없는 존엄한 것이다. 역지사지가 되지 않으면 그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정당한 이유가 있는 비판은 비판의 과정과 결과 모두 대부분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만 감정적인 비판, 편견에 의한 비판은 그저 욕설에 지나지 않을 뿐이고 타인은 물론 자신의 인격마저도 상처를 받게 되는 법이다. 당연히 그 속에 진실은 가려지게 될 뿐이고. 뭐,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저, 그렇게 사느라고 애를 쓰는 게 보기 딱할 뿐이다. 국가를 등에 지고 애국을 목에 걸고 눈에 쌍심지 켜고 발악하는 게 멋져 보인다면 어쩔 수 없지.
겸사겸사 문제가 된 기사에 대해 얘기하자면 일단 기자라는 사람이 그 안에 써있는 중국어를 해석해 올릴 정도면 충분히 그 문장들이 중국 사람이 쓰지 않은 거라고 의심해 볼만 한 일임에도 그냥 넘어갔고 낚시를 위한 떡밥으로 썼다. 아님, 애초 그 이미지를 올린 누리꾼이 낚시질을 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아래는 기사에 소개되었던 몇 개의 이미지 중 하나다.
우연히 성룡의 블로그를 둘러보다 "가장 좋은 생일 선물"이란 글을 읽게 되었다.
물론 이 글이 좀 더 술술 읽힌 건 내가 본인의 생일이나 주변 인연들의 생일을 맞이했을 때 어떤 선물을 주고 받아야 할지 몰라 '안 주고 안 받기'라고 종종 말했던 경험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의 어떤 생각을 떠나 성룡이 생각하고 있는, 직접 실천하고 있는 행동들은 시사하는 바가 참 많다고 생각한다. 종종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정부나 돈 있는 이들이 어떤 일을 할 때 한국에 있는 어려운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그렇게 말만 하고 생각할 뿐 어떤 행동을 몸소 실천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나 싶다.
물론 성룡처럼 자선활동을 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혹은 한국의 자선활동, 단체들의 투명성을 의심하고 있는 사람들도 꽤 많을 것 같긴 하다. 이유야 어쨌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가지고 주변을 살피는 적극적인 태도를 견지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보람된 일이 아닐까 싶다.
나도 몇 달 전 블로그 답글 수나 트랙백 수를 매달 혹은 매년 정리해 한 건당 백원이든 몇 백원이든 적립해 자선활동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여전히 하지 않고 있다. 중국에 있으면서도 나름대로 이런저런 괜찮은 생각들을 하고 있지만 역시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않고) 있다. 성룡 글을 읽으며 무척 부끄러워지는 건 말과 행동이 따로 움직이고 있는 내가 너무 적나나하게 드러나기 때문일게다.
생일이 왜 중요한지는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중요한 자신과 타인의 생일에 주고 받는 선물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경우는 많이 적지 않나 싶다. 바람직한 개인주의, 서로 기분 좋은 생일을 맞이하고 보내는 일은 어느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다만 한 생명이 태어난 소중한 날에 다른 생명들은(이미 고정된 사회시스템 하에 태어난) 힘겹게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임을 생각해 보는 건 또다른 측면에서 생일을 더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자선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쓸데없이 낭비하고 과시하는 소비풍조는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음악과 사운드 디자인, 대사 녹음들에서는 아주 세련된 맛보다는 조금 투박하지만 애니메이션 정서를 충분히 표현해 준다는 측면에서 꽤 성공적이다. 오리지널을 들어보지 못해서 정확한 이야기를 하기가 애매하다. 웹상에서나 사운드 시스템이 좋지 않은 곳에서는 공간 엠비언스가 충분히 들리지 않고 세밀한 사운드를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믹싱이 좀 거칠게 된 느낌도 받을 수 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잘 들어보고 싶다. 늑대 역을 맡은 이의 목소리는 건조하면서도 애니메이션을 보는 이의 귀를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담담하지만 그 담담한 속에 스스로를 성찰하는 느림과 담백함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
"아빠가 필요해"가 가진 내용은 직접 애니메이션을 보며 각자가 느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된다. 여러 장치가 있어 보는 이에 따라 느끼는 부분들이 조금씩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본 "아빠가 필요해"는 이상한 동거 속에서 발견되는 가족애라는 것이다. 전혀 다른 개체들이 모여 살면서 가족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건 정말 특별한 일이다. 가족들도 서로를 증오하고 팽개치는 삭막한 사회에서 내게 가족은 무엇이고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피가 섞이면 무조건 가족이 되는 것일까. 그저 한 나라, 한 땅에서 태어났다고 같은 국민이 되는 것일까. 내게 던져진 불합리하고 억울한 상황때문에 아이를, 생명을 모른체 하고 방치할 수 있을까.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만 이끌어져 가는 게 아니라면 세상에 굴복하는 내 모습이 혐오스러울까.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일은 늘 요원한 일일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도 모든 걸 결코 쉽게 답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같음과 다름", "가족과 타인", "나와 너"의 관계를 현재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분명 변화가 필요하다. 늑대가 소설 쓰기를 포기하고 새로운 직장을 구했지만 그의 생활이 더 편안해 보이고 따뜻해 보이는 것은 자신의 삶을 "포기"해서가 아니라 진정 가치있는 삶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처음 관람할 때 "아빠가 필요해"를 주의깊게 보지 못했던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장형윤 감독의 수상소식이 많이 상쇄되는 느낌이다. 좋은 작품을 보게 해준 그에게 고마움을, 히로시마에서의 좋은 결과로 열심히 작품을 만들고 있는 단편 애니메이션 감독들에게 힘을 실어준 그에게 축복을 보낸다. 꾸준히 작품활동을 할 거라는 믿음을 주는 그가 스탭들과 함께 있는 스튜디오 이름은 "지금이 아니면 안돼"이다. 스튜디오 이름을 보고도 난 다시 가슴이 뜨끔했고 자극받았다. 입으로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발로 작품을 만들고 손과 온 몸으로, 온 가슴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도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단편이든 장편이든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난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애니메이션이 영화와 같은 뿌리를 두고 있긴 하지만 애니메이션만이 갖고 있는 정서가 있다. 특히 잘 만들어진 단편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이야기 힘은 장편 못지 않다. 프레드릭 벡의 "나무를 심는 노인", 알렉산더 페트로프의 "노인과 바다", 마이클 두덕 드 위트의 "아빠와 딸"과 같은 작품을 보면 그 울림이 수 많은 장편 영화, 애니메이션을 본 것보다 크고 여운이 깊다. "아빠가 필요해"도 많은 이들이 더 찾고, 본 후에 따뜻한 감성을 서로 나눠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척박한 땅에서 새로운 도전과 성취를 위해, 타인과 소통하고 싶어 노력하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면 좋겠다. 삶의 변화는 10분 내외의 짧은 시간 속에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단편 애니메이션이 가진 힘이다. 일본에서 만났던 단편 애니메이션 "두산"의 감독 야마무라 코지가 한 말이 생각난다. "Short is Best!"
아래 글도 그렇고 내 블로그를 뒤지다 보면 가끔 "조선족"이란 단어를 접할 수 있다. 난 "조선족"이란 말이 싫다. "조선족"이 싫은 게 아니라 부득이하게 사용하고 있는 "조선족"이란 "단어"가 싫다. 물론 "고려족"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면,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조선족"이란 말에 숨겨진 "차별"을 싫어한다. 미국, 일본, 유럽에 살고 있는 한국인, 한국인 2-3세는 그들의 국적에 상관없이 무조건 교포, 동포라고 부르는 반면 한국보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나라에 살고 있는 이들은 '족'이란 조사를 붙여 부르거나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살다보면 조선족을 만나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고 한국의 많은 매체에서도 조선족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들의 눈엔 조선족은 이방일 뿐이고 자신들보다 계급이 낮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아닌 사람도 많다는 거 안다.) 이런 개념들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리하게 된 건 언제부턴가.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문제라고만 치부하기엔 복잡하다. 왜 이런 차별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현재 한국의 기원은 많은 사람들이 말하길 '고조선'이라고 한다. '옛날 조선'이란 뜻이겠지. 그렇다면 그 조선이란 이름을 버리고 한국-코리아가 된 이유는 뭘까. 일본인들이 조센진(조선인)이라고 부르는 건 한국인을 얕잡아 보는 것이라 발끈하면서도 우리는 너무 쉽게 조선족을 "조선족"이라 부르고 있다. 만약 각 나라별로 호칭하는 방법에 따라 정한 호칭법이라면 고려인은 "까레이스키"가 되어야 할테고 조선족은 "차오시엔주"가 되어야 할 것이다. 베트남의 "라이따이한"처럼.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외국인들은 보통 국적에 따라 자신을 나타낸다.(내 이해가 부족할 수도 있지만) 국가위주의 편재 속에서 당연한 일이다. 가령 "나는 미국인이지만 아버지는 멕시코인이고 어머니는 프랑스인이다."라고 말한다. 그럼 그 사람은 어떤 민족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혈통순결주의, 민족주의 때문에 해외에 살고 있는 수 많은 동포들을 '한국인'으로 부르길 원하지만 그로 인해 많은 문제들을 양산해 내고 있고 그들에 대한 인식의 차로 인해 반목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과연 옳은 일인가? 단지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인들에게 차별대우를 받아도 된다는 뜻인가? 이미 한국에서도 혈통순결주의는 빛을 바랜지 오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900번 이상 외래의 침략을 받은 한국에서 100% 한민족이라고 부르는 건 어불성설이다.(여성을 비하하거나 다른 뜻은 없으니 오해 마시길.) 게다가 현재 많은 외국인들도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한국인인가, 아닌가. 한민족의 범주 내에 포함시키지 못하는 민족, 혈통은 한국인이 될 수 없는 것인가. 국가와 민족, 인종으로 사람을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으로 사람이 재편되고 있는 현실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호칭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 호칭인데 왜 신경쓰냐고 묻는다면? 위에서도 말했지만 호칭은 별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 호칭에 담겨진 차별이 문제다. 호칭을 바꾸건 바꾸지 않건 상관없지만 그 호칭에 담긴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 호칭이 분명 문제가 있다. 단어는 생각과 사상을 담는 그릇. 하지만 때론 그 그릇으로 인해 생각과 사상이 바뀔 수도 있다. 간혹 "형식이 본질을 규제"하기도 하니까.
중국 조선족이 처음부터 "조선족"은 아니었다고 한다. 간도 땅에 살고 있던 조선족은 알게 모르게, 영문도 모른 채 중국 공산당에 의해 중국인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당시 중국인들이 조선족을 호칭했던 말은 "조선인"이었다. 이유는 북한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불려지고 있었고 간도 땅 조선족들은 북한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었던 탓이다. 게다가 그들은 중국에도 북한에도 편입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중국과 북한의 이해관계에 의해 이리저리 이용(?)당하다가 어느 순간 중국인이 되었고 중국은 조선인을 자신들의 소수민족의 일부분으로 편입시키고자 "조선족"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인들 역시 그들을 조선족이라 부르고 있다. 한국인이 조선족이라 부르는 저의에는 중국에 대한 반감, 멸시와 함께 그들 자체를 무시하고 멸시하는 의미가 함께 내포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대다수가 그렇지는 않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인터넷상에서나 한국의 매체에서 그들을 다루는 태도를 보면 역시 비관적이다.
이런 저런 이유때문에 내가 바라는 바는 호칭에 상관없이 그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똑같은 대우를 해주는 것이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캠페인 차원으라도 혹은 공식적으로라도 해외에 있는 같은 민족들에 대한 호칭을 통일시켜주길 바란다.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기 전 혹은 후에 타의에 의해 외국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들에 대해 깊은 이해와 배려, 애정으로 다가섰으면 하는 바램이다. "조선족"을 "중국동포 혹은 재중동포"(현재 이렇게 부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로 러시아,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지역은 "러시아 동포, 우즈벡 동포"등으로 불러주거나 혹은 각 나라에서 한인을 부르는 고유명사로 직접 불러주던가 하면 좋겠다. 아니면 외국에 사는 중국인들을 화교라고 부르듯이(화교는 华侨-화치아오라는 뜻으로 중화의 화, 우거(거주)할 교를 써서 외국에 사는 중국인이란 뜻이다. 华人이라고 해서 중화인의 줄임말인데 이는 한인(韓人)과 같은 말.) 다른 단어를 만들어도 좋을 듯 싶다. 적절한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있다면 알려주시거나 제안해 주시길.)
그렇지 않아도 호칭에 무척 민감한 대한민국에서 위와 같은 현상은 자연스러울지 모르겠지만 그 호칭이 많은 차별을 만들어 냄을 안다면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맘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하고 쓴 글은 뭐 정리가 될까마는) 막 써내려간 글이라 정리가 잘 안되고 있다. 윽.
그래, 알아, 얼마 지나지 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단 걸. 그래도 말하지 않으면 가슴이 먹먹한데 어떻게 하냐고. 욱하는 치기에, 겁없는 용기에,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툭 던졌다. "사랑해" 거짓말, 사라지지 않았어. 흔적은 없지만. 세상이 모두 한통속이었어. 뱉어놓은 말도 모두. 속았어, 철저히, 바보처럼. |
옛날 위세가 당당했던 사람은 복고(復古)를 주장하고, 지금 위세가 당당했던 사람은 현상유지를 주장하고, 아직 행세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혁신을 주장한다. - 루쉰 |
Elephant on the door
최소한 내가 묻힐 곳 만이라도 안다면. 내가 숨을 놓는 건 다시 숨을 쉴 수 있는 믿음 때문이지만 종종 잊고, 또 잊고 결국에 돌아갈 때도 잊고. 돌아갈 곳 조차도 미궁처럼 헤메인다. 손을 내밀면 잡힐 것 같은 수수께끼 해답을 모르는 건 흥미진진함이 아니라 속 꽉 막힌, 답답함이다. |
Frog on the tile
누추한 곳에 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흐르는 물에 더러워진 몸을 씻어낼 수만 있다면 몸 뉘일 곳이 어디인들 대수일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웃음을 놓지 않는 건 지금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억지만은 아니다. |
끊이지 않은 폭죽 소리, 불꽃 놀이 하지만 그곳에 밝은 미소는 없다. 그래, 이스라엘 소녀들이 미사일에 써 준 사랑 가득한 편지는 있었지. "베이루트에서 적막이 폭탄보다도 무섭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Mazen Kerbaj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오늘 밤에도 몇개의 그림으로 내 포스트를 채울 것이다. 내 포스트를 유심히 봐 달라. 그리고 이곳을 지켜 달라.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 달라. 우리의 상황을 알려 달라..." 그는 자신의 그림을, 글을 되도록 자유롭게 각자의 블로그를 통해 출판하기를, 알려주길 원하고 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서라도 미국의,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막아내고 싶지만 쉽지 않다. 왜, 다른 모든 나라들은 전쟁 반대의 성명서만 내고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일까. 역시 미국과 이스라엘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세력,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 둘이서 싸우고 있을 때 그저 바라보며 "어~어~ 저러면 안되는데...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중간에 서서 뜯어말리지도 못한다. 때리는 쪽이 소위 이 바닥의 두목이기 때문인가. 그저 일반 인민들이 나서서 이스라엘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성금을 보내고 마음을 함께 해주는 것 외에는 저 놈의 전쟁을 막아내기 어려운 모양이다. 외교도 UN도 필요없는 세상, UN시찰단도 폭탄을 맞아 사라져버리는 세상. 언제 어느 순간 불똥이 튈지 모르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군인들만 죽어나가는 게 아니라 아무런 잘못도 없는 아이들, 인민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저 빌어먹을 전쟁의 복판에서 단 두 나라의 횡포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슬픈 세상에서 살고 있나. 우리는.
한국에는 '다음'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동영상 검색'이나 'TV팟' 서비스가 있고 '네이버'에도 역시 '동영상 검색'이나 '플레이' , '파란'의 '엠박스'와 같은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또 '엠엔캐스트'도 있고 그 유명한 'YouTube'도 있죠. 서명덕 기자 사이트에서 소개한 'YouTube'를 따라한 듯한 'PornoTube'도 있습니다만...;;; 뭐,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아실만한 서비스고 즐겨 이용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더 자세히 설명할 능력도 되지 않지만 제가 소개하려고 하는 건 이게 아닙니다. 바로 현재 중국에서 제공되고 있는 한 '동영상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만약 한국에도 유사한 서비스가 있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과문한 탓이라 생각하시고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에서도 UCC-사용자제작컨텐츠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군요.)
특별한 조사를 할 시간도 없고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없기 때문에 일단 겉으로만 둘러본 소감으로 방금 말씀드린 중국의 그 사이트(http://www.5show.com/)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항조우(杭州)에 있는 인터넷 회사에서 만든 이 사이트의 이름은 "我秀,视频"입니다. 무슨 뜻인고 하니 '내 공연(Show), 동영상' 아니면 '내 재능(혹은 나는 특별해~), 동영상' 뭐 이런 정도의 뜻이 될까요? 중국어를 잘 하시는 분이 다시 해석을 해주셔도 좋겠습니다. 우수하다는 '秀'은 중국에서 영문 음역으로 'Show'에 해당하니 'My Show'에 가까운 뜻이 되겠습니다만, 아무튼...
이 사이트가 여타 한국 혹은 외국 사이트들과 다른 점은 본인이 직접 녹화한 후 그 영상을 누리꾼들과 소통한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많은 동영상 관련 사이트들은(YouTube도 마찬가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업로드한 후 링크를 걸어두는 식이죠. 즉 자신이 구입한 영상 데이터를 컨버팅 한 후 업로드해서 공유 또는 직접 컨텐츠를 만들어 공유하거나 '퍼옴'이나 '(불법)내려받기'를 통해 다시 업로드 후 서로 공유하고 즐기고 있다는 거죠. 이 많은 컨텐츠 중에 자신이 직접 등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봐야겠죠. 직접 자신을 촬영해서 올리는 경우라면 특히나 엄청난 용기가 필요할 겁니다. 특히 한국에서라면.
'我秀,视频'에서는 같은 방식도 존재하지만 개인이 직접 녹화를 한 영상물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이 음악을 틀어놓고 노래를 부르거나 불특정 누리꾼 친구들에게 대화를 하는 식입니다. 그리고 누리꾼들은 그 아래 익숙한(?) 악플도 달고 칭찬도 하고 응원도 해줍니다. 혹은 자신의 QQ주소(중국판 msn, nate-on), 메일 주소를 남기기도 하지요.
암튼, 이 사이트를 보고 있자니 몇 가지 생각이 듭니다. 중국인들이 한국인들에 비해 부끄러움을 덜 탄다는 생각, 불법 DVD와 같은 불법 천국인 중국에서 오리지널 데이터 소스를 확보하고 있다는 생각,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몰고왔던 '아메리칸 아이돌'과 같은 프로그램인 '超级女声(男声)'(슈퍼여성-남성(가수))의 여파가 아닐까 하는 생각, 이 사이트에 젊은 층 뿐만이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 참여하고 있는 걸 볼 때 신선하고 재밌다는 생각 등등.
시대가 복잡해지면서 글을 읽는 속도는 늦어지고 영상을 보는 속도는 빨라지는 것 같습니다. 종종 인터넷 사이트 이곳저곳에서 '글이 길기 때문에 포기'라는 답글을 종종 봤었거든요. 영상은 쉽게 의사소통을 하고 감성을 전달하는 도구임에 분명합니다. 그 영상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게 되겠지요. 앞으로 시대에는 이런 단순한 동영상이 아니라 실제로 사이버 상에서 오감을 느낄 수 있는 사이버 캐릭터를 가지고 직접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속칭 '찌질이 문화'만 없다면, 심각하지 않다면 즐거운 서핑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분명 자정능력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만...;
만약 '我秀,视频'과 같은 사이트가 한국에 생기면 성공할까요, 아님, 실패할까요. 수 많은 'XX녀'시리즈가 재생산 될까요, 아니면 서로 즐겁게 소통하며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저야 이쪽방면으로 전문가가 아니라 뭐라 말씀드리긴 힘듭니다. 다만 중국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알게 된 '我秀,视频'는 나름대로 재미를 주는 사이트란 생각이 듭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말이 길었습니다. 직접 보시겠습니까? 중국어를 못하시는 분들은 그저 영상만 봐도 어떤 사이트인지 짐작이 가능할테구요. 중국어를 하실 수 있는 분이라면 여기저기 클릭해서 구경해 보시죠. 일단, 아래 두 개의 동영상만 소개합니다.
장편 머그잔여행;Mug Travel_그 안에 '빼꼼'
RG스튜디오는 임아론 감독을 중심으로 많은 애니메이터들이 각자의 참신한 발상을 재미있게 풀어내 볼만하고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습니다. RG스튜디오 관계자냐구요? 천만에요. 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국에서 일을 할 때 관계 된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될 뿐이고 저도 그런 경우처럼 RG스튜디오도 가 봤고 감독과 PD도 만나봤을 뿐입니다. :)
혹 <Angel>이란 작품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빼꼼>이란 말은 들어보셨는지요? <빼꼼>은 '백곰'을 코믹하게 발음하는 이름입니다. 어리숙하지만 친근한 하얀 곰이 나와서 좌충우돌하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이지요. 이미 단편 몇 편은 해외 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도 수상한 경력이 있고 일반인과 관계자들의 주목을 집중시킨 바 있습니다. <Angel>은 그보다 훨씬 전에 이미 호평을 받았던 단편 작품이구요. RG스튜디오 홈페이지를 가시면 <빼꼼>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몇 편은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 회사를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3D로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거나 20분물 TV시리즈, 혹은 극장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 5분물 분량의 짧은 애니메이션을 만들되 최대한 내용에 신경을 쓴다는 점에 있습니다. 회사의 자금력이나 설비가 받쳐주지 않아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자금력이 있다 한들, 어마어마한 설비가 있다 한들 반드시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낸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먼저 짧지만 재밌게, 소박하지만 강력하게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이지 않게 엄청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서 나름 좋은 성과들을 얻어냈고 피드백을 받았다는 것이지요.
둘째, 감독(혹은 PD)의 일방적인 지시와 통제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아니라 직접 애니메이션을 담당하는 애니메이터들에게 상당부분 자율권을 준다는 것이지요. 이는 Bluesky나 PIXAR와 비슷한 작업구조입니다. 큰 이야기의 투르기는 가지고 있되 디테일한 부분이나 아이디어들은 애니메이터들의 몫인 거죠. 충분이 즐기면서 재밌게 작업할 수 있습니다. 그런 후 감독, PD와 상의해가며 다시 조율하고 다듬어서 완성품을 내놓은 것이죠.
셋째,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을 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인재양성'이라고 했습니다. 미야자키 감독 밑에서 작업했던 많은 감독들이 독립을 하고 분가를 해서 나름 일가를 이루고 있는 걸 보면 참 부럽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습니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아주 오랫동안 미야자키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작업하고 쉽게 이직(移職)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작업면에서 파트너쉽이 아주 강력하게 발휘되고 있지요. 이직을 하지 않는 이유는 미야자키 감독이 가지고 있는 역량도 역량이지만 그만큼 권위의식을 버리고 아랫사람(?)들과 함께 작업하고 노하우를 전수해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후진양성', '인재양성'에 인색한 게 사실입니다. RG스튜디오는 감독이 직접 아카데미 과정을 개설해 회사 직원들과 일반인들에게 3D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과정을 수료하고 나면 일부는 회사에 남고 일부는 다른 곳에 가서 작업을 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RG스튜디오가 아닌 다른 곳에 가더라도 그들은 애니메이션의 아주 기본적이면서 핵심적인 내용들을 배웠기 때문에 쉽게 적응을 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일반 애니메이션 회사, 그것도 규모가 그리 크지 않는 회사에서 이런 아카데미 과정을 운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넷째, 쉽사리 언론 플레이를 하지 않더군요. 몇 몇 회사들은 자신들이 준비하는 프로젝트의 규모를 신문과 잡지를 통해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을 때 RG스튜디오는 차근차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준비해왔고 언론을 통한 '알리기'를 최대한 자제해 왔던 것이지요. 그렇게 소리소문없이 성실하게 애니메이션을 준비한 결과는 TV방송을 통해, 혹은 극장에서 RG스튜디오의 작품이 소개될 것입니다. 미디어 활용이 아주 중요한 애니메이션인데 언론 플레이를 하지 않는 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치만 최대로 끌어올려놓고 형편없는 작품을 내놓으며 '한국 애니메이션 봐주기 운동' 운운하는 건 더욱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척박한 애니메이션 제작 풍토에서 나름 실력을 키워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듬으며 준비하는 작품이 있다는 건 참 기쁜 일입니다. 물론 애니메이션을 접한 후 평가는 냉정하게 해야겠지요.
이런 RG스튜디오가 이번에 TV시리즈를 방영합니다. 8월 28일 월요일 저녁 7시 30분 EBS에서 첫 방영합니다. 그 이후로 월, 화, 수 세 차례 5분짜리 애니메이션 52편이 방영될 예정입니다. 기다렸다가 꼭 시청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부분이나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은 그들에게 제대로 피디백을 해주시면 좋겠군요.
RG스튜디오는 <빼꼼> TV시리즈 뿐만이 아니라 <머그잔 여행;Mug Travel>이라는 장편도 완성했습니다. <머그잔여행;Mug Travel>은 8월 15일 제1회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에 개막작으로 상영한다고 합니다. 부산에 계시는 분들, 부산에 휴가 가시는 분들은 겸사겸사 어린이영화제도 구경할 겸 <머그잔여행;Mug Travel>를 직접 확인하시면 좋겠군요. 자녀가 있으신 분들은 꼭 가서 보세요. 예고편을 봤는데 아이들이 참 좋아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대사도 줄이고 슬랩스틱으로 많은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하니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머그잔 여행;Mug Travel 캐릭터 소개
얼마 전 무척 보고 싶었던 애니메이션 '아치와 씨팍'이 개봉되었고(중국에 있어서 보지 못했습니다.) 상영일수가 짧았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많은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줬던 걸로 기억합니다. 19세 이상 관람가로 만들어진 작품이었기에 투자금을 제대로 회수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다만, 기존에 극장에 걸렸던 여타 작품들에 비해 퀄리티도 잘 나왔다고 하고 나름 재밌었다는 평가도 많았던 걸로 압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건 '아치와 씨팍'의 뒷 이야기를 조금 알고 있었던 터라 그다지 편하게 생각되지는 않더라구요. 물론, 한국 애니메이션의 발전을 위해 큰 역할을 했다는 건 사실입니다. 좋은 결과 뒤에 좋은 과정도 함께 했더라면...하는 아쉬움만 (약간) 있다는 거지요.
수 많은 한국 애니메이션이 TV에서 방영되고 극장에서 상영됩니다. 그리고 소리없이 무대에서 사라지곤 합니다. 지금 FTA때문에 한국 애니메이션은 더더욱 위태로운 현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JTeam이나 RG스튜디오처럼 끈기와 집념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회사, 사람들이 대견하기만 합니다.
영화배우나 연예인들, 한국영화만 팬들의 사랑과 응원을 먹고 사는 건 아닙니다. 한국 애니메이션도 팬들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고 그들의 칭찬과 질책이 많이 필요합니다.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만드는 사람들도 힘이 나겠죠. 작품을 잘 만들었는지 못 만들었는지를 제대로 평가를 해줘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은 잘 모르기 때문에 평가를 못하겠다는 말도 합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영화'입니다. '영화'라는 큰 틀 안에 '라이브 액션(흔히 말하는 영화)'이 있고 '애니메이션'이 있는 거지요. 영화를 보고 평가하고 비판하듯이 애니메이션도 그렇게 해주면 좋습니다. 적극적 피드백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질을 높일 뿐만 아니라 제작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경종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간만에 한국 애니메이션(장편이든 단편이든)을 찾아서 감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
1편 나갑니다. :)
2편 나갑니다. :)
3편 나갑니다. :)
4편 나갑니다. :)
5편 나갑니다. :)
6편 나갑니다. :)
7편 나갑니다. :)
뜨거운 햇살을 피해 그늘로 숨어 들었건만 이 놈의 더위는 스믈스믈 목 뒤를 타고 온다. 뜨겁게 달궈진 엔진은 그르렁 거리며 호흡을 고르고 입 안에 가득한 수박 몇 조각으로 더위와 씨름한다. 다시 그늘 밖으로 나갈 일이 걱정스럽긴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그늘 안으로 바람을 불러 달콤한 낮잠 늘어지게 자고 싶다. 후, 여름 햇살은 따끔하면서 길다. |
산타도, 루돌프도 여름엔 휴가다. 하지만 겨우내 오지 않았던 산타를 여름까지 기다린 마음은 어쩌나. 수북히 먼지가 쌓인 트리, 수 개월 먼지 바람이 쓸고 간 창 너머로 뜨거운 태양만 작열한다. 아기예수도 여름이 싫어 겨울에 오셨을까. 여름엔 그 어떤 축복의 말도 들리지 않는다. 곧 빛 바랠 색색의 방울과 푸르름을 잃어버릴 트리만 여전히 산타를 기다리며 크리스마스를 축복하고 있을 뿐이다. |
대만의 역사학사, 정치인, 출판인, 문학가 등등 많은 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李敖(Li ao)가 봉황방송국(凤凰电视台) "李敖有话说-리아오 할 말 있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이런저런 과거사를 소개하다가 한 말이 있다.
리아오가 과거 영화판 사람들과 한데 섞여 놀다가 간단한(?) 도박을 했는데 상대방이 돈을 잃자 리아오가 패를 가짜로 만들어서 사기도박을 했다는 이유로 고소한 것이다. 그 때 법정에서 리아오는 자기변론을 펼치면서 위와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리아오는 도박을 절대로 하지 않았고 그 때 자신이 한 말을 늘 보감 삼으며 살아왔다고 한다.
세상엔 많은 가짜가 판을 친다. 가짜 전문가, 가짜 정치인, 가짜 선생, 가짜 선진국, 가짜 휘발유 등 여기도 가짜 저기도 가짜인 세상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모두들 자신이 가진 실력(본질)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가짜로라도 실력(본질)을 과대포장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려고 하는 데서 오는 폐단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짜 행세를 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어떤 부분이든) 부족한 가짜임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훌륭한 가짜(?)를 만들어 내기 위해 거짓말을 시작하고 나면 그 모든 전말이 온 천하에 공개되기 전에는 거짓말을 위한 거짓말을 끊임없이 양산해 내야 한다.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하지만 가짜들은, 거짓말쟁이들은 피곤할 줄을 모른다. 가짜가 진짜를 삼켜버린 덕분이다. 가짜로 한참을 생활하다보면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 그 진위를 아예 잊거나 스스로 만든 거대한 최면에 갇히고 만다.
남들은 분명 가짜로 보고 있지만 본인만 스스로 진짜라고 믿는 정신착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아주 정교한 가짜라도 완전히 진짜가 될 확률은 없다. 가짜는 그대로 가짜이니까. 99.9% 비슷하다고 해도 가짜는 가짜일 뿐이다. 진짜 실력이 아닌, 진실된 말이 아닌 가짜 실력과 거짓말.
속이 덜 찬 사람들, 헛똑똑인 사람들, (남을 해하건 말건) 자신의 이득만 챙기는 사람들, 자신의 능력으로는 무엇하나 해낼 수 없는 사람들이 가짜가 될 확률이 높다. 진실된 말만 하고 살기엔 이미 뿌려놓은 거짓말이 많아 수습이 되지 않음으로 세상 자체가 온통 거짓이고 자신만 참이라고 아예 본말을 전도시키는 사람들도 많다.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는 진짜가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 일이 무척 어렵다. 그리고 가짜들이 진짜를 모두 가짜로 몰아세우기 때문에 대세만 따르거나 다수결만 따르다 보면 누가 진짜고 가짜인지 점점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오히려 가짜에 동화되는 경우도 꽤 많아지게 된다.
하지만 가짜 패가 아니더라도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진짜 패로 진실된 말로 살아가야 하고 꼭 그래야 한다. 그건 한 사람이 완전한 인격체, 생명체가 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가 공생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진실된 말을 하는 사람을 골라내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가 진실하게 되는 수 밖엔 없다. 자신의 실력과 능력이 가짜의 힘을 빌리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글을 읽을 때만 행간의 의미를 되새길 게 아니라 사람들 관계 사이의 행간,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의 행간도 잘 읽어야겠다.
가짜 패에 새가슴이 되고, 가짜 실력에 주눅들고, 거짓말에 현혹되는 그런 일은 절대 없길...
지단이 마테라치를 머리로 들이 받은 후 기자회견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전부는 아니지만) 공개했다. 지단의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나는 자극을 받은 뒤 대응한 사람이다. 대응을 한 사람이 늘 벌을 받고 분노를 유발한 사람은 절대 벌을 받지 않는데 이는 공평하지 못하다" 물론 그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고 사과를 했지만 자신의 결백과 정당함을 위해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또 하나의 기사를 읽게 되었다. 이런 주제의 기사는 한국 사회에서 정말 많이 보도되는 것일텐데 내용은 이렇다.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남편에게 살충제를 먹여 살해한 최모씨(39.여)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이 두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고 결과의 경중이 무척 다름을 안다. 다만, 두 가지 내용을 접하며 '폭력'이란 것에 생각을 하게 된 것이고 지단이 한 말에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 것 뿐이다. 지단이나 최모씨 두 사람 모두 '폭력'을 행사한 것은 맞지만 지단이 행사한 폭력의 결과와 최모씨가 행사한 폭력의 결과는 다르다. 최모씨의 경우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사건은 결과만을 두고 따진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지단은 "분노를 유발한 사람은 절대 벌을 받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한국 사회에서 매 맞는 남편도 많다고 하지만 폭력 아래 노출된 주부와 아이들은 더 많다. 그런데 법적인 판단은 늘 결과를 가지고 따진다. 게다가 한국 사회에서 가정 내 폭력은 '집안 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모든 책임을 떠안는 사람은 늘 여성과 아이들이다.
지단의 말을 최모씨에게 대입해 보자면 "분노(살의)를 유발한 폭력 남편은 절대 벌을 받지 않는데 이는 공평하지 못하다." 물론! 난 살인을 어떠한 이유에서도 찬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절대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는 어떤 이유에서도 쉽게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 해보면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주부)은 이미 그 목숨을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명이 끊어져 숨을 쉴 수 없는 것만 죽음이 아니라 살아갈 희망을 잃었거나 마음이 죽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는 삶이다.
폭력 남편은 습관으로 혹은 재미로, 또는 정신이상으로 폭력을 휘두르며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거나 상대를 무력화 시키며 쾌감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그 폭력을 온 몸으로 받아낸 여성들의 경우엔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고 힘들(것이)다. 견디지 못할 정도의 폭력 속에서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 최선, 아니 차악의 방법은 무엇일까. 폭력으로부터 도망을 치거나 그도 힘들 경우엔 폭력의 근원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첫 번째의 경우엔 물리적 폭력만으로 끝나지 않는 폭력의 순환으로 인해 여전히 폭력의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두번 째의 경우엔 자신이 모든 책임을 감수하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두번 째의 경우엔 종종 자식을 위한 경우가 많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사실 좋은 결과를 담보할 수는 없다. 이러한 경우에도 늘 "분노를 유발한 자"들에 대한 법적인 처벌이나 사회적 안전장치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폭력을 휘두르는 이가 늙어 힘에 부쳐 더 이상 폭력을 행사할 수 없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본인이 깨닫고 반성을 한 후 폭력을 거두어 들이기만 기다려야 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혼을 하거나 이혼을 해주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을 당한 이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받은 후고 심한 경우엔 살아갈 희망을 잃었거나 정신적, 심적으로 '사망'을 한 뒤일 것이다.
지단의 경우엔 물리적 폭력을 당하지 않았다지만 정신적 폭력을 당한 후였고 그에 따른 대응을 한 것이다. 물리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은 절대적으로 다른 이야기인가? 차이는 있을 지언정 '폭력'이란 범주엔 별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정신적 폭력을 당해 본 이들은 물리적 폭력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심적 고통을 겪게 되고 그건 시간이 오래 흘러도 쉽게 치유가 되지 않는다. 육체적으로 가해진 폭력은 상처가 아물면 어느 정도 잊게 되지만 정신적 폭력은 그렇지가 않다. 최모씨(그외 많은 가정폭력)의 경우는 물리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이 동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한 번으로 끝나지 않으며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그저 남자들끼리 주먹다짐 한 번으로 끝나는 싸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폭력, 사회의 폭력, 국가의 폭력, 집단(단체)의 폭력은 피해자보다 "분노를 유발한 자"들에게 더 관대하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끊임없이 속삭인다. "거 봐, 너만 손해잖아. 참고 또 참으면 얼마나 좋아." 그리고 다시 폭력을 행사한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가 아니라 "참는 자에게 상처만 있다"
난 '폭력'에 대해서는 '행사하는 폭력'이나 '되돌려주는 폭력' 모두 반대한다. 바램이 있다면 사회, 국가의 법제도나 일반인의 인식 속에서 '되돌려주는 폭력'보다 '행사하는 폭력', '분노를 유발하는 자'들에 대한 제재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모든 결과는 모든 원인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결과만 바라보기 보다 원인을 분석하고 과정을 이해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남을 격려하는 좋은(?) 일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런 사고는 견지되어야 한다. 원인 분석하고 과정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다고 말하면 안된다. 재생산되는 잘못된 결과를 막으려면 늘 처음에 단도리를 잘해야 하는 법이다.
* 일본의 경우 1, 2
* 호주의 경우 1
* 미국의 경우 1, 2
* 독일과 그 외 나라의 경우 1
* 지단의 헤딩이 한 번이 아니라 앞서 이미 두 차례나 더 상대 선수에게 폭행을 했다고 하는데 마테라치는 어떨까.
마테라치의 멋진 수비 보기 - 클릭
한국인인 나, 중국인이면서 조선족인 리용, 우즈베키스탄인이면서 고려족인 씨얼와. 중국 장춘에서 만난 셋이 간단한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마음 속에 묘한 감정이 일렁인다. (내가 민족주의자는 아니지만) 같은 민족인 세 사람이 중국에서 만나 '중국어'로 소통하고 있다는 현실이 왠지 묘한 서글픔(?정확한 표현은 아니다)을 느끼게 한다. 중국에서 200만명 정도 되는 소수민족으로 살아 온 리용, 그리고 고려인 2세인 부모에 우즈베키스탄 국적을 가지고 91년 소련의 해체를 직접 몸으로 겪은 고려인 3세 씨얼와(현재 우즈베키스탄엔 약 20만 명의 고려인이 거주),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
리용은 조선어(한국어)를 할 줄 알지만 나를 만날 때는 늘 중국어로 대화를 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내 중국어 공부를 도와주기 위한 배려와 그가 중국 땅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며 필히 구사해야 할(했던) 언어(중국어)의 습관화, 그리고 연변에서 듣고 접한 한국인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 등의 이유 때문에 그는 내 앞에서 99% 중국어로 대화를 시도한다. 씨얼와는 조선어를 구사할 수 있는 부모와는 달리 여러 환경적 이유로 조선어를 배우지 못했고 러시아어가 자신의 모국어가 되었다. 물론 후에 한국어를 잠시 배웠는데 너무 어려워 제대로 습득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난 현재까지도 내가 구사하는 한국어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고 있으면서 새롭게 배운 중국어를 가지고 이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사실, 세 사람이 앉아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모두 부모님의 어쩔 수 없는 선택, 혹은 국가 간 분쟁의 원인, 자연적인 잔류 등의 이유로 인해 각각의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 아닌가.
그들의 대화를 듣던 중 문득 한국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조선족들에 대한 인식이 지금은 많이 좋아진 편에 속하지만 예전에 정말 같은 민족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들에 대한 대접이 박했다. 대접이 박했던 것 뿐만이 아니라 이들이 중국에 살면서 조선어를 구사할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 무식한 한국의 졸부들이 가서 돈질을 해대며 사람들을 농락했고 악덕 기업주들과 악덕 중개업자들이 한국에 가서 일을 하겠다는 이들을 속여 돈을 갈취해 냈다. 이로 인해 조선족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지게 되었고 (순박했던) 그들도 점점 약아지게 되었다. 분을 삭이지 못한 조선족, 혹은 한국인의 습성을 나름 파악한 조선족들이 한국인에게 해꼬지를 하거나 사기를 치고 금품을 갈취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일들은 한국인들이 저지른 일에 비해 더 빠르고 폭 넓게 확산되었고 한국인들 사이에서 조선족을 경멸하거나 무시하는 태도가 비일비재 해 온 것이다. 물론 내가 단순 묘사한 내용이 조선족에 대한 편애로 읽힐 수도 있겠지만 이곳 중국에서 돈 좀 있다는 한국인들이 하는 꼴을 보면 그다지 편애도 아니다.
지금은 나름대로 서로 조심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중이기 때문에 큰 문제들은 발생하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눈에 조선족은 이방인이며 외국인이며 중국인일 뿐이다. 아시아에 살고 있는, 그것도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에 살고 있는 (소위)'한민족'에게는 '~족'이란 이름을 붙이고 미국, 일본, 유럽 등지에 살고 있는, 역시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에 살고 있는 '한민족'에게는 '교포'며 '동포'며 심지어는 국적이 한국인이 아닌 이들(하인즈 워드, 미셸위, 다니엘 헤니 등)에게까지 '한국'의 국적을 선사해 '한국인'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대주의에 자본에 눈이 먼 사람들의 작태다. (난 하인즈 워드나 미셸위에게 아무런 반감도 없고 관심도 없다.)
몇 개월 전 한 조선족이 내게 한 말이 생각난다. "그래도 한국이 잘 사니까 다행인 것 같아요. 우리같은 사람들이 그래도 한국에 가서 돈도 벌 수 있고 참 좋은 것 같아요. 한국이 참 고마워요." 난 이 이야기를 들을 때 왜 그리 부끄러웠던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었다.
우즈베키스탄인 씨얼와의 경우도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다. 작년에 개봉했던 <나의 결혼 원정기>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촬영되었는데 그 내용은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노총각 우즈벡 가다'를 모티브로 했다. 한국 내에서도 한국인 대접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결혼할 대상을 구하기 위해 혹은 농촌의 일손을 충당하기 위해 한국보다 가난한 나라로 가서(그럴 수 밖에 없다) 여자를 공수해 오는 것이다. 정말 웃기지도 않은, 슬픈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영화는 그나마 유종의 미를 거두었지만 씨얼와에게 이 영화 얘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씨얼와는 한민족이면서 한국어(조선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에 크게 개의치는 않는 것 같지만 그의 표정에는 말 못할 사정들이 꽤 있어 보였다. 씨얼와와 취업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이야기 하며 그에게 한국어를 배워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러시아어와 중국어를 구사하는 그가 한국어를 배운다면 동북아시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더욱 많아지게 될 것 같았음으로. 다만, 그렇게 말하는 내 자신이 왠지 부끄러웠다.
과연 우리 셋이 느끼는 민족은 무엇이고 국가는 무엇일까. 대체 핏줄은 무엇이고 역사는 무엇이고 현재는 무엇인가. 과거의 역사를 겪어 보지 않는 나로서 어떤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긴 하지만 최소한 출생부터 같은 언어를 쓰는 부모, 자신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한 터전에서 살아왔던 가족이라는 점에서 이들과의 합석은 기쁘면서도 애잔한 감정을 갖게 하며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술자리는 기분 좋게 끝났고 서로의 우정을 다짐하며 각자 집으로 향했지만 여전히 내 속은 복잡하고 미묘하기만 하다. 어쨌든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된 것만은 확실하다. 리용, 씨얼와 그리고 그의 여동생 아료나.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나라의 언어로 표현하고 소통해야 하는 점만 아니었다면, 그리고 (지금은 많이 좋아졌긴 했지만) 과거 한국이 이들을 소홀하게 대했던 점만 아니라면 오늘 자리는 보다 기쁨이 넘치는 자리가 아니었을까 막연한 생각도 해본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에 살고 있는 한민족들은 한국이 부모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반면 아시아의 끝 편에서 살고 있는 일부분의 한국인들은 이들은 외국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싶어한다.)
약간 옆길로 새는 이야기일 수는 있겠지만 문득 김규항씨가 질문했던 "이건희와 나는 같은 민족인가?"라는 말이 생각난다. 옆길로 새는 이야기 하나 더. 나는 요즘 중국에서 종종 "나는 세계인이다"라고 말한다. 세계인의 기준치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국가, 민족, 성별, 나이, 직위, 자본간의 차별을 반대하는 차원에서 농반진반 이렇게 말하고 있는 중이다.